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고흐>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라는 화가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귀를 자른 화가라는 이미지다. 그때가 1888년 12월 27일인데 겨울이고 그것도 밤중에 고흐는 순식간에 그 일을 감행한 것이다. 이 일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건 이후에 그린 두 개의 의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화가들은 모든 이야기를 그림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남 프랑스 아를르에서 예술인 부락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늘 마음으로 흠모하는 고갱(Paul Gaugin 1848~ 1903)과 함께 지내기를 원하였다. 고흐는 1888년 2월에 아를르에 도착했고, 간절한 초청으로 그해 10월에 고갱도 그곳에 도착하게 된다.
고갱이 올 것을 고대하면서 고흐는 고갱이 쓸 걸상과 침대도 자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마련해 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고갱이 쓸 팔걸이가 있는 고급 걸상은 하나를 준비했지만, 자신이 쓰려는 걸상은 비록 엉성하기는 하지만, 12개나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갱을 열두제자 중 하나인 것으로 생각하여 고갱을 중심으로 열 두 제자가 모여 ‘하나님나라’건설에 필요한 예술 활동을 펼쳐 나가는 것이 고흐의 꿈이었다.

▲ <빈센트의 의자>

그러나 고갱이 도착한 후, 그런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우선 고갱이란 인물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 럼 그런 신적 존재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의 기분은 엇갈리기 시작했고 서운 함과 실망, 그리고 노여움이 쌓인 끝에 드디어 고갱이 온 지 3개월도 안 되어 그 사건은 터진 것이다.

사건이 있던 밤, 저녁 후 산책하는 고갱의 뒤를 고흐가 손에 면도칼을 쥔 채 좇아 나 갔다. 고갱의 회상에 따르면, 누군가 뒤따라오는 인기척이 있어 뒤 돌아 보았는데 거기에 거의 광적인 모습을 한 고흐가 있었고, 고흐는 고갱이 압도하는 그 카리스마에 눌려 도리어 도망치듯 하숙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귀를 잘랐다.
게다가 귀를 자른 이후에 그린 것이 자신의 걸상(La chaise De Vincent 1889. 1)과 고갱의 걸상(La chaise De Paul 1889. 1)이다. 두 걸상은 이미 주인은 없다.

고흐는 정신 병원으로 갔고, 고갱은 자신의 꿈을 좇아 타이티로 떠났다. 자신의 의자에는 자신이 즐겨 피우던 파이프와 엽연초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두권의 노란 책과 촛불이 놓여져 있다. 노란 책은 그에 대한 희망과 기대 섞인 사랑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의미하고 있고, 촛불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며 타고 있는 고흐의 마음일 것이다.

▲ 고갱(Paul Gaugin 1848~1903)의 <고갱의 의자>

그가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를 때, 가룟 유다의 배반 때에,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대제사장 종의 귀를 칼로 쳐 떨어뜨린 것 같이(마 26:51), 고갱을 배반한 자신의 귀를 스스로가 잘라 처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심령은 인간으로 채워지지 못한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인간은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빈공간이 있는 것이다. 늘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았던 고흐, 그러나 한 순간 그것을 사람으로, 어느 다른 것으로 채워 보려는 고흐의 소망은 결국 빈 의자로 남게 되었고, 결국 고독과 외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삶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