박정민 목사 / 능암교회 담임

물질중심의 사회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형적인 포장에 너무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선 소비자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외적인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라고 하는 주장에는 필자도 선뜻 동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력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가치기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어 무엇인가 외적인 화려함에만 매어 달리는 세태가 아쉬울 따름이다. 내실이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외적인 모습으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사회! 속빈 강정과 같은 실속없는 세태를 반영하는 이러한 인간감성에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큰 차의 설움

우리 동네에 그다지 멀지 않은 산중턱에 높다란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건물은 산보다도 더 높이 치솟았고 그 건물이 콘도미니엄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콘도미니엄의 위용은 시골 사람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말로만 듣던 콘도미니엄이 지척에 들어서다니 사람들은 그 건물에 대한 용도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물론 필자도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온갖 추측들을 하였다.

언젠가 그 건물이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 시간 끌어오던 건물이 완공되어 영업을 시작한다는 말에 언젠가 꼭 한 번 구경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고급손님이라고 했다. 차도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이 많고 국산 승용차도 고급승용차 일색이란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언젠가 벼르고 별러서 온 가족을 태우고 콘도미니엄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이미 차안에서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콘도미니엄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모양이다. 아내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동행을 하였다. 콘도미니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위용은 대단하였다.
멋지게 차를 몰아 넓다란 주차장으로 차를 대려고 하는데 정복을 한 수위 아저씨가 성급히 쫓아왔다. 역시 좋은 건물이라서 서비스도 좋은가 보다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성급히 달려온 수위 아저씨는 다급하게 손짓을 하며 차를 빼라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창문을 내리고 쳐다보니 건물 뒷편 으슥한 곳으로 차를 빼라고 퉁명스럽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잠시 멍하니 수위 아저씨를 쳐다보던 필자는 이내 그 아저씨의 의도를 알고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리의 차가 봉고승합차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이 아래동네의 목사인데요!”
그러나 그 수위 아저씨는 필자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성급히 손을 좌우로 휘저으며 혹시라도 차가 지나가지 않는가 시선을 차 뒤쪽으로 향하여 보면서 수신호를 하기에 바빴다. 물론 불쾌한 감정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아이들을 보기가 민망했다. 아이들에게 오늘처럼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혹시라도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리잡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내 차를 돌려서 쓸쓸히 산을 내려와야 했다. 아이들은 왜 구경을 하지 않고 그냥 산을 내려가느냐고 성화가 대단했다.

그 뒤에도 볼일이 있어서 몇 차례 그 곳을 찾았지만 번번히 그 수위 아저씨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고 이내 나의 아내가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필자는 못 본 채 성급히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한번은 용무가 있어서 시내를 향하여 가는 차안에서 5살짜리 둘째 아이 찬이가 “아빠 우리도 작은 차를 사자!”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설마!
우리 두 아들들은 우리교회의 봉고승용차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도 크고 의자도 뒤로 펴면 아주 편안한 놀이터가 되기 때문이었다.
“어떤 차를 사고 싶은데?” 하고 되물어 보았다. 그러자 “저런 차!” 하면서 앞을 가리킨 그 곳에는 마침 우리 차를 추월해서 고급 승용차가 비웃기라도 하듯 미끄러지듯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넓고 큰 차만큼이나 우리에게는 넉넉한 미래가 넘치고 있었다.

예수의 일꾼들

언제부턴가 혁호를 교회에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차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가까운 병원을 수없이 다녀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고, 이내 하반신 마비가 와서 소대변을 받아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말이 없는 순진하기만 한 시골청년 혁호의 갑작스러운 와병은 교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에서 집에 와서 누워있는 혁호를 보면서 필자는 서울의 척추전문병원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혁호를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것이었다. 혁호는 100㎏이 넘는 거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괜한 것이었다. 남선교회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함께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의 봉고승합차 의자를 넓게 펴고 들것도 없이 담요에 환자를 얹은 채 정성을 다해서 옮기는 모습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문득 복음서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마 9:1∼8; 막 2:1∼12; 눅 5:17∼26). 중풍병을 앓는 친구를 지붕을 뚫고 예수 앞으로 옮기던 역동적인 사람들의 모습과 일치되어 필자의 눈에 들어 왔다. 남선교회 회원들은 불편한 차에 끼어타고 서울까지 마다않고 다녀갔다.

병원은 19층에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에 옮겨놓고 나니 시장기가 돌았다. 새벽같이 출발하느라고 아침식사들을 걸르고 왔기 때문이었다. 병원 근처에서 늦은 시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가기 위하여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수위아저씨가 우리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어디 공사를 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뜻밖의 말에 잘 이해를 못하고 모두가 물끄러미 수위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수위 아저씨는 재차 “오 어디 공사를 합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잠시 뒤에 이야기의 뜻을 알아차린 우리 일행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그 수위 아저씨는 다시 재차 “몇 층에 갑니까?” 하며 물어왔다. 그러자 집사님 한 분이 “19층에 갑니다” 하고 대답하자 수위 아저씨는 다시금 “19층에 무슨 공사를 합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 때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대답을 뒤로 한 채 쫏기듯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마도 수위 아저씨는 우리의 몰골이 공사판의 인부로 보였던가 보다. 집사님 한 분이 “아마도 목사님은 노가다의 십장으로 보였고, 우리는 일꾼처럼 보였던가봐요” 하며 한바탕 웃음을 짓게 했다. 그러자 다른 집사님은 혼자소리로 “그래도 아침에 구두도 닦고 광내고 왔는데…” 하자 다른 집사님은 또다시 혼자말로 “나도 서울을 간다고 하여 때빼고 광내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필자도 속으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서울에 간다고 해서 평소보다 깔끔한 외출복을 입고 왔는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느 누구하나 언짢은 표정은 없다. 모두가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사는 향기나는 예수쟁이들이기 때문이다.
맞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