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목사 / 능암교회 담임

우리교회는 이미 70이 넘으신 권사님이 세 분 계신다.
이 분들은 한결같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계신다.
모두가 권사 직분을 가지고 계신 것 외에 여성들이신 것이 공통점이기도 하며, 또한 남편을 일찍들 여의시고 40대에 예수를 믿기 시작하신 공동점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예배때에는 항상 맨 앞자리에 언제나 동일한 형태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이제껏 한 번도 자신들의 자리를 이탈하신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다가 이 분들 가운데 한  분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교회전체에 구멍이 난 것 같고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필자는 허전함을 감출 길이 없다.
그러나 가장 큰 이 분들의 공통점이자 특징은 젊은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굉장한 열심과 봉사의 생활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 분들을 바라보는 필자도 그 분들의 나이를 잊을 정도이다.

나르기를 좋아하시는 이권사님

우리 이권사님은 젊은 시절 일찍 남편을 잃으시고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신 탓인지 많은 병을 앓으셨다. 대수술도 몇 차례 받으셨을 뿐 아니라, 장례준비까지 할 정도로 위급하신 상황도 몇 차례 넘기셨다. 지금도 환절기에는 잔병치레를 많이 하실 정도로 건강은 아주 안 좋은 상태이다. 가장 불편을 느끼시는 것은 다리가 온전치 않으신 것이다. 다리수술을 받으신 이후에 펴고 굽히는 것을 제대로 못하신다. 그래서 필자와 함께 심방이라도 가시면 다리를 뻗고 앉아야 하기 때문에 늘 죄송한 마음으로 필자를 대하신다.
그러나 이렇게 나이도 많으시고 몸도 불편하신 이권사님은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감히 넘겨보지 못할 정도의 왕성한 봉사와 열심의 생활을 하고 계신다.

이권사님의 특징은 나르기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벌써 몇 년째 교회의 성미담당으로 봉사를 하시면서 그 무거운 성미들을 목사관으로 나르기를 즐겨 하신다. 그뿐 아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농사를 지으시는 권사님은 언제나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온갖 푸성귀를 교회로 나르신다.

그 중에서도 권사님은 청국장을 참 잘 담그신다. 우리집 아이들 조차 이 청국장맛을 즐길 정도로 권사님의 청국장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늘 꿀병 가득 청국장이 담겨져 있다. 청국장이 떨어질 때쯤 되면 벌써 새로 담근 청국장을 꿀병 가득 담아 목사관으로 나르신다.

그리고 권사님은 우리집의 냉장고를 자주 열어 보신다. 처음에 나의 아내는 당황하였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가정을 향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임을 알고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지나친다. 냉장고를 열어보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찬 거리를 점검하시고는 오목조목 반찬을 담아 교회로 나르신다.

작년 필자의 생일날 아침이었다. 교인들과 함께 잔치를 하던 다른 해와는 달리 필자의 사정으로 우리 가족끼리 소홀히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나르기를 좋아하는 이권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우리의 아침 상을 보시고는 털썩 주저앉으셔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집 자식들 생일상도 푸짐한 편인데 우리 목사님의 생일상이 저렇게 초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의 아내는 당황스러워 했지만 사정을 잘 말씀을 드리고 겨우 설득하여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다.

지난 주간에 나의 아내가 세미나에 참여하는 관계로 필자와 아이들만이 집에 남게 되었다. 아내가 며칠 없는 우리집은 모든 것이 무질서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이권사님이 잔득 쌓아놓은 빈 그릇들을 깨끗이 닦아 놓으시고는 철로 된 수세미로 씽크대와 가스렌지를 얼굴이 비치게 닦아 놓으셨다. 집으로 돌아가신 뒤에 냉장고를 열어 보니 커다란 접시 두 개에 8가지 반찬을 예쁘게 담아 놓으셨다.

사랑이 아니고는 그 분의 건강 상태로는 불가능한 일을 늘 이렇게 실천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도 밖을 내다 보니 성경가방은 땅에 끌릴 듯이 오른손에 드시고 엉거주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교회를 나서고 계신다.

시도 때도 없으신 한권사님

한권사님 자랑은 일전에 한 일이 있어서 소개가 안 된 부분만 밝히려 한다.
한권사님 가정은 옛날에 이 동네에서 가장 굿을 많이 하던, 당신의 말대로라면 귀신을 가장 잘 섬기던 집이었다.
그러던 열심 탓인지 권사님의 기도 열심은 대단하시다. 86세의 나이도 잊은 듯 권사님의 기도 생활은 시도 때도 없을 때가 많다.

몇 번이고 필자가 새벽기도를 나가면 벌써 기도를 마치시고 집으로 가시는 권사님과  마주치곤 한다. 시간관념이 없으신 탓에 몇 시간 전에 교회에 오셔서 기도를 하시면서 새벽기도시간을 기다리시다가 제 시간이 되면 기다림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시곤 하는 것이다.
특별한 시간의 개념이 그 분에게는 필요치 않으시다.
때를 얻는 대로 제단을 찾아서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시는 것이다.

어떤 날 필자가 늦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벌써 밭에서 농작물을 돌보시고 푸성귀를 한아름 담아서 주택앞에 놓고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지시곤 한다.
그러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건강의 약화도 있고 여러 가지 정신적인 충격으로 요즈음에는 새벽에 권사님의 자리가 비워 있을 때가 많다. 지난 달 오랜만에 권사님이 대예배때 회중 대표기도를 하셨다. 여전히 힘없는 기도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기웃거리기 좋아하시는 이권사님

또 한 분의 이권사님.
이 분의 특징은 이곳 저곳 기웃거리기를 잘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이 분의 기웃거림에 포착이 안 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78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하셔서 항상 종종 걸음으로 온동네를 누비신다. 밖에서 덜그덕 소리가 나서 내다보면 어느새 교회를 한 바퀴 휘돌아 나가신다. 이렇다 보니 이권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온동네의 사정을 다 알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목회자인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심방 스케줄은 이권사님과 상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그런데 이권사님의 기웃거림은 때로는 흉허물도 전해지지만 대부분이 정말로 우리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내시는 것이다.
어려움에 눈물 짖는 사람…
심한 절망에 낙담한 사람…
몸저 누웠지만 돌보는 사람이 없는 사람…
이 모두가 이권사님의 기웃거림에 포착이 되면 대부분 해결을 받는다.
나이를 잊고 필요한 손길을 찾아 기웃거리는 부지런함….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달란트임에는 틀림이 없다.

연로한 나이를 잊으시고 온갖 정성으로 열심과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는 세 분의 권사님!
자연스럽게 우리의 교회의 젊은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계신다.
그 분들의 꾸짖음에 노여워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이미 생활로 자신들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있는 신앙과 봉사의 생활은 나이순이 아닌가보다.
다만 사랑의 양이 그 척도가 된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주의 종된 목회자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척도일 뿐이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