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수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18세기 이신론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메마른 이성주의를 감성이 풍부한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었다. 이들은 감정을 잘 사용했기에 낭만주의자라고 불리웠다.
낭만주의 시대는 대체로 1780년부터 1830년 사이를 지칭한다. 이 50년 동안 바이런, 블레이크, 워즈워드, 콜러리지, 베토벤, 쇼팽, 발자크, 괴테 등의 인물이 나왔다. 신학자로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슐라이에르마헤르가 이 시대에 속한다.

이들 모두가 계몽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으나 진일보해서 그것을 폭 넓게 삶에 적용하려고 하였다. 이미 이들에게는 계몽주의 입장대로 성경이나 교회의 가르침이 진리의 기준은 아니었다. 이성주의자들처럼 명백히 증명할 수 있는 것에서 진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신론은 넘어섰다. 계몽주의 시대 인간 이성은 단지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능만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만 본다면 이성의 범위가 너무 축소되어 버린다. 그런 한계 있는 이성으로 하나님을 논하거나 초월적인 것을 말할 수 없음은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닌가.

사람의 삶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도 그렇게 두꺼운 성경을 주셨지 않은가. 보고 만지고 경험해야만 인정할 수 있는 이성만으로는 사람들의 애환과 환희를 다 그려낼 수 없었다. 하물며 깊은 신앙의 경지를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칸트는 이성의 기능이 훨씬 다양함을 증명했다. 그는 앞에서 말한 기능을 가진 이성은 단지 순수이성을 지칭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성은 더 깊고 강한 면이 있음을 말했다. 양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동물과 다른 도덕적인 존재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가지고 나온다. 이성의 또 다른 한 면이다. 순수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이 기능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을 인간되게 한다. 이것을 그는 실천이성이라 불렀다.
이제 칸트 덕분에 인간 이성에 좀 더 넒은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낭만주의 시대에 와서 덧붙여진 것이 심미적인 면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따지고 외우고 분석 종합하는 일차적인 이성의 활동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다.

실천이성은 오늘의 말로 한다면 EQ에 해당된다. 내면의 소리이다. 감정이기는 하지만 더 깊은 곳의 감정이다. 오감을 통해서 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더 깊은 데서 나오는 그것에 대한 느낌 또는 반응 같은 것이다. 감성이라고도 한다.
경험한 것을 순수이성의 방법으로 분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 느낌은 일차적인 것이 아니라 양심처럼 훨씬 깊은 데서 솟아나는 것이다. 시를 쓸 때 느끼는 영감 같다. 또는 마음속에서 들리는 명확한 음성이다. 요즘말로 한다면 우뇌의 작용이다.

차츰 낭만주의자들은 실천이성부분의 영역을 더 많이 찾아냈다. 직관이나 통찰력은 더 높은 수준의 이성이 아닌가. 그리고 꿈이나 상상력도 삶을 깊이 있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순수이성이 아닌 또 다른 이성이었다. 차가운 계산이 절대로 맛볼 수 없는 경지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이성을 단지 논리나 과학의 영역에 가두기를 싫어했다. 세상은 물리학 이상의 것이다. 차라리 여러 경험들의 풍부함과 복합성이 수학 공식보다 더 위대한 삶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을 다 수용해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나 자연을 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우선 자연을 말하자면 더 이상 커다란 기계는 아니었다. 변화와 다양성 속에 살아 움직이면서 계속적인 창조의 과정에 있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자들은 개별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자연을 같은 의미에서 음미하였다.
삼라만상은 각각 다른 모습이지만 신비하게 원초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과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나였고 완전하고 영원한 전체의 여러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유기적인 통일성에 대한 경험은 이성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어떤 통찰력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과거를 우습게 보았었다. 과거로 갈수록 미개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낭만주의자들은 과거를 사랑하게 된다. 풍부한 감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미신적이고 야만적이던 시절은 더욱 상상력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와 중세는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하긴 낭만주의가 신앙에 유익을 준 면도 있다. 신앙은 사실상 교리나 종교의식 이상의 것이다. 내면에서 울리는 확신과 감사 그리고 감격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실상 우리의 이성에다 말하시지는 않는다. 내면의 소리를 통해서 깨달음과 확신을 주신다. 이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동시에 정통신앙은 진리의 기준으로 성경 말씀이 있다. 내면의 소리는 성경의 인도를 받고 반응하고 규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 일반의 직관이나 통찰력과 다를 것이 없다. 그것으로는 삶을 유익하게 할지 몰라도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은 얻을 수 없다.

마음에서 들리는 음성은 반드시 성경과 조화가 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힌두교나 불교에서 마음으로 깨닫는 것과 차이가 없다. 이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미신적인 신앙이나 신비주의적 신앙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진리의 기준이 없이 너무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낭만주의자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종교다원화를 부르짖게 된다. 기독교만이 진리라고 한다면 편협한 사상이 되고 만다. 모든 종교는 결국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진리는 체험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렇게 의지하는 체험이 곧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