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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올라 ‘눈 씻고 마음 씻고’
2002년 09월 04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박종선 기자

한겨울의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던 1637년 1월30일, 인조대왕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500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남한산성에서 내려와야 했다. 삼전나루(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20만 대군을 배경으로 기세 등등하게 앉아 있는 청 태종을 향해 세 번이나 공손하게 절을 해야 했다.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이른 바 삼배 구고두의 굴욕적인 역사가 쓰여진 날이다.

이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 남한산성과 삼전도(광진교와 살곶이 다리 사이에 있었던 나룻터)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 전란기를 경험했던 인조는 등극과 동시에 전국의 군사시설을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남한산성 역시 인조 2년(1624) 7월부터 2년 4개월간의 개축공사를 거쳐, 인조 4년(1626) 11월에 석성으로 완성됐다. 당시 남한산성의 둘레는 6천300보(약 4.5km)였으며 4곳의 장대(지휘 관측소)와 4개의 대문, 그리고 1천900여 개의 여장(성곽 위에 낮게 쌓은 담장)과 3개의 옹성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인조는 병자호란이 나기 직전(1636년) 1만3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대대적인 산성 방어훈련까지 마쳤지만 청나라의 12만 대군과 혹독한 겨울추위 앞에서는 이렇다할 싸움 한번 못해보고 농성 45일만에 백기를 들어야 했다. 그 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병사했고, 인조에 이어 효종으로 즉위한 봉림대군도 끝내는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 아픈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다. 산성리는 대여섯 개의 높은 봉우리들을 사방으로 둘러 세운 천연의 요새여서 일찍이 백제의 온조왕이 도읍으로 정했던 곳이며 신라 문무왕은 이곳에다 남한산성의 토대가 된 주장성을 쌓기도 했었다. 지금의 남한산성은 숙종(1693년)때 완성된 것으로 망월봉(502m)과 청량산(498m), 벌봉(515m)과 연지봉(468m) 등을 3∼5m 높이의 돌담으로 연결했는데 성곽의 길이는 옹성을 포함해 모두 12.3km에 달한다.

임금이 거처했던 행궁은 상궐 73칸, 하궐 154칸으로 지어졌으나 일제시대와 6·25 전란을 거치면서 소실돼 지금은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또한 동서남북 네 개의 봉우리에 설치됐던 지휘관측소(장대)도 지금은 서장대(수어 장대)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흔적뿐이다.
수어 장대는 청량산 정상에 축조된 2층짜리 누각으로 서울 동남부와 경기도 남부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영조 때 증축했다는 2층 누각의 안쪽 현판에는 무망루라고 쓰여 있어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않으려는 선조들의 의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수어 장대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200여m쯤 내려서면 두 동의 아담한 건물이 나오는데 숭렬전이다. 백제의 시조 왕이자 이곳에 도읍을 정했던 온조왕과 남한산성의 축성 총책임자였던 이서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남한산성에 오른 김에 들러 볼 곳이 또 하나 있다. 망월산 중턱에 자리잡은 현절사다. 병자호란 때 결사항전을 주장했다가 소현세자, 그리고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로 잡혀갔던 삼학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삼학사란 오달제와 윤집, 홍익한을 말하는데 이들은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끝까지 충절을 꺽지 않았으며 심양의 서문에서 처형당했다.

산성의 내부에서도 볼 것이 많은데 연못과 정자가 운치있게 어우러진 지수당, 남한산성의 모형과 사료들이 전시돼 있는 남한산성 역사관, 만해 한용운 님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만해기념관 등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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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다람쥐가 내 친구여”

   
▲ 30년간 음료수 행상 박금란 할머니
“이래봬도 단골 고객이 많다우. 다람쥐와도 친구하고 곤줄박이도 먹여살리고….”
남한산성의 서문 밖에서 행상하는 박금란 할머니의 요즘은 꽤나 적적한 게 사실이다. 서문 밖을 오가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하루 매상도 IMF 전보다는 절반 정도 줄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8시면 이곳에다 음료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혼자 사는 집에서 빈둥대는 것보다는 엄청나게(?) 즐겁다”는 게 할머니의 말이다.

39살에 할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할머니는 30년을 한결같이 음료수 보따리를 이고 남한산성에 올랐다. 결국 아들 딸 5남매를 모두 공부시켜 도회지로 내 보냈고 요즘은 벌어도 그만 못 벌어도 그만이란다. 단골 고객들도 반갑지만 할머니에게 반가운 손님은 또 있다. 서문 근처에 둥지를 튼 다람쥐와 곤줄박이가 이따금씩 찾아와서 친구를 해 주기 때문이다.

수풀 속에 먹을 것이 많은 요즘에는 이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초여름까지는 거의 매일 찾아왔었다고 한다. 때마침 산악행군으로 행상 옆을 지나던 군인들에게 음료수 몇 병을 건네며 할머니는 듬성듬성한 치아를 내보인 채 함박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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