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권 장로/ 총신대 초빙교수, 청암교회

아버님은 자나깨나 나라 걱정과 교회 돌보심으로 생을 끝마치실 때까지 일관하신, 실로 존경스럽고 순수하신 분이셨다. 설교를 하실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아버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보배로운 신앙’이었다. 아버님이 강조한 보배로운 신앙은 지적인 요소와 감정적인 요소, 그리고 의지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그런 신앙을 가리킨다.

아버님은 목회자나 평신도나 할 것 없이 누구나 믿음 생활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영성(감정적 요소)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그래서 아버님은 자주 철야기도와 금식기도를 드렸고 부흥회를 인도하는 기간 중에도 마지막 하루는 꼭 철야 금식 기도를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성은 지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오래 지속될 수가 있다고 아버님은 믿으셨다.

현재 예손교회를 섬기고 계신 정문호 목사님께서 4년 전쯤 청암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신 일이 있다. 그때 어느 식사 자리에서 정 목사님께서 해주 감방에서 나의 아버님을 우연히 만났었다는 사실을 간단히 언급하셨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자리여서 자세한 것은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정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즉시 정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자세한 내용을 전해들었다.

정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아버님은 그 당시 안악 서하면에 있는 상지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계셨고, 정 목사님은 은율고급중학교에 재학중이었다고 한다. 김일성 체제 반대운동을 하다가 해주 감방에 수감되었는데, 아버님은 이미 기결수로 거기서 복역하고 계셨던 것이다. 감방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은 잡부로 동원되어 새끼 꼬는 일 등 잡다한 막일을 시켰다고 한다.

하루는 우연히 아버지 옆에 앉게 되었는데, 아버님께서 그 당시는 학생이었던 정 목사에게 “학생 예수 믿나?”라고 물으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자 그때부터 틈이 나는 대로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성경 공부를 시켜 주셨는데,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 조신권 장로 가족사진.

결국 1946년에 출소했으나 다시 체포령이 내려져 1946년 봄에 아버님은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셨다. 우리 가족은 그 이듬 해(1947년) 무척 힘들게 월남하여 전북 부안읍교회에서 시무하시고 계시던 아버님과 기쁘게 상봉하게 된다(1947~1950).

그 이후 전남 송정읍교회로 목회지를 옮겨 시무하게 된다(1950~1952). 거기서 아버님은 교인들의 신앙의 기초를 다져 주기 위하여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그때 이 공부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커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유능한 목사들이 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을 들면 정성규, 이소영, 주현철, 최종걸, 나홍석 목사 등이다.

아버님께서는 1952년부터 1954년 봄까지 이리 신광교회에서 시무하시다가 서울 충무로교회로 옮겨오게 된다(1954~1957). 충무로교회에서도 교육적 목회로 많은 목사들을 배출하였다. 김영일, 김의석, 강은홍, 양은식 목사 등이 충무로교회 출신들이다. 물론 전적으로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없을는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 사람도 없다.

아버님은 일종의 조직신학이라 할 수 있는   <나의 신학과 나의 신앙>이라는 노트 1권을 남겼고 친필로 쓴 10권의 설교집 원고를 남겼다. 이 모든 결실은 아버지께서 행하신 교육적(지적) 목회의 결과로 얻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님은 많은 박해와 고난을 대단한 의지력으로 극복하셨던 분이시다. 이 문제는 다음에 좀더 자세하게 서술하고 싶다. 나는 이런 아버님의 보배로운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나는 아버님의 이런 보배로운 믿음을 물려받은 덕택으로 가능한 한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양서들을 많이 사서 읽고 사색과 명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다. 거기서 지적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 결과 나는 그래도 이만큼 유능한 학자가 될 수 있었고, 다수의 책들을 저술할 수 있었으며, 평신도로서 교육 그 자체를 목회적 차원에서 오늘까지 해오며 많은 목사와 인재들을 배출하는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이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유산 덕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