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창균 교수 /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장

경험을 강조하는 문화적 성격이 현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근세 서구 사상의 흐름은 이성과 사유를 중시하는 대륙의 합리론과 경험과 상식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의 경험론으로 대별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실증주의와 비판주의와 같이 경험을 중시하거나 합리주의에 반대하는 풍조가 일어나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신학 분야에서도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 현상이다. 17~18세기 정통주의 신학은 성경, 즉 메시지를 신학의 유일한 근원으로 간주했으나, 19세기초부터 시작된 현대 신학은 메시지와 더불어 인간의 상황을 신학의 두 축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 전통은 종교적 경험을 중시하고, 그것을 신학작업의 주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 신학의 일반적 경향은 인간의 경험을 신학작업의 중심과 토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복음주의 신학 역시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 가운데 하나다.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 신앙은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며, 진정한 종교는 경험적 요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복음주의가 정통주의와 구별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정통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정확한 교리로만 이해하는데 반해, 복음주의는 정통 교리와 더불어 정통 실천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주장하거나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 복음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종교 개혁적 신학개념과 갱신 및 회심의 정신이 결합되어야 복음주의가 되는 것이다.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자유주의나 복음주의 외에도, 이단 종파나 사교 집단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몰몬교는 몰몬경이라는 새 교리를 주장하고, 통일교는 새로운 계시에 근거하여 새로운 미래를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종교적 경험은 신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종교적 경험은 기독교와 신학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어거스틴의 회심이 그 대표적 사례다. 386년 여름 밀란에서 수사학 교수를 하던 어거스틴은 옛 삶을 단절하고 새 삶을 시작하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 알리피우스의 집 정원 한 구석에 앉아 죄책감에 사로잡혀 울고 있었다. 그 때, 이웃집에서 한 아이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 그는 옆에 있는 성경책을 폈을 때,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에 눈이 멎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이 말씀을 통해 밝은 빛이 그의 가슴을 비쳤으며 모든 의심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387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세상적인 것과 완전히 결별했다. 그는 자신이 누리던 세속적 특권을 포기하고 그의 여생을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했다.

한편, 루터와 칼빈은 기독교 진리의 주관적인 면보다는 객관적인 면, 성령 체험이나 종교적 경험보다는 말씀 중심을 강조했다. 종교 개혁자들이 종교적 경험의 동력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급진적 또는 좌파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재세례파로 대표되는 급진적 개혁자들은 말씀보다 성령에 더 우위성을 두었으며 체험적 신앙을 강조했다.

종교개혁 이후 경험적 전통이 개신교에서 표출된 것은 17세기 경건주의였다. 그것은 엄격한 지성적 신학에 치우쳐 활기를 잃어가던 정통주의 교회에 뜨거운 개인적 신앙과 종교 체험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켰다. 특히 독일 경건주의는 루터교 전통을 이어받아 종교개혁의 기본 교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종교적 감정과 경험, 신앙의 실천을 강조했다.

경건주의의 최대 관심사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이었으며, 경건주의 신학의 과제는 중생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경건주의의 신학은 한마디로 신앙생활의 정서적인 면과 실천적인 면을 중시하는 경험의 신학이며, 경건주의의 가장 큰 공헌은 종교적 경험의 의미를 재발견한 것이다.

종교적 경험주의는 18~19세기 웨슬리 부흥운동과 대 각성운동, 20세기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 등 개신교 신앙운동을 촉진하는 동인이 되었으며, 현대 복음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체험적 복음주의는 종교적 체험을 복음주의의 본질로 생각하여, 교리보다 경험을 강조한다. 기적적 치유, 방언, 예언 등 성령의 체험적 은사를 신앙의 본질로 강조하고 있다.

경험주의는 미국에서 실용주의 사상과 접맥되며 새롭고 비옥한 토양을 발견하게 되었다. 미국 교회는 기도회와 성경공부를 통해 회심과 회개를 강조하고 열정적 신앙을 구원의 토대와 중생의 증거로 간주했다. 최근 들어 미국의 경우,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와 같은 기존 교단의 교인 수가 20~40%까지 줄어든 반면, 오순절 성령운동 교단의 교인 수는 2배에서 3배나 늘어났다. 오순절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성령체험, 즉 성령의 현존에 대한 직접적 체험이다. 성령운동 교회는 ‘기독교에서 가장 체험을 강조하는 교단’이며 ‘권위적 교리와 전통적 예배의 냉랭함에 반발’해 일어난 운동이다.

한편, 현대 신학의 출현과 더불어 신학에 대한 종교적 경험의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적 경험을 중시하여 신학작업의 주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시작하여 리츨, 하르낙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신학 전통은 경험을 강조했다. 또한 대부분의 현대 구미신학은 신적 계시 보다 인간의 경험과 더불어 시작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경험이 신학작업의 중심과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대 교회와 신학이 한결 같이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체험적 복음주의와 더불어 복음주의의 또 따른 축을 형성하고 있는 교리적 복음주의가 그 대표적 사례며, 근본주의, 정통주의, 세대주의 등이 이에 속한다. 그것은 경험보다 교리에 대한 신념을 기독교 본질로 간주하며 복음주의를 기독교의 교리에 토대를 둔 신학적 신념으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 종교적 경험에 교리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