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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음모…뭐가 진실인가
권력 주변에 넘쳐나는 음모론
2003년 08월 13일 (수)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윤길주 / 월간중앙 기자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이른바 음모론이다. 정치가 생산, 유통되는 여의도 일대에는 항상 음모론이 넘쳐난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정치적인 사건들이 음모론에 휩싸이고 있다. 이것은 정치권이 습관적으로 모든 사안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탓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그 강도가 병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필자는 여의도 정치권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권 인사들이다. 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샌가 ‘음모’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여의도 일대에 나도는 증권가 찌라시(정보지)의 내용은 각종 사안을 음모론으로 해석하는 게 대부분이다. 하나의 음모론이 나오면 그것이 확대 재생산되고, 그것은 또 다른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특정 집단에서 의도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것을 유포하는 경우도 흔히 본다. 최근에 터진 사건들에는 반드시 음모론이 부속품처럼 따라다닌다.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의 개인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막강한 자리다. 대부분 전화가 부속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연결되고, 각종 보고서도 그를 통해 전달된다. 한마디로 대통령 집무실 문고리를 가장 많이 잡는 사람이 바로 부속실장이다. 이러다 보니 부속실장 자리는 직급에 관계없이 권력의 실세로 꼽힌다.

그런 사람이 청주까지 내려가 향응을 받았으니 그 의도와 배경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사건 자체의 본질보다는 누가 이런 음모를 꾸몄을까 하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 음모론이 나돈다. 누가, 왜 몰래카메라 촬영을 했을까와 언론사에 제보했을까 하는 것이다.

일단 전자의 경우 청주지역 내 유흥업주들 간의 주도권 다툼 과정에서 몰카가 촬영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자의 경우 권력 내부의 암투 결과로 분석되기도 한다. 청와대 주요 직책을 특정대학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양 전 실장을 희생시켜 그 자리에 다른 특정대학 사람을 앉히려고 일부러 비리를 흘렸다는 게 청와대 암투설의 골자다. 전자는 검찰 수사로 조만간 가려지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영원히 실체가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굿모닝시티 자금 수수설과 관련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음모설이 난무하고 있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렇게 시끄러운지 의아스러울 뿐이다.

정 대표를 둘러싼 음모설은 민주당과 정 대표 자신이 불을 지피고 있다. 희생양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반격 차원에서 공론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언론은 여과없이 보도함으로써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보다는 억측과 소설같은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음모설의 대강은 이렇다.

정 대표의 굿모닝시티 자금 수수설은 처음 검찰로부터 흘러나왔다. 정 대표 측은 검찰이 의도적으로 자금 수수설을 흘려 자신들을 흠집내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권력 핵심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정 대표 측은 생각한다. 청와대 내 386그룹이 개혁신당을 하기 위해 통합신당론을 펼치고 있는 정 대표를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로부터 정 대표 수뢰 의혹과 관련해 보고를 받았음에도 이를 묵인 또는 방치, 더 나가서는 수뢰설의 확산을 조장하고 있다는 게 정 대표 측의 시각이다.

정 대표 측근 그룹에서는 검찰과 청와대 386 라인 간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정 대표에 대한 수사 강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어떻게 집권당 대표와 관련한 수사를 마치 잡범 다루듯 하느냐는 항변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이미 검찰과 핫라인이 끊겨 있고, 검찰 독립은 노 대통령의 평소 소신이라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를 둘러싼 음모론의 와중에 갑자기 <동아일보>에 여권 신주류의 굿모닝시티 연루설이 1면 톱으로 보도됐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 김원기 고문, 이해찬 신계륜 의원,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 등이 굿모닝시티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게 보도의 내용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자 당선자의 비서실장에,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보도와 관련해 또 다시 음모론이 여의도를 강타했다. 청와대 일부 386그룹에서 언론사에 이 같은 내용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구정치 세력을 비리집단으로 몰아감으로써 386 등 개혁세력이 전면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게 일부 정치권 주변의 해석이다.

이른바 대검 중수부의 ‘150억원+’ 수사를 둘러싸고도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정몽헌 현대 회장은 이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직후 투신 자살했다. 때문에 고 정몽헌 회장이 과연 대검 중수부에서 무슨 내용을, 어떻게 조사를 받았는지 취재진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50억원+’가 도대체 뭔지 궁금해 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150억원은 대북송금 특검에서 고 정몽헌 회장이 이익치 씨를 통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건넸다는 돈이다.

현재 박 전 실장은 이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진실은 법정에서나 가려질 상황이다. ‘+’는 이에 더해 현대가 조성한 비자금을 일컫는다. 이 돈이 현재 여야 정치권 실세들에게 건네졌다는 것이고, 대검 중수부 수사도 이에 집중돼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음모론이 ‘김대중 죽이기’다. 현대 비자금 중 일부가 박지원 전 실장을 비롯한 국민의 정부 실세들에게 유입됐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김 전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는 게 음모설의 줄거리다.

목적이 뭔가. DJ와 호남 정치세력을 비리집단으로 낙인찍음으로써 내년 총선 때 영남에서 표를 얻겠다는 권력 핵심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권력층 386그룹이 특정 검찰 라인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와중에 정몽헌 회장이 자살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사건을 중심으로 세간에 나도는 몇 가지 음모론을 적어봤다. 모두가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체는 미궁속에 있다. 또 필자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 사실들이 있다한들 그것이 완벽한 ‘팩트’가 아닌 다음에야 아직은 ‘설’의 과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음모론은 정치와 사회를 황폐화 시킨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사안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물론 권력이 음침한 장막의 뒤에서 음모를 꾸민다면 그 또한 반민주적인 행태다. 그런데 어느 정부보다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노무현 정권에서 음모론이 많이 나오고 있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을 담당하는 당사자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그에 앞서 투명한 권력 행사를 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할 듯싶다.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일삼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음모론 불지피기, 다음 수순은 특검 밀어붙이기식의 경직된 정치도 음모론 창궐에 일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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