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많은 부목사들이 고민하는 것처럼 나의 부목사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부목사’ 라는 단어의 ‘부’ 자의 뜻이 ‘목사가 아니다’(不)라고 생각해야 부목사 생활에 승리한다고 하기도 했고, 다리가 부러졌을 때 사용하는 ‘부목’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담임목사님의 공백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유머가 유행했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이 ‘부목사 시키면 된다’였다. 대형교회의 부목사 생활이 그렇듯이 마치 아침에 출근하는 보험회사 직원처럼 가방을 들고 교직원 회의를 해서 깨질 사람들은 깨지고(?), 이런 틈바구니를 해쳐나가는 스릴을 느끼기도 하고 그날의 심방 용량을 달성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

이와 같은 반복된 일정 속에서 교회의 큰 변화가 찾아 왔다. 새로운 담임목사님의 부임이었다. 40대 초반의 젊은 목사님이었다. 그분은 경력이나 이미지와는 다르게 꼭 노인 같았다. 뒷짐을 지고 걷는 걸음걸이, 조용한 음성, 절대 조급하지 않고 매사에 반드시 두드리고 움직이는 행보, 지긋한 시선, 본문에 충실한 강해설교… 40대의 젊은 목회자에게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분이 바로 지금 선한목자 교회를 섬기시는 유기성 목사님이다(1999년 안산광림교회의 제 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유 목사님과의 만남에서 가장 큰 충격은 회의시간이었다. 중대형교회의 부목사는 보통 통계나 수치에 익숙해져 있다. 왜냐하면 담임목사가 좋아하는 회의 메뉴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치와 통계를 알맞은 타이밍에 보고해 주면 그날 회의에서 절대 깨지지 않는다! 나는 군목을 경험했기 때문에 비교적 조직(?)에 민감하기에 어떤 길로 가야 담임목사에게 깨지지 않는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기다린 회의시간… 그런데 유목사님의 질문은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배 목사님은 요즈음 성령님이 어떤 마음을 주세요? 성령님이 뭐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갑자기 난감해지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몽롱해졌다. 모든 교역자들에게 이런 유형의 질문을 하고 일일이 다 들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메모지에 메모를 하고 기도를 하고 회의가 끝났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회의 중 참으로 이상한 회의였다.

유 목사님과 함께 동역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분의 목회의 중심을 보게 되었다. 유 목사님 스스로 뿐 아니라 모든 교역자들에게 귀가 닳도록 들려주었던 것은 ‘주님의 음성을 듣는 목회’였다. 세상의 많은 목회자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인 때문도 아니고, 우리나라 경제 때문도 아니고 교회의 위치 때문도 아니다. 목사 스스로의 영적 문제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목회’가 목회자의 생명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목사는 교회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로 가는 것을 은혜로운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구조로 갈 때가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한다.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시다. 목사이든지 교인이든지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뜻인지 분별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영적 긴장이 필요하다. 유기성 목사님이 하셨던 설교 원고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설교 원고를 인용하고 싶다.

“저는 목사로서 늘 기억하는 예화 하나가 있습니다. 19세기 말 스펄젼 목사님이 영국에서 목회하실 때, 몇몇 미국 교회 목사님들이 당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직접 들어 보기 위하여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 그들은 먼저 조셉 파커(Joseph Parker) 목사님이 시무 하시는 City Temple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2천 여명이 모이는 큰 교회였습니다. 예배당을 떠나면서 미국 목사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셉 파커 목사님은 정말 위대한 설교가야!” 하면서 칭찬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찰스 스펄젼이 설교하시는 Metropolitan Tabernacle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났을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딱 한 마디의 말은 이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위대한 구주이셔!” 

안산광림교회는 유기성목사도, 부목사도, 전도사도, 장로님도 아무 아무개 권사님도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은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드러나시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라고 마음대로 하지 말고 장로님도 마음대로 하지 말고, 성가대장도 교회학교 부장도 선교회장도 속장도 마음대로 하지 않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경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