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원 목사(신망애복지재단 이사장)

84년 겨울,  그 주 목요일도 눈이 참 많이 왔다. 20cm 정도 쌓인 걸로 기억된다. 망우리 공동묘지의 기도처소를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아 가까이에 있는 기도원을 찾아갔다.  7시에 모여 체인을 채워 천천히 가다보니 기도원에 밤 9시쯤 도착했다.
그 기도원은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대 교회 부설 기도원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철문이 굳게 닫혀져 있고 외등만  함박눈 사이로 깜박이고 있다. 

닫혀진 철문을 잡고 한참 흔들자 관리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분이 나타났다. 기도실에서 하루 저녁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등록비 1인당 1천원씩을 내라고 한다. 아뿔싸 두꺼운 옷을 껴입고 오느라고 빈손 들고 나온 것이다. 사실은 가지고 다닐 돈도 없었다. 15명이 타고 있었지만 돈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장애인들이었기 때문에 돈을 갖고 다닐 사람이 없었다. 할 수없이 사정을 했다.

장애인들이라서 아무도 돈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 이해를 해 주십사 정말 간곡히 부탁했다. 나중에는 온라인으로 송금을 해 줄테니 들어가게 해달라고까지 부탁했다.  그래도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귀찮다는 듯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 매정하기 이를데없는 사람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 기도원 정문 옆 공터 눈 위에 앉아 기도회를 시작했다.  찬송을 두세 곡 부르는데 다시 그 사람이 나타났다.  화를 버럭 내며 가라고 소리 지른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길 속에 또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사정 좀 봐주세요.”  거듭 사정을 했지만 안된다고 한다. 은혜받자고 성도들을 데리고 나와 맘 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생각을 바꿨다. 급히 차를 몰아 상계동 골짜기를 찾았다. 

흐르던 물이 얼어붙어 평평하고 그 위에 눈까지 소복이 덮여 기도하기 참 좋았다. 그냥 눈 위에 앉아 더욱 처량하게 아니 더욱 간절히 기도했더니 은혜가 갑절로 임했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추운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성령에 사로잡혀 기도를 했다. 오히려 눈 위에서 눈을 맞으며 기도한 것이 생애 최고의 은혜였다고 엄청 좋아들 했다. 

새벽 네시에 기도를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했다.  은혜받기 전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은혜받고 나니 그 사람이 불쌍하기도 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차를 그 기도원 앞에 댔다.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내려 정문 앞에 꿇어 앉아 정말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참 기도한 후 눈을 뜨니 그분이 또 나와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정중히 사과했다.  돈을 갖고 오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그리고 덕분에 정말 은혜스럽게 기도했다고 오히려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 위에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드렸다. 우리에게 일생 최고의 은혜와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주님이 동원하신 그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