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까지도 폭삭 각교회 구호물품

“역시 한국교회는 살아있습니다. 이 많은 구호 물자가 전국에 있는 교회들이 보낸 것들입니다.”
태풍 ‘루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남산초등학교에 구호 캠프를 차린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단장 조현삼 목사는 한국교회가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8월 31일 늦은 오후부터 캠프를 차리고 가장 먼저 구호를 시작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캠프에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문지방 닳듯이 오가며 필요한 구호물품을 줄 서서 받아가고 있었다.
대부분 물이 갑작스럽게 덮친 탓에 몸만 빠져 나온 사람들이라 대피소에서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골목마다 버려진 쓰레기와 장롱, 가재도구 등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는 차츰차츰 정리 되어가고 있었다. 봉사단이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고 또 식사와 라면, 음료수를 계속 제공했다.
봉사단에서 지원한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면서 쓰레기를 트럭에 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해를 입지 않은 지역 교회의 교역자들이 교회 승합차로 인근 지역에 수해지원 물품을 계속해서 나르고 있었다.

내곡동과 인근 마을은 급작스럽게 물이 불어나면서 가옥들의 1층은 모두 물에 잠겼다. 지하에 위치한 교회들은 모두 물에 잠겨 교회 시설을 밖에 내다가 물로 씻어 말리거나 쓸 수 없는 것은 버리고 있다.
“수해를 입은 교회는 자체수습 하느라 구호활동에 신경쓸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수해를 입지 않은 교회는 교역자와 성도들이 나와 자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봉사단 강릉지역 팀장인 김창수 목사(강릉 갈릴리교회)는 교회가 여러 곳에서 봉사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력과 장비가 턱없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그나마 내곡동 일대는 도움의 손길이 있어 거리청소나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받을 수 있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이런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교회에서 방역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도로가 끊어진 경우는 그저 복구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 인근교역자 성도 앞다퉈 자원봉사

“이틀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 수해 입은 사람들을 돕다가 오늘 이 곳으로 왔습니다. 이곳은 그래도 복구하는 것을 도우려는 손길이 많지만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전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것 같아요.”
예수제자운동 선교회 소속이라고 밝힌 장예영 씨(관동대 수학교육과4)는 “기독교동아리 학생들이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자신도 수해복구 활동이 끝날 때까지 이 곳에서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교회가 홍수로 쓸려갔다는 성산면 위촌리에 있는 위촌리교회를 찾아갔다. 홍수 직후 내천의 범람과 토사가 흘러들면서 논은 이미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내천의 물길도 기존의 내천이 아닌 밭이나 논으로 흘러가고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토사가 들판을 덮고 있었다. 군데군데 깊게 파인 도랑과 파괴된 가옥들, 그리고 설치미술 하듯 들판에 누워있는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 폭우로 무너진 강원도 위촌리교회

“여기가 교회입니다. 물이 발목에 자박자박 찼을 때 잠깐 피했다 들어올 요량으로 나갔었는데 급작스럽게 물이 불어나면서 교회를 휩쓸어 가버렸습니다.”
이동우 전도사(47)의 말대로 교회 터는 평평한 흙으로 덮여 있었고 그 옆으로 10미터 떨어진 곳에 보이는 십자가 탑과 교회 지붕이 교회였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해 주었다.
교회 역사 30년만에 위촌리교회가 겪었던 물난리가 아예 교회를 사라지게 한 셈이다.

그러나 이 전도사는 물난리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게 한 사건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동우 전도사가 이 곳에 부임한 것은 95년. 늦깎이 신학생으로 사역의 길을 나섰고 위촌리에 왔지만 동네에서는 그다지 교회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수해는 교회와 동네가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홍수로 인해 마을 위쪽에 혼자 살던 동네사람이 죽음을 당했다. 시신을 찾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수습하는 것을 꺼려했다. 아예 시신을 만지려들지 않았다. 이때 이 전도사가 나서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이 일로 냉정하게 대하던 동네어른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마을 회관을 내어주어 거처를 마련해주고 또 그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아끼던 서적들과 집안의 가재도구를 챙기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생각하면 제가 입은 피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언제 완전한 복구가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전도의 길이 열려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이 전도사의 뒤쪽으로 올망졸망한 자녀들, 정양림 사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촌리교회를 뒤로하고 저수지 붕괴로 마을 4개가 침수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석리 저수지와 모산 저수지가 붕괴되고 오단리 저수지는 보가 터져 인근 마을을 휩쓸어버렸다. 모산리는 인명피해가 많이 났지만 다행히 신석리는 인명피해가 없었다. 모산리는 길이 막혀 갈 수가 없었다. 신석리에 있는 신석성결교회로 차를 몰았다. 신석성결교회는 교회가 물살에 반파된 채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길이 끊어져 차를 먼발치에 세워두고 걸어가야 했다.

밤 10시에 저수지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물이 마을 전체를 집어삼키고 동네 4곳을 휩쓸어버렸다고 말하는 이명길 목사(60)는 마을 회관이 붕괴 직전에 바람과 비가 멈춰 이곳에 대피해 있던 30여 명이 죽음에서 벗어난 체험을 털어놓았다.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컴컴한 밤에 넘실대는 물결을 본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 더이상 절망없다 한마음속 구슬땀

예배당은 토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어린이집의 옷가지들과 학습도구들은 밖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었고 이 목사의 젖은 책이 널려 있었다.
“인근 교회 대부분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금 일어서려고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이렇게 구호활동을 해주셔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시청에서 지원 나온 김남원 씨는 교회가 수해지역을 돌보고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는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신석리를 벗어나기 위해 마을을 지날 무렵 한 농가에서 밭고랑을 파고 거기에다 모종한 배추를 옮겨 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제 갓 자란 배추를 심는 농부의 분주한 손길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