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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생활이 바뀐다
잇단 경제개혁에 자본주의식 변화 바람
2002년 10월 16일 (수) 00:00:00 이영종 yjlee@joongang.co.kr


지난 7월 북한 당국이 취한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북한 주민들의 삶이 확 바뀌고 있다. 북한측은 주민과 외부세계의 시선을 의식해 ‘사회주의 경제의 발전강화를 위한 조캄라고 말하지만 자본주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개혁·개방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달 12일 북한당국이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북·중 국경도시인 신의주를 자본주의 경제의 실험장으로 선포함에 따라 주민들의 경제마인드에 새로운 바람이 일게 만들었다. 생활상의 변화는 꼭 경제부문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담배값 인상에 따른 북한 애연가들의 고초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북한 근로자의 평균임금은 북한 원화로 110원 가량이었지만 17∼20배 인상돼 2천원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는 게 북한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담배값의 경우 갑당 1원 가량 하던 것이 최근에는 50∼60원까지 치솟아 담배 사피우기가 여간 힘들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한 갑을 피울 경우를 단순 계산하면 월급액수에 거의 육박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사정 때문에 최근에는 담배 인심도 박해진데다, 금연족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마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몇 해 전 즐겨피던 던힐 담배를 끊은 것을 계기로 노동신문 등에 금연 캠페인이 벌어지자 고민했던 애연가들이 이참에 아예 결심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생활상의 변화는 사회 각 분야에 퍼져나가고 있으며 평양뿐 아니라 원산 청진 신의주 등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속속 자본주의 바람이 번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지방도시를 다녀온 국책 연구기관의 박사급 연구위원은 “과거 손님이 찾든 말든 무관심하던 국영상점의 판매원들이 너도 나도 나서서 손님 모시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한 택시기사는 ‘과거에는 손님이 많으면 귀찮았는데 요새는 일한 만큼 월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하더라”며 “북한에도 이제 경쟁과 이윤창출의 극대화에 대한 개념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또 방북 경험이 있는 다른 연구원은 “한 상점의 경우 자기들로부터 달러를 바꾼 영수증이 없으면 물건을 팔지 않으려 했다”며 “각 상업기관이나 무역회사 별로도 외화벌이를 위한 경쟁이 불붙고 있음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향은 이미 지난 5월 아리랑 축전이 열리고 있는 평양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당시 행사 취재를 위해 방북한 기자에게 북한의 민족경제협력연합회 소속 간부들은 “우린 정치나 북남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장사꾼은 돈벌이에 전념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을 그었다. 또 축전행사가 열리는 평양 능라도 경기장 부근에 들어선 각 무역회사들의 간이매대(임시 상품 판매대)에서는 한복 차림의 여성 판매원들이 직접 나와 호객행위에 가까울 정도의 판매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숙소인 평양 보통강 호텔의 종업원들은 한 곳에 모여 영어회화를 공부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1층 로비의 매장에는 미키마우스 인형이 팔리고 있었고,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온 생필품이 팔렸다.
또 경기장 부근에는 이탈리아 피자 가게까지 등장했고, 이곳의 지배인은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코카콜라를 권하면서 “피자에는 콜라가 제격”이라고까지 말했다.

아무튼 7.1경제관리 개선조치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게 최근 북한을 다녀온 인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난달 방북한 한 전직 정부 고위관리는 “김정일의 지시내용의 핵심은 지금까지 국가가 공짜로 주던 제도를 중단하겠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껏 공짜로 먹여주고 열심히 일하도록 사상적으로 독려하던 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란 설명이다. 무엇보다 놀고 먹는 일을 없애겠다는 것이고, 노력한 만큼 벌어서 현금으로 필요한 것을 구매토록 한다는 것.

그는 북한 관리들과의 면담 결과를 토대로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북한 정권 수립후 초기에는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점차 게을러졌고 노동생산성도 떨어지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새해에는 엄청난 목표를 세우고 연말에는 가짜 실적 보고를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북한병’을 고치기 위한 조치가 바로 경제관리 개선이라는 말이다.

실제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간부들에게 “건달을 부리거나 놀고 먹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며 “경제생활에서 공짜가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리해야 하고 무상공급과 국가보상 등 혜택도 검토해서 없앨 것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런 조치는 주민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 북한내 각 분야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임금과 물가 조정에 따라 인플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있고, 생산풀의 공급이 따르지 않을 경우 장기적으로 이번 조치가 실패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경제개혁 조치가 일단 첫 출항에 성공한 것으로 잠정 판단해 그  연장선상에서 후속조치인 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을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초대 행정구 장관인 양빈의 임명을 놓고 적잖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외국인을 이 곳의 책임자로 앉히려 했다는 것은 앞으로 북한이 나갈 개혁·개방의 폭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다 대일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북·미관계만 풀리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의식이 주민들 사이에 굳어지고 있다. 사회주의의 오랜 틀을 벗어난 경제개혁 마인드가 외부세계를 향한 주민들의 생각까지 열어 제끼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평양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바람은 각 지방도시로 이미 번져 주민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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