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주 / 월간중앙 기자

며칠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보좌관 몇 사람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4·30 재보궐 선거로 옮아갔다.

 이들은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으니 그럴 만도 했다. 6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5곳을 차지한 것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변이었다. 반면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은 기초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전 선거에서 23대 0이란 참패를 당했다. 한나라당 소속 국회 보좌관의 설명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증거다. 당초 우리 예상은 열린우리당이 충남 지역 2곳 정도는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행정수도 건설로 충남은 열린우리당의 안방이 됐다고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행정수도의 ‘약발’도 다 떨어진 듯하다. 한나라당에 드디어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이렇게 진단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가 의미가 있긴 하지만 2007년 대선과 연관짓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우리가 잘해서 이겼다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이 잘못해서 외면을 받았다는 평가가 더 옳다. 또 박근혜 대표의 대중적 지지가 승리의 기반이 됐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2007년 대선을 둘러싼 권력 암투가 좀 더 앞당겨지고, 심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은 15대 국회 이후 치러진 대부분 재보궐 선거에서 싹쓸이를 해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 후 야당이 된 뒤 필승 지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98년 4월 2일 4곳에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 해 7월21일 7곳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4곳에서 승리했고 당시 집권당인 국민회의는 종로와 광명을 2곳만 차지했을 뿐이다. 해운대기장을은 자민련이 가져갔다. 99년 6월3일 재보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이 2곳 모두를 석권했고, 2001년 10월25일 선거도 한나라당이 3곳을 독식했다.

2002년 8월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중요한 시점의 재보궐 선거도 한나라당을 위한 잔치였다. 그해 8월 8일 치러진 재보궐선거는 국회의원 지역구만 모두 13곳에 달해 ‘미니 총선’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11곳을 이겼고, 여당인 민주당은 텃밭인 광주북갑과 군산에서만 겨우 체면유지를 했을 뿐이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전두환 군사정권이 만든 민정당이다. 1990년 초 군사정권은 반 DJ 연합 전선을 통한 호남 고립에 나선다. 이른바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이 야합해 합당한 것이다. YS는 특유의 돌파력으로 내각제 개헌 밀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92년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한다.

그것으로 군사독재 세력과 야합 세력은 끝이었다. 97년 대선에서 정통 민주화 세력임을 자임한 DJ가 대권 4수 끝에 대권을 잡은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는 DJ가 만든 민주당 후보로 나선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더구나 현 집권세력은 지난해 4·15 총선에서 국회 과반을 차지함으로써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한 최초의 민주정부가 됐다. 물론 이번 4.30 재보선에서 참패함으로써 과반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렇다면 2007년 대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4.30 재보선이 치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내부는 패배의 암운이 짙게 깔려 있었다. 선수가 높은 국회의원들은 권력 창출보다는 국회의원이 갖는 작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이었다. 원희룡, 남경필 의원 같은 소장 개혁파들은 이런 그들의 모습에 회의를 가지며 당의 변신을 촉구했다.

그러나 웅성거림은 많았지만 별로 변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홍준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를 만들었지만 내분만 격화됐다. 겉으로는 당 혁신이지만 실제는 2007년 대선을 둘러싼 암투였다. 박근혜파와 반 박근혜파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박근혜의 대중성이 다시 한번 입증됨으로써 그의 입지는 당분간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보선 승리로 2007년 대선에 대한 자신감도 어느 정도는 갖게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 권력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내부에서조차 그런 징후가 감지된다. 박근혜 대표의 핵심 브레인인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이 행정도시 건설을 여당과 합의한데 반발해 당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던져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란 게 주변의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학자 출신인 박 의장이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에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당을 떠난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도 패배할 것으로 예상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엊그제 대선을 치른 것 같은데 2007년 대선이 벌써 다가오고 있다. 대권을 꿈꾸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각종 국지전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정작 전쟁에서는 거대한 몸집과 영남이라는 강력한 지지기반을 갖고도 두 번이나 패배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젠다를 선점해 정국을 이끌고가기보다는 오로지 집권당에 대한 반대만 일삼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이런 이유로 열린우리당은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자신만만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젊은 의원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일은 앞으로 20년 동안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고, 읽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희망은 있다. 한나라당이 사이비 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로 거듭나는 게 사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 남북문제, 분배 문제에 있어 유연하게 대처하고, 시대에 앞선 정책을 생산한다면 국민의 시각도 변할 것이란 얘기다. 지금 같은 ‘꼴통 보수’란 불명예를 갖고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역학 구조상 ‘반공 이데올로기’의 반사이익 유혹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에 한나라당의 비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