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선 기자

 천길 벼랑의 바위머리를 스치는 바람은 패장의 탄식마냥 처절하고, 탄금정에서 굽어보는 남한강은 가야금의 선율마냥 은은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널찍한 조각공원과 호젓한 산책로가 깔려있는 탄금대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대문산 기슭에 있다. 1천400년 전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망명의 가슴을 달래던 곳이다.

 우륵은 가야 사람으로 가야국의 멸망 직전에 신라로 귀화했다. 신라의 진흥왕은 우륵에게 대문산 근처의 땅을 내주고 세 사람의 군관들을 보내 우륵을 보호하게 했다. 우륵은 탄금대의 산상 대석에 앉아 남한강을 내려다 보며 가야금을 즐겨 탔는데 그를 보호하고 있던 계고에게 가야금의 탄주법을 가르쳤다. 이어서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쳐 가야의 예술 혼을 신라에 전수했다.

 우륵이 즐겨 감상했던 풍광이란 남한강과 그 주변의 평화로운 농촌 정경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탄금정에서 내려다 보면 저멀리 강을 건너 용섬이 보이고 그 너머에 달천이 흐르는데 달천은 용섬을 돌아 대문산의 발치에서 남한강과 합쳐진다. 달천 벌이 널찍하게 펼쳐지는 시점이다. 두세 그루의 미루나무가 마을 초입에 서있고 강바람이 마을을 휘감아 돌며 끝여름의 농촌마을을 식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탄금대는 또 다른 좌절과 저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패전의 아픔을 삭히면서 투신자살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탄금정에서 내려와 소나무 숲을 따라 20여 미터쯤 나서면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열두대다. 왜군을 맞아 배수진을 친 신립 장군이 깎아지른 듯한 비탈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장졸들을 독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패전한 장군이 몸을 던졌다는 낭떠러지 앞에는 신립 장군 순절비가 외롭게 서있다.

 탄금대에 서려있는 또 하나의 역사는 저항시인 권태응 선생의 발자취와 6·25 전란의 아픈 흔적이다. 열두대와 탄금정으로 오르는 길목에 조각공원이 있고 그 끄트머리에 노래비가 하나 서있다. 노래비는 우륵의 것도 그 제자들의 것도 아닌 이 지역 출신 권태응 선생의 노래를 기린 것이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이 노랫말은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던 1940년대 초에 씌여진 것으로 아무리 이름을 바꾼다 해도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저항의식이 배어있다.
 감자꽃 노래비 옆에는 충혼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에 봉안된 영령들은 해방 후 특히 6·25 때 나라를 지켜 낸 충주지방의 전몰 군경들이다. 1956년 9월에 건립된 이 충혼탑의 글씨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매년 현충일에 추도식이 이곳 탄금대 충혼탑에서 열린다.

⊙ 주변에 가볼 만한 곳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물이 깨끗하다는 충주호가 탄금대 근처에 있다. 충주댐 나루터에서 유람선을 타면 옥순봉과 구담봉, 강선대, 오선암, 두무산 등을 두루두루 돌아서 신단양의 장회 나루까지 130리 물길을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충주시 남쪽 21km 지점에 있는 수안보 온천 역시 탄금대 가는 길에 쉬어갈 만하다. 수질은 알카리성으로 무색 무미 무취이며 수온은 53도로 적당하다. 라듐을 비롯해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양질의 온천수로 유명하다.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송계계곡은 월악산(1,094m)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월악 영봉을 비롯해서 월광폭포와 학소대, 망폭대 등 송계 8경이 관광객들을 반기고 천연기념물 제337호인 망개나무, 덕주사 등의 볼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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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문화유산해설사 
이광자 씨

“탄금대의 유적들을 설명해 주겠노라고 접근하면 아래위를 훑어보며 이상하게 생각하는 관광객들도 더러는 있지요. 기분이 썩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러려니 해요. 이제까지 우리 관광지에서 그다지 친절한 안내를 받아 보지 못했던 때문이겠지요.”

탄금대 조각공원에서 마주친 이광자(60)씨의 공식 직함은 문화유산 해설사다. 생긴 지 2년이 채 못된 귀에 설은 직함이다. 관광객들을 인솔하고 탄금대 곳곳을 돌며 신라의 악성 우륵이나 임진왜란 때의 패장 신립 장군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 씨의 일이다. 물론 충혼탑이나 노래비 등 문화유적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스스로 연구모임을 만들어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이따금씩 발표회 형식의 수련회를 갖는 등 이 씨는 요즘 문화유산 해설사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일에 열성적이다. 

 이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가정과목을 가르치는 중학교 교사였다.  IMF를 맞아 정년 퇴임하고 새 직분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충주시청의 모집공고 란에서 문화유산 해설사라는 직함을 보자마자 그 길로 지원서를 냈다. 그의 이런 열정은 아버지의 가르침과 역사의식에서 비롯됐다. 황해도 출신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만주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참사관을 지냈다. 아버지는 “임진왜란과 일제침략 등 민족의 수난이 거듭된 것은 쉽게 망각하는 습성, 즉 역사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마침 탄금대에는 임진왜란과 일제침탈, 그리고 6·25 전란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서려있어 더욱 애착이 가는 곳이다.

“제대로 된 시집을 한 권 쓰고 싶어요.”
이광자 씨의 또 다른 바람은 못다 이룬 시인의 꿈을 말년에 실현시키는 일이다. 이미 20여 년 전에 등단했지만 교직에 전념하느라 이렇다할 시 한 편 내놓지 못한 게 늘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