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창균 교수 /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

16세기 종교개혁은 복음의 본질을 재천명한 교회 갱신 운동이었다. 종교개혁 신학은 개신교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며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18세기 경건주의와 웨슬리신학, 19세기 부흥운동의 신학, 그리고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역사적 원천 가운데 하나다. 복음주의의 정체성을 해명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종교개혁이다.

복음주의와 종교 개혁의 관계는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으로 나누어 논의할 수 있다. 루터는 개혁자이기보다는 복음주의자이기를 원했으며, 복음주의자 또는 복음주의적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것도 종교개혁자들이었다. 루터를 추종하던 종교개혁파 교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복음주의적’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루터가 복음주의란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 종교개혁과 현대복음주의와의 특별한 관계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와 동의어로 사용된 것이며,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은 복음주의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개혁과 현대 복음주의의 관계는 그런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것에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종교 개혁의 요체는 ‘세 가지 오직’(Three Solas)이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총’(sola gratia) 그리고 ‘오직 신앙’(sola fide)이 그것이다. 종교개혁 신앙은 ‘오직’ (alone)이란 단어 옆에서 서거나 쓰러진다. 종교개혁의 형식적 원리가 ‘오직 성경’이었다면, 내용적 원리는 ‘오직 신앙’이었다.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칭의의 교리와 신앙의 근간은 성경이라는 성서관과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 설이다. 루터가 일평생 관심을 기울이며 고심했던 것은 인간의 구원 문제였다. 이를 위해 수도사가 되어 금식, 철야기도, 육체노동을 비롯하여, 온갖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성인의 공로에 의지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에 이르기 위한 그의 모든 인간적 노력은 실패로 끝났으며, 그가 발견한 것은 칭의의 교리였다.

구원은 인간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총으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본다면, 오직 은총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반면, 인간 편에서 본다면, 오직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시며,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성경을 중시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중심 원리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궁극적인 권위였다. 루터는 인간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교리를 성경을 통해 발견했다. 따라서 그는 성경 보다 세속 교회에 더 권위를 부여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거하여 오직 ‘성경만으로’를 주장하고 성경의 권위에만 의존했다. 그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강대상 아래 숨겨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평신도들도 성경에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평신도들은 성경을 읽고 교회의 잘못을 발견하게 됨에 따라 종교개혁에 적극 동조하게 되었다.   한편, 로마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성직자가 있어 양자를 중보한다고 가르쳤다. 이에 반해,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중보자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각자 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죄를 하나남 앞에 가지고 나가 용서를 받을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제사장이고 모든 제사장은 그리스도인이다.’ 이런 루터의 사상은 교회 안에 존재하던 영적 계급을 허물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적 권위와 기회를 균등이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종교개혁의 중심 주제들이 복음주의 운동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이 종교 개혁과 복음주의의 내적 관계다. 종교개혁의 표어,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신앙의 원리가 복음주의의 뿌리요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복음주의는 이신득의 교리와 오직 성경의 원리와 같은 종교 개혁의 중심 주제를 확고히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종교개혁은 복음주의의 초점과 결정적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복음주의의 전 지평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은 복음주의의 근원적 원천이기는 하나 유일한 근원은 아니다. 현대 복음주의는 종교 개혁뿐만 아니라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운동과 같은 뿌리로부터도 상당한 자양을 공급받으며 형성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무엇보다도 교회 개혁에 관심이 있었다. 종교개혁의 과제는 이미 정착된 기독교 문화의 맥락에서 기존 교회의 구조를 개혁하고 변화시키려는 것이었다. 반면, 불신자들을 회심시키는 복음 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반면, 복음주의는 불신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회심과 복음 전도에 우선권을 두는 전도와 선교를 강조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구원을 죄와 용서라는 법적인 면에서 이해한 반면,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을 통한 내적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대 복음주의는 현대라는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현대성으로부터도 적지 않은 요소를 받아들였다. 상식 실재론, 대중주의, 개인주의, 경험주의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사상의 중요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으로 복귀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현대 복음주의가 종교 개혁 유산을 계승하지 못하여 위기를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 지성주의다. 종교개혁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성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이는 종교개혁이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루터는 비텐베르그 대학, 쯔빙글리는 츄리히 대학, 그리고 칼빈은 제네바 대학을 근거로 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 그들은 대중적 반지성주의 운동에 반대하고 고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현대 복음주의는 대학이나 학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지성적인 면에서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지성적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반성하고 이를 보완하여 복음주의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