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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초강국' 경제
미국 '경제 패권'의 종말
2002년 07월 17일 (수) 00:00:00 윤길주 ykj77@joongang.co.kr


그 동안 세계 경제는 미국이 지배해 왔다. 미국 달러화는 세계 공용 화폐로 쓰이고 있으며, 월가는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세계 경제의 심장 역할을 해 왔다. 현재 미국은 세계 경제의 35% 이상을 장악하고 있고,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5대양 6대주에서 돈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미국은 자신들만의 자본주의 모델을 지구촌 곳곳에 심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 패권과 자본주의 모델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위대한 미국의 시대’는 가고, 거기에는 거대한 부실 덩어리만 남았다고까지 혹평한다. 최근의 휘청거리는 미국 경제를 볼 때 이 같은 진단은 성급한 말장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해 미국의 상장 기업 중 25개사가 파산했다. 이로 인해 공중으로 날아간 돈만 2천600억 달러에 달한다. 올해도 벌써 113개사가 좌초했지만 장례행렬은 그칠 줄 모른다. 미국의 경우 상장 기준이 엄격하고 기업 투명성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어 웬만해서는 상장 기업이 파산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데 최근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국가 경제의 근간인 기업의 살생부 명단이 월가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경제는 재정과 경상수지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통상적으로 위험수위로 일컫는 GDP(국내총생산)의 4%대를 넘어섰다. 올해만 미국은 6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악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다른 나라 같으면 모라토리엄(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을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국민의 소득 수준, 삶의 질 등을 감안해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2000년 말 기준 부채 규모가 GDP의 22%인 2조2천억 달러에 이른다. 물론 미국은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돈이 많아 부채 규모가 문제가 안 된다고 강변하지만 다국적 기업에 있어 국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미국이 위기에 처한다고 해서 이들 기업들이 국내로 자본을 옮겨갈 것이란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일 뿐이다.

미국의 자존심을 더욱 구기게 만드는 것은 달러 가치의 폭락이다. 달러화는 세계의 기축 통화로 만국 공용 화폐다. 미국은 늘 ‘강한 달러’ 정책을 써왔고 이를 통해 미국인은 세계 최고의 국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미국 경제가 망가지면서 달러화도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달러 가치는 올 연초 대비 벌써 10% 이상 폭락했다. 이로 인해 달러와 유로화의 가치가 1:1인 시대가 도래했다. 환율 전문가들은 “유로화의 가치가 조만간 달러화를 추월할 것”이라며 “곧 달러화 시대가 가고 유로화 시대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생명은 ‘신뢰’와 ‘신용’이다. 미국은 월가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자본주의가 어느 시대의 경제 체제보다 완벽하고 투명하다고 자랑해 왔다. 그런데 지금 미국 기업들의 잇따른 회계부정으로 월가의 도덕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됐다.

월드컴, 타이코, 엔론, 퀘스트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세계 3위의 제약회사인 머크사가 지난 3년간 124억 달러의 매출액을 과다 계상하는 등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나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심지어 부시 대통령까지 과거 기업인 시절 회계 장부를 조작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공화당 정권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최근 보도에서 “오늘날 질타를 받는 것은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뿐 아니라 미국 자체이며 기업 경영의 복음이라고 자랑했던 미국식 모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기업 회계에서 투명하다고 자랑해 온 미국이 도덕적 암에 걸렸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위기는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우리의 경우 대미 의존도가 높아 미국 경제가 조금만 출렁거려도 곧바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우리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달러 가치 하락에 큰 원인이 있다. 오죽했으면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우리는 감기 몸살을 앓는다고 했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정부나 기업은 내실을 다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달러 가치 하락만 탓할 게 아니라 이 때를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상품 경쟁력을 높여 제값을 받고 물건을 팔 수 있다면 환율을 크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회계 부정 사태는 큰 교훈을 준다. 우리는 이미 기업의 부실 경영과 불투명한 경영 등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을 불러온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재벌 개혁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힘을 기울여 지금은 기업의 투명성이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안주할 단계는 아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여전히 우리의 자본 시장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미국 등으로부터 빠져나온 돈이 우리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 미국의 위기는 우리에게 기회임과 동시에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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