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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기도 못하게 막아라”
2003년 05월 21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중에서
C.S. 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홍성사 펴냄

어시스트 최은실/  가나안교회 장경덕 목사 사모

 

(이 편지를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웜우드(신참 악마의 이름)에게

이제야말로 ‘기도’라는 괴로운 주제를 적절히 다루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최선의 방책은 진지하게 기도할 마음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보는 거다. 어렸을 때 앵무새처럼 따라 기도하던 버릇을 기억해 내도록 부추기거나 스스로 기억한다고 믿게끔 유도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야말로 완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내면적이고 비공식적이며 규칙에 매이지 않은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초심자가 이런 생각을 할 경우, 사실은 의지와 지성을 집중시키지 않은 채 막연하게 경건한 기분만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꼴이 되는데도 말이야.

인간 중에 콜리지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는 자신이 “입술을 움직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을 위해 영혼을 가다듬었을 뿐”이라고 쓴 적이 있지. 바로 이거다. 얼핏보면 원수(악마의 입장에서 ‘그리스도’) 편의 최고참들이 수행하는 침묵의 기도와 비슷하기도 하니, 영리하면서도 게으른 환자들을 오랫동안 속여넘기기에 딱 좋지 뭐냐. 육체의 자세와 기도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사기치는 덴 문제가 없을게다.

잊지 말거라.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그들은 악마가 자기네 마음속에 이런 저런 것들을 불어 놓는 모습을 그리곤 한다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최대 과업은 그들의 마음에 이런저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냐.

혹시라도 이 작전이 실패하거든, 그 때는 환자의 의도를 좀더 교묘하게 오도하는 술책으로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인간들이 원수 자체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는 참패를 면할 길이 없지만, 다행히도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길이 많이 있지. 개중 간단한 방법은 원수를 바라보고 있는 환자의 시선을 그 자신에게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환자가 제 마음 속만 줄창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거라. 용기를 구하려 하거든 용기가 불끈 솟아나는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고, 또 용서를 구하려 하거든 용서받은 것처럼 느끼려고 애를 쓰게 해라. 제가 원하는 감정을 꾸며내는 데 성공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기도의 성패를 평가하게 만들라구. 사실 그런 종류의 성패란 그 순간의 몸 상태가 좋으냐 나쁘냐, 상쾌하냐 피곤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혹시라도 하지 않도록 잘 처리하고. 물론 그 동안 원수도 놀고 있는 건 아니다. 기도의 자리에는 언제나 원수가 즉각 행동을 개시할 위험이 있지. 저나 우리나 순전한 영적인 존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체통이 있는 법인데도, 그 작자는 냉소적일 정도로 여기에 무관심한 나머지 인간 동물들이 무릎을 꿇을 때 아주 창피스런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지식들을 쏟아 부어 준단 말이야.

하지만 원수의 저지로 환자의 의도를 오도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한다 해도, 우리에겐 더 정교한 무기가 남아있다. 환자를 잘 부추겨서 자신이 만든 내용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하고, 기도하는 내내 그 합성물을 눈앞에 떠올리게 할 수도 있지. 그런데 만에 하나 환자가 그 차이를 구별하게 되는 경우, 우리는 즉시 궁지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곁에 실제로 존재하며 객관적으로 외재하는 그 존재에게 자신을 맡겨 버리기라도 할 때에는 그 이후의 일을 장담하기가 정말 어렵다. 인간들도 사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도움이 될 게다. 그런데 때로 그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것을 얻을 수도 있으니, 원! 
너를 아끼는 삼촌, Screw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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