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유행을 한 번 타고 사라진 것처럼 나의 삶은 내 전유물이라는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흘러가고 있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도 세월의 흐름을 타고 새 봄의 얼음장처럼 깨졌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의 삶에서 이루어진 것들, 내가 이루어 왔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준비된 일들이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모세를 40년 동안 이집트의 궁정에서 살게 하시고, 40년을 광야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긴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모세를 찾아 나서셨다. 그리고 모세를 만나시고 설득하셔서 사용하신 시간은 하나님이 기다리신 세월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는 80년 투자에 40년 사용이면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는 일에 탁월하시고 정확한 시간에 열매를 따신다.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이라는 신기한 것을 가지게 된 것은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기보다는 모세의 경우처럼 나를 지으셔서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나를 만나시려고 참고 기다리시며 내가 잘 다니는 길목에 드리우신 절묘한 하나님의 낚시에 걸린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기다리시고 두드리시며 문이 열리기를 고대하셨다.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 학교엔 같은 중학교 출신 아이들이 꽤 있었다. 지기 싫어하고 미리 준비하는 성격인지라 그 아이들이 중학교 시절에 배웠을 성경이라는 과목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오래 기다렸던 친구와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처럼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내 삶속에 들어오셨다.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고난을 읽으며 나는 그냥 눈물이 났다. 하염없이 울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구절만 보아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뛰었다. 첫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봄방학 기간 동안 신약성경을 3번 읽으면서 날마다 성경을 읽게 되었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시작한 신앙의 세계를 처음으로 넓혀준 분은 교목이셨던 임장재 목사님이셨다. 1주일에 한 번 있는 채플시간은 은혜의 도가니였다. 목사님께서는 온 몸에 땀을 흘리시며 예배가 끝나면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목이 다 쉴 정도로 열정을 다하여 신앙의 실제를 가르치시며 우리들의 가슴에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불을 던지셨다.

폴 틸리히의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설교를 인용하시며 이사야의 예언이 시적인 은유가 아니라 실제라고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 땅을 흔드실 것이라고 외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사님을 통해 나는 홀로 성경을 읽는 자리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배워가는 자리로 옮겨갈 수가 있었다.

한 해가 지나고 여전히 말씀과 하나님 사랑에 붙들려 있던 나는 교회에도 나가기로 결심을 하였다. 교회에 가면 하나님 사랑하고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나간 교회에는 훌륭한 선생님들과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3이 되면서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학교에 가기 전에 교회에 들러서 하나님께 여러 가지를 기도하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보고를 하고 학교에 갔고 공부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오면서도 교회에 들러서 하루 생활을 보고하는 삶을 살았다. 이것도 그처럼 살아가던 선배들, 교사들의 모습에서 배운 것이다. 김정애 선생님을 비롯한 선배들은 바쁜 시간을 떼어서 출근 전에 그리고 퇴근 후에도 교회에 들러서 많은 이야기를 하나님과 나누는 모습을 매일 볼 수가 있었다.

여름성경학교를 하면 선배들은 기꺼이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봉사를 했다. 평소에도 선배들은 주일학교 선생님을 목이 쉴 정도로 열심히 하면서 성가대를 하면서도 때를 따라 다른 봉사들을 더 했다. 선배들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물질적인 헌신을 기꺼이 하였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큰 행사를 교회에서 할 때에는 심지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참가할 정도로 선배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최장수 선배 부부는 아예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한국의 가족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볼리비아 선교사로 떠났다. 고산병을 비롯한 큰 고난들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들은 지금도 고도가 4천미터나 되는 곳에서 그보다 더 높고 길도 없는 곳을 다니며 선교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김정애 선생님은 그리도 사모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준 설교 말씀들을 빽빽하게 적은 공책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계셨다. 설교라는 것을 적는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설교들을 적기 시작했고 강의들도 잘 적기 시작했다. 이런 습관은 무슨 강의든지 잘 듣게 만들었고 들은 강의들은 곧 내가 할 수 있는 강의들로 만들어 주었다.

교회의 선배들 중에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과 자리를 확보하던 이 병희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학생회 예배가 끝나면 지하실로 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는 꽤 긴 시간 동안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다. 본당에서, 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 하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하나님과 헌신과 열정과 꿈을 가르치셨다.

얼마 전 한 선배는 가진 재산이 별로 없는데도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큰 평수의 아파트를 구입하여 우리 부부를 살도록 초청하였다. 하나님과의 많은 대화 가운데 삶에서 중요한 것을 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이 험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쌍하게 보여서 아파트를 성경을 가르치는 집처럼 사용하고자 하여 성경을 였다.

아이들을 불러서 성경을 가르치는 집처럼 사용하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자신이 배운 하나님을 알려주려는 계획이었다. 맡은 일과 출근해야 할 사무실에서 너무 멀어 사양을 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야 한다는 말씀에 대한 선배의 사모함은 여전하다. 선배는 그 일을 진행하느라 재정적인 손실을 꽤 크게 입어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돕고 세우고 기도하는 꿈을 꾸고 있다.

고2 때부터 집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로 찾아가 다니기 시작한 나의 교회에서 나는 이름도 없는 보석들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고 견고히 하시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보석들을 감동하시고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기둥으로 세워두신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