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에세이 <찔레꽃 그 여자>의 저자 박순애는 1963년 경상북도 영일만 구룡포에서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중학교 다닐 나이에는 3년간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다. 알코올 중독에 의처증까지 심했던 아버지는 툭 하면 엄마를 안 죽을 만큼 두들겨 팼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외가로 피신을 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두 여자 소생 형제들은 뿔뿔히 흩어져 살았다.

 그녀의 우울하고 복잡한 어린 시절 기억들은 그랬다.
어디 그뿐인가. 그녀는 서른이 훨씬 넘은 ‘아저씨 같은 의붓오빠’에게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성폭력을 당했다. 뱀들이 우글거리는 뱀탕집 방 안에서 다시 그 사람의 성폭행으로 나뒹굴어졌을 때는 꿈 많은 열여덟이었다. 새벽기도를 다녀와 가슴에 성경책을 안은 채로.

 그래서 성경을 찢어 불에 태워버렸다. 고향땅 구룡포에서부터 믿었지만 하나님은 없다고 부인하며 신앙도 버려버렸다.

“‘나는 철저하게 버림받고 저주받은 인생이야. 나는 죽어야 해.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건데 그 인간은 반드시 죽이고 죽어야 돼.’ 그렇게 수천 번도 넘게 상상으로 그를 죽이며 살고 있을 때였어요. 이덕진 집사라는 분이 환상 중에 오막살이 집에 있는 저를 보았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우리 집에 전도하러 오셨는데 그게 저를 살린 거예요.”

상처 깊은 박순애는 지금은 목사가 된 이 집사의 지극 정성 전도에 감복되어 다시 교회로 나가 주님 앞에 진정으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그 후로 그녀는 농촌운동 4H활동을 통해 훈련받고 1981년 열아홉 나이에 4H연합회 경상북도 여회장으로까지 활동하며 세상을 배워간다. 청송군수의 추천으로 청송교도소에 들어가 재소자들 앞에도 서게 된다. 최연소이자 유일한 처녀 정신교육 강사로. 파격이었다.

그녀의 강연은 스무살 처녀의 강연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당찼다. 스물한 살엔 최연소로 전국 교도소 교정위원에 위촉되어 20대를 ‘청송’에서 보내면서 언제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아픈’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섰다. 그렇게 온갖 고통의 밑바닥 인생들 앞에 ‘아픔을 아는 진정한 마음으로’ 세우시고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모진 아픔을 허락하셨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했지만 그녀는 특별히 서울대 한상진 교수와 주고받은 서신과 많은 서적을 통해 다방면의 지식을 습득하고 인권, 민주주의 등을 가슴에 새기며 시대에 눈을 뜬다. 민주화바람이 온 나라를 강타하던 1987년과 1988년에는 신문기고, 관계당국 청원 등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저 유명한 청송교도소 인권문제의 한 중앙에 분연히 선다. 그저 ‘청송’에 있는 재소자들도 ‘인간’이라고 외치면서.그렇게 재소자들의 희망으로 인기높은(?) 박순애 강사였지만 가난한 생활 탓에 산에 올라가 약초나 나물을 캐 장에 나가 팔아서 먹고 살았다.

그렇게 살면서 근근히 모은, 적으나 전 재산을 다니던 혜성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몽땅 드리고는 1989년 손에 달랑 3만원을 쥐고 상경한다. 그리고 경기도 포천에서 학원사업을 시작하기까지 한 기도원에서 끼니를 얻어먹고 한겨울 추위를 피해야 했을 만큼 배고픔과 외로움에 처절한 슬픔을 또 맛보아야 했다.

왜 굳이 ‘잘 나가던’ 청송 생활을 털고 다시 무명의 빈털터리 인생을 걸어야 했을까?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떠나라고 해서 떠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이 서기만 하면,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그녀의 신앙이란다. 그때도 그렇게 무작정 떠났는데 나중에 보니 철저하게 예비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린 아들 둘이 딸린 한 남자의 끈질긴 구애(求愛)에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 그와 결혼을 했다.
“엄마 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어릴 적 내 모습을 보게 한 그 애들을 가슴에 안고 내 생명처럼 사랑하게 해달라고, 내 몸으로는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기도했어요. 그 아이들이 지금 대학교 2, 3학년이 되었어요.”

맨몸으로 상경한 지 6년만에 포천에서 원생 500여 명의 종합 예체능학원의 원장이 된 여자, 박순애. 비록 한때 남편의 방황으로 죽으려고도 했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던 그녀는 다시 기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20대를 바쳤던 청송을 떠나라고 하시기에 순종해 30대를 바쳐 학원사업으로 기반을 잡았는데 또다시 떠나라는 음성이다. 초등학교 중퇴학력으로 정규 신학교에는 갈 수가 없어 낮에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통합측 서울북노회 성서신학원을 야학으로 마치고 나니까 ‘이제 되었으니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우선 학원사업을 접고 살아온 인생을 글로 정리했다. 한상진 교수의 권유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자꾸만 집필을 강권하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의식 속에' 감추고 싶은 아픔들을 고스란히 원고지에 담아냈다. 하지만 사실 내키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나중에 고통으로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는 다시 용기를 얻어 새 삶을 살게 되는 기적같은 사례들을 많이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도록 나에게 또다시 떠나라 하시고 이 책을 쓰게 하셨구나’ 하고 깨닫는다.

지난해 정월에 나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았던 박순애 전도사의 자전에세이 <찔레꽃 그 여자>는 차라리 한 편의 소설이다. 자신에게 휘몰아 닥친 역경을 치열하게 헤쳐온 여자인생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응어리진 아픔을 승화시켜 재소자들에게 바친 그 헌신은 여느 감동보다 감동스럽다. 시골 들녁에 이름없이 소박하게 피어 아무리 짓밟혀도 살아나는 생명력 강한 찔레꽃과 ‘박순애 인생’이 잘 닮아 있다.
요즘 그녀는 매주 3∼4일 간증 부흥집회로 전국을 달리면서 의정부교도소에서 강연사역도 하고 있다. 청송이야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녀의 두 번째 책도 곧 낸다.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을 짓밟았던 ‘그 아저씨 오빠’에 대한 감정이 지금은 어떨까?

“하나님께서 죽이고 싶던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의 평정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 당시와 같이 미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아직 용서했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하나님, 제가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이 상태로 있다고 해야 솔직한 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