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열 교수/ 숙명여대, 남북나눔운동 연구위원장

남북나눔운동(회장 홍정길 목사)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8일 프레스센터에서 ‘남북나눔운동 10년과 한국교회의 과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 기독교의 통일운동과 남북나눔운동’(이만열 교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교회의 역할’(허문영 박사) 등 심도 있는 발제들로 주목을 끌었다. 주요 발제문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 한국전쟁~이승만 정부  政宗유착 북진통일론 지지

■ 제3공화국 안보논리 인권탄압에 맞서, 통일문제 국민적 영역안으로

■ ‘유신’ 체제하 통일운동 주도 극심한 탄압,  해외기독인 북측과 긴밀교류

■ 1980년대~1990년대 글리온회의 북한대표 초청,  ‘교회협 통일선언’ 교류 큰영향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고 이승만이 집권하게 되면서 정권과 기독교는 밀착하게 되었다. 미군정의 고위관직과 신생정부의 고위관직에는 기독교인이 상당수 진출해 있었고, 국회와 정당에도 기독교인의 수가 다른 종교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승만은 기독교와 밀월관계에 있었다. 때문에 이승만의 집권기를 기독교의 측면에서 보면 ‘정종유착기(政宗癒着期)’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6·25 전에 미군철수를 반대한 기독교계는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피해가 가장 컸다. 이 같은 피해는 교회의 휴전협정 반대운동을 정당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이었는지, 이승만 정부가 내세운 북진통일론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동조를 이끌어 냈다. 정전협정론이 제기되었을 때, 1951년 7월 12일 부산에서 열린 신도대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여하한 고통과 희생이 있다 하더라도 공산세력을 국경선 외로 몰아내고 한국 남북통일의 완전독립을 지향하여 일로매진할 것을 굳게 결의한다”고 했다. 휴전 후 정부의 통일론은 북진통일론과 유엔 감시하의 남북총선거에 의한 통일론으로 정리되었다. ‘정종유착기’의 기독교계는 ‘북진통일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1950년대 중기에 진보정당 계열이 ‘북진통일론’ 대신 ‘평화통일론’을 내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민족의 화해와 서로간의 용서를 먼저 추구했어야 할 기독교계가 이 수준에 머물렀던 것은 통일문제에 관한 한 진보정당 수준의 의식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4·19와 5·16 후 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한국교회도 50년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5·16으로 집권한 군부는 4·19와 더불어 등장한 ‘평화통일론’과 ‘남북교류론’을 일제히 정비하면서, 통일을 위해 먼저 공산주의에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조국근대화’를 명분으로 ‘경제건설’에 힘쓴다고 하면서도 ‘국가안보’를 내세워 부정과 부패를 정당화하였다. 북한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안보하기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와 인권, 사회정의는 잠시 유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정권안보를 위한 이 같은 안보논리는 분단 상황 하에서 민주화와 국가안보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때 기독교도들은 민주화를 이룩하려면 분단현실을 해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종래 민주화와 통일을 분리하여 생각하던 이분법적인 통일론이나 ‘선 민주 후 통일’이라는 단계론적 통일론이 이 시기에 와서 비로소 극복되기 시작했다.

통일문제는 종래 남북의 정권 담당자가 ‘통치권 차원’에서 독점하다시피 했다. 민간이 통일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3공화국에 이르게 되면서 기독교계는 자유당 시절의 정종유착 관계를 청산하고 예언자적인 사명을 회복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되었고 정권으로부터는 반대급부로 탄압을 받았다. 기독교계가 통일문제를 정부의 독점적인 영역에서 국민적 영역으로 끌어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은 안보논리로 인권과 민주화를 탄압하고 있던 군사정부의 간계를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계가 통일운동에 관여하게 되는 계기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다. ‘7·4남북공동성명’ 발표 당시 기독교계는 이 성명이 안보논리의 관점에서 발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기독교계는 이를 “정권간의 이해득실에 얽힌 방편적인 통일논의”로 보고 그것으로 민족분열을 영구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7월 18일에 발표한 ‘7·4남북공동성명에 대한 성명서’에서 남북대화를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면서도 ‘7·4남북공동성명’에 나타난 정신을 적극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정쩡한 드러내고 있었다.

기독교계는 유신체제의 정착으로 남북대화가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통일논의에 적극성을 보였다. 1974년 초, 기독교청년협의회 회원 약 3천여 명은 ‘통일을 기원하는 예배’를 드린 후 가두데모를 감행하였다. 유신체제 하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76년 3월 1일에는 ‘명동사건’을 통해 ‘민주구국선언서’가 발표되었고, 많은 목회자들이 연루, 투옥되었다. 선언서는 민족통일의 긴급성을 주장하였지만 당국은 처리과정에서 이 문제를 간과해 버린 채, KNCC 등 사회참여세력을 용공으로 몰아세웠다. KNCC는 ‘교회와 사회 위원회’, ‘인권위원회’, ‘기독교신앙과 이념문제 협의회’ 등을 열어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이 결코 용공이 아님을 변호하였다. 유신체제 하에서 기독교인들은 통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이런 험난한 벽을 뚫어야만 했다.

유신체제가 극성을 부리던 1978년 10월 17일, 함석헌, 문익환, 윤보선, 이문영 등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재야인사 402명이 ‘10·17민주국민선언’을 공동으로 발표하였다. 골자는 반독재 민주구국 투쟁과 민족염원인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분단 이후 남북의 동포는 공개적으로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는데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북측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남북의 체제와 간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9년, 전 숭실대학의 학장이었고 고향을 북한에 둔 미주 거주 기독교인이었던 김성락이 북한을 방문, 김일성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해외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이 해외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조국의 통일을 논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81년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 대표 45인과 방청인 30여 명이 민족의 화해와 조국통일을 위한 역사적인 첫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 모임을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의 대화’ 제1차 회의라 한다.

해외 기독자들의 모임은 그 뒤 계속되어 약 10년 간 10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초기의 회의에서는 주로 북측의 주문에 따라 김일성 부자에 대한 비판에 신중한 반면 ‘미제국주의’ 비판, 미군 철수 및 한국의 민주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논의의 이 같은 편향성은 당시 이 회의 자체가 국내 언론에 소개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은 “1945년이래 36년 간 이라는 긴 분단역사에 있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과 그 뒤 남북의 기독신자들이 해외에서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1984년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일본의 토잔소(東山莊)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국제문제위원회가 주관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에 관한 협의회(Consultation on Peace and in Justice in Northeast Asia)’가 개최되어 20개국에서 65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를 한국교회와 해외교회들이 함께 본격적으로 협의한 최초의 국제회의로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여기서 발표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전망 - 도잔소협의회의 보고와 건의안’(일반적으로 ‘도잔소 보고서’라 함)은 한국교회 통일운동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 선언을 요약하면, 첫째 한반도의 평화 통일은 화해의 복음의 구체적 실천의 결과요 목표라는 점. 둘째 평화통일은 남한 교회만의 일방적 선교과제가 아니고 남북한 교회 쌍방의 공동과제라는 점. 셋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단순히 남북한만이 아닌 세계 교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회의의 역사적인 중요성은 “도잔소 회의 이후 1985∼89년의 5년 간은 이 회의의 결의와 건의 사항들이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유대 속에서 실천되는 기간이었다”고 평가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교회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2년마다 세 차례에 걸쳐 스위스 글리온에서 만나게 되었다. 글리온 회의로 불리는 이 협의회는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에 큰 전기를 마련했다. 첫 만남은 1986년 9월 2일부터 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에서 세계교회협의회 국제문제위원회가 주최한 ‘평화에 대한 기독교적 관심의 성서적·신학적 기반’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남북교회가 참석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조선기독교도연맹의 4인 대표’를 포함하여 22명이 참석한 ‘제1차 글리온회의’는 성만찬을 나누고 민족애를 확인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한국교회사에 남겨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5년에 이르러 통일문제 논의에 대한 연구협의에 나서게 되었다. 이해 3월 27일∼28일에 KNCC는 제34차 총회를 온양에서 개최, ‘한국교회 평화통일선언’을 채택, 발표했다. 이 선언의 중요한 내용은, 통일운동의 원칙을 ‘민중주체·평화의 통일’로 규정했고, 철두철미 인도주의에 입각한 평화교류를 주장하였으며, 통일의 목표를 민주화와 정의사회의 실현에 두었으며, 분단고착화를 정당화 내지는 묵인했던 교회의 죄책을 하나님과 민족 앞에 고백한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형식상으로만 보면, 통일에 관한 한국교회의 첫 번째 공식 입장표명으로 평가된다. KNCC 통일문제연구원은 1988년 2월 29일 제37차 총회에 상정, 참석 회원의 기립박수 속에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선언은(일명 ‘KNCC 통일선언’)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에 대한 신앙고백에서부터 시작해 ‘분단과 증오에 대한 죄책 고백’을 천명하고, 다섯 개의 통일의 원칙을 제시했으며, 그 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실천사항들을 남북정부에 건의하였다.

‘KNCC 통일선언’은 한국기독교 통일운동사 뿐 아니라 한국의 통일운동사 및 세계교회운동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 이 선언은 남한의 기독교계가 그 동안의 통일논의를 처음으로 종합, 정리한 것이며 민간에 의해 이룩된 최초의 본격적인 통일선언이어서 한국사회에 던진 충격 또한 컸다. ‘KNCC 통일선언’발표 후 노태우 정권이 ‘7·7선언’을 발표, 남과 북이 분단의 벽을 허물고 모든 부문에서 교류를 실현하자고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충격의 여파로 주어진 것이다. 또 1991년 12월 13일 남북사이에 채택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역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천명한 이 선언의 내용을 거의 담아내고 있다. 이는, 이 선언이 포함하고 있는 보편적인 정당성과 민족적 공동선을 남북당국이 수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선언은 또한 세계교회로 하여금 ‘KNCC 통일선언’에 공동 참여케 함으로써 분단국의 화해와 같은 더욱 구체적인 기독교운동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도록 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