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원리강론’과 ‘성가'라는 책자가 성경, 찬송가와 합본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합본책자들의 검은색 가죽표지에는 통일교의 공식 명칭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마치 통일교와 한국교회의 성경, 찬송가를 발행하는 기관들이 합작해서 만들어 낸 것 같은 외형을 취하고 있다.

이같은 ‘작품’은 통일교 출판사인 ‘성화사’가 시중의 제본업자들을 통해 제작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청을 받은 제본업자들은 성경 등 각각의 표지를 벗겨내고, 합본용 표지로 다시 제본작업을 해서 성화사에 납품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본업자에 따르면 성화사의 합본작업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수요가 발생할 때마다 수시로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일을 해온 제본업자 중에는 서울의 한 대형교회 안수집사까지 포함돼 있는 사실도 취재 결과 확인됐다.

▲ 작업실 입구. 이곳 지하 작업실에서 '통일교 물건'의 상당수가 만들어졌다

3가지 유형으로 합본 판매
이 합본책자는 현재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통일교측 '청파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현재 발견된 합본 유형은 3가지로, '성경+찬송가+성가'와 '찬송가+성가' 그리고 '원리강론+찬송가+성가'형이 그것이다.

 '성경+찬송가+성가'형에서 성경은 대한성서공회 발행(90년 9월 20일자) 개역한글판 성경전서(154판)가 사용됐다. 찬송가는 대한기독교서회가 95년 11월 30일자로 발행한 것(76판)이 이용됐다. 성경과 찬송가의 판권면은 각각 원래 그대로인 채이다. 여기에 문선명 교주가 작사한 곡들이 주축이 된 소위 통일교의 ‘성가집’이 성경과 찬송가 사이에 끼여서 제본된 것이다. 이 합본책의 표지 앞면에는 '찬송가 성가'라는 표제가 상단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통일교의 공식 명칭이 하단에 각각 새겨져 있다. 측면에는 '성경전서 찬송가 성가'로 표기돼 있고, 뒷면에는 ‘성경전서’라고 돼 있다. 뒷면 표지를 넘기면 ‘대한성서공회 발행 성경전서’라는 글귀가 그대로 표기돼 있다.

▲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통일교 전문서점인 '청파서점'

'찬송가+성가'형에서의 찬송가도 대한기독교서회의 것인데 95년 8월 30일자 발행 23판이 합본됐다. 이것의 표지 측면과 앞면 상단의 표제는 '찬송가 성가'이고, 역시 앞면 하단에는 통일교 명칭이 표기돼 있다. 특히 이 경우에는 뒷표지 안쪽 간지 판권면에 기록된 발행소가 대한기독교서회로 돼 있어 마치 기독교서회가 이 합본책을 만들어 통일교측에 납품한 것 같은 외형까지 취하고 있다.

'원리강론+찬송가+성가'형에서의 찬송가도 대한기독교서회의 것인데 89년 11월 20일자 발행 20판이 사용됐다. 표제는 '원리강론 찬송가 성가'로 상단에 표기돼 있고 하단에는 역시 통일교 명칭이 새겨져 있다. 이 합본은 심지어 통일교의 ‘가정맹세’와 문선명 교주의 생일 등을 기리는 ‘7대명절’이 앞쪽에 기록되어 있고 문교주의 사진까지 들어 있는 것이다.

도대체 통일교측은 어떤 목적으로 이같은 합본작업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해 통일교의 성화사측은 단지 “영업상의 편리를 고려해서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교측과 한국교회의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합작해서 만들어 낸 것 같은 이 합본책자들의 외형상의 인상이 통일교측의 의도와 관련해서 주목되고 있다.

▲ 원리강론과 찬송가가 함께 제본되어 있다

공회·서회 “전혀 몰랐던 일”
그렇다면 통일교측의 합본책자 제작에 사용된 성경, 찬송가를 발행하고 있는 기관들은 과연 어떤 입장인가. 이 일을 허락한 것인가, 아니면 이미 알고는 있었으나 눈감아 준 것인가, 전혀 무관한 입장인가.

성서공회측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본지의 취재가 진행되면서 비로소 이 같은 합본책자가 판매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월 26일 성서공회 정말용 부총무가 한 말이다.

“한때 공회가 찬송가도 발행하지 않는가 하는 오해도 받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합본을 한 적이 없다. 몇 곳에 찬송가와 합본하는 용도로 성경을 半제품(표지 제본작업은 하지 않은 상태)으로 보급한 사실은 있지만, 이 경우 반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형태의 합본용으로 팔지 못하도록 조건화해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데에서 우리의 반제품이 저들의 합본작업에 사용될 수도 없는 것이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조사를 해본 결과 공회측 사람 어느 누구도 이 일에 관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일반찬송가와 통일교 성가가 한 책으로 만들어졌다

통일교측의 합본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은 기독교서회측도 마찬가지이다. 김성재 영업국장은 “이제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이같은 일에 서회직원이 개인적으로 개입되었거나 서회자체가 조직적으로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면서 “중간에 브로커가 존재할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이들 기관에서 성경이나 찬송가를 통일교측에 판매했거나, 합본제작을 알고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성경를 발행하고 있는 한 기관의 중진 간부의 ‘귀뜀’으로 탐문 취재한 결과 문제의 제본업자 한 사람을 찾아 낼 수 있었다는 점이 ‘몰랐다’는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어느 정도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기를 거부한 성화사의 영업책임자 김모 차장이 “약 1년 6개월 전부터 영업책임자로 일해 오는 동안에는 그 전부터 해 오던 일이어서 본인 책임아래 임의적으로 합본을 했지만, 그 이전 것에 대해서는 허락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해명한 점도 의문을 낳게 한다.

특히 3월 8일 보충취재시 서울 종로 5가에 사업장을 둔 제본업자 박모씨(서울 명일동 M교회 안수집사)가 “성서공회 직영 반포점에서 앞으로 더 이상 (성경를) 주지 않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생계문제를 들먹이며 기자에게 언성을 높였던 점도 의구심을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자가 성서공회의 입장을 취재한 날은 2월 26일이었고, 성서공회 관계자에게 박씨에 대해서 정보를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다는 말일까?

어찌됐든 통일교측의 이같은 합본작업은 조속히 막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성서공회나 기독교서회측 관계자들도 일단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성서공회 부총부 정말용 장로는 “원형을 변형시키지 않는 한, 공산권이든 이단이든 성경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보급한다는 것이 공회의 기본 방침이다. 그래서 20년 전 박태선 전도관에도 공회가 직접 제본해서 신약만 두세 차례 (만 단위로) 공급했었다. 그러나 원형을 변형시킨 이번의 합본에 대해서는 법적인 검토를 거쳐 문제가 된다면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독교서회 영업국장 김성재 장로도 “묵과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라며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저작인격권 침해” 법적판단
통일교측의 이같은 합본작업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법적으로는 어떻게 되는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이호흥 책임연구원은 “저작물의 제목, 내용, 형식을 변경당하지 않을 저작인격권 중 제목과 형식을 변경당한 경우로 볼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민형사적으로 문제를 삼아 제동을 충분히 걸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관련 책임자의 사과문까지 신문 지면 등을 통해 받아 낼 수도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주명수 변호사도 “저작인격권 상의 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실재로 현행 저작권법 제13조 1항에는 “저작자는 그 저작물의 내용, 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
즉,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 그리고 제호를 무단으로 바꾸지 못하게 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저작물에는 저작자의 인격이 반영되어 있는 관계로 저작자의 본의가 아닌 변경을 금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고자 한 취지이다. 물론 당사자가 허락한 경우 이 법조항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비록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경우라도 이는 ‘친고죄’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직접 문제를 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3월 8일의 보충취재 과정에서 통일교측 성화사 관계자들은 “법적으로 확인해 보니 문제될 것이 없더라”면서 서점 내부매장 사진촬영조차 물리적으로 막는 등 1차취재 때보다 더 강하게 기자를 물리쳤다. 제본업자 박씨도 “찬송가와 복음성가의 합본 등 그 외에도 합본된 것은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것만 문제삼느냐”면서 “법에 걸린다면 당사자가 고발할 일이니 상관하지 마라”며 발끈했다.

그 동안 저작권 보호에 민감해 왔던 성서공회. 사장되어 버린 신작 증보판 및 수정본 찬송가 제작으로 입게 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법적인 대응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기독교서회. 통일교측의 합본에 이용된 찬송가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찬송가공회. 이들 기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