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박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핍박 견디는 경건한 생활의 모범 강조
가톨릭적 제도·관행 개혁 노력은 간과

      ◆  청교도 운동과 한국장로교회
한국 장로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와 캐나다 장로교에서 온 선교사들이 1893년 장로교 공의회를 형성하여 한국에 하나의 장로교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들 장로교회들이 다 청교도의 전통에 속하며 선교사들은 그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는 1907년 독로회로 출범하면서 12신조를 교회의 신앙고백서로 채택하는 한편, 웨스트민스터 대ㆍ소요리문답을 성경과 교리문답을 위한 책으로 채택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채택은 한국 장로교회가 성장한 이후에 스스로 결정할 숙제로 남겨 두었으나, 언제부터인지 목사 장립에서 웨스트민스터를 신조로 받는다는 서약을 하게 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여러 분립된 장로교회들이 으레 교회의 신앙고백서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거나 총회의 결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 장로교회는 청교도들의 일부가 선호한 장로교회 제도를 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남긴 신앙과 신학의 결정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들을 언제나 본받을 만한 신앙의 선조로 알고 있으며, 특히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들의 신앙 유형과 자세를 본 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 왔다.

한국교회가 주일 성수를 강조한 것은 청교도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오늘에 와서는 장로교 내에서도 많이 해이해지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한국교회가 주초(酒草)를 금하게 된 것도 청교도적인 영향이라고 말하나 청교도들이 일반적으로 다 주초를 금기시하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려다가 ‘아디아포리즘’에 빠지는 경향은 청교도에게서 뿐만 아니라 경건주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므로 한국교회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교회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가운데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여 주관적인 성경해석을 지양한다. 한국 장로교는 초기부터 사경회(Bible class)를 열었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성경공부를 하는 집회의 성격이 희석화되고 있음은 유감이다. 한국교회의 설교가 성경의 본문에 충실한 강해설교이기보다는 제목설교였던 점도 반성해야 할 점이다. 

한국교회가 청교도들이 핍박을 견디면서 경건한 생활을 영위한 그런 신앙적인 자세에 대하여는 많이 언급하면서도 그들의 신앙이나 사상 내용에 관해서는 간과하는 것이 있음을 반성한다. 청교도 운동의 역사가 한 세기 반에 걸쳐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으므로 그 운동에 관하여 아마도 부분적인 지식을 갖게 된 때문일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 청교도들의 주요 관심사는 영국교회 안에서 가톨릭의 잔재가 일소되는 것이었던 반면에, 17세기 때의 주요 관심사는 신학적으로는 아르미니우스 주의에 반대하는 것과 사회적으로는 압제하는 세력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17세기 중반에 나온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깔린 신학적인 기조는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에 반대하는 예정론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16세기의 청교도 초기의 운동보다는 17세기의 ‘순례자들’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익숙한 편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난 이후의 개혁자들의 관심은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신앙과 사상 및 관행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면제부를 유발하게 된 공로주의 사상, 민속신앙을 허용한 성상숭배 및 유물숭배, 화체설에 근거하는 미사, 교황주의와 사제주의 및 고해제도를 반대했다.

루터교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와 쉬말칼덴 신조(1537)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를 언급하며 반가톨릭적인 주장을 강력하게 펴고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성상숭배 같은 것은 이미 종교개혁 교회 안에서는 해결이 되었으므로 그러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차츰 약화되고 있다.

1560년대에 일어나게 된 청교도들은 앵글리칸 사상에 반대한 것이므로 교황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로마 가톨릭의 유물과 관행을 일소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이 사제주의(clericalism)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중세의 사제주의는 목사를 제사장으로 간주하는 사상이므로 16세기의 여러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은 사제주의를 반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청교도 운동이 외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예배에서 사제복(vestment)을 입기를 거부함으로써 엘리자베스 여왕의 칙령을 어긴 데서 비롯된 것이다. 제사장임을 상징하는 제사장복을 입는 것, 그것은 단순히 예배 의식상의 문제만이 아니고 목사를 제사장을 보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청교도들은 한사코 반대를 했던 것이다.

청교도의 이러한 투쟁의 역사가 말하는 것이, 아니 종교개혁과 개혁주의 신앙을 가톨릭의 것과 구별하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찬의 화체설과 사제주의에 대한 반대인 것을 우리 한국 장로교회는 간과해 왔다. 아니 간과했다고 하기보다는 잘 모르고 왔다. 목사를 제사장으로 알고 있으므로 거기에 걸맞게 강단을 성역화 하는 등 예배당 내부의 구조가 이러한 이해에 맞는 방향으로 발전해 오게 되었다. 강단에 줄을 치거나 울타리를 치는 일, 신을 벗고 올라가는 일 등이 그러한 것이다.

“제단”, “예물”, “기름부음 받은 종” 등 구약의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면은 로마 가톨릭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구약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을 신약을 통하여 보는 신학적인 안목이 없어서 그러하고 토착적인 샤머니즘의 배경 때문에도 그러한 것으로 안다.  

청교도들은 반지성적인 경향을 가진 경건주의자들과는 달리 칼빈주의 전통을 따라 특별 은총과 함께 일반 은총을 존중했다. 잉글랜드에서는 많은 지성인들이 시민전쟁을 전후하여 청교도 운동에 대거 참여하여 정치, 사회의 개혁에 힘썼던 것을 기억한다.

미국에 이주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정부를 자신들의 손으로 수립하려고 했으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입지에 있었으므로 정치와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설교자 역시 설교에서 정치와 사회 문제를 언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미국의 독립 운동에 그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청교도의 이러한 전통은 우리 한국교회에는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역사적인 상황이 달라서도 그렇겠지만, 일반은총에 대한 이해를 가지려면 교회 역사와 신학의 전통의 연륜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오랜 기독교 역사와 전통 속에서 교회의 개혁을 주창하고 실천한 종교개혁자들이나 청교도들과 이제 선교를 받아 교회의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단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구호가 미국에서는 여러 다른 교파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고 교파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것이었다. 잉글랜드에서 일어났던 일이 미국에서는 역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펜실바니아에서는 퀘이커 교도들이 우위를 점했으며, 매릴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뉴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인 회중교도들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가 하면, 앵글리칸들은 소수민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소수의 그룹이 핍박과 괴로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모든 교회들이 동등하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상황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에서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헌법으로 규정하게 된 것은 바로 교파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다른 의미로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에 처음 온 선교사들은 조선 정부에 대하여 그리고 일제 식민 정부에 대하여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말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해서는 개입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정치에 대하여는 소극적으로 대하는 자세가 전통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하기는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에서 정치에 대하여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은 청교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치하에서 그들은 보다 영적인 일에 더 관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상황이 달라졌을 때는 달리 대응했던 것이다.
  
(본 글은 한국기독교학술원에서 개최한 공개세미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