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국 / 경상대학교 교수,  공의 정치포럼 집행위원장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지난 6월 13일에는 4,415명의 지방자치단체 일꾼을 뽑았고 8월8일에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12월 19일에는 제16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다. 벌써부터 전국이 떠들썩하다.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들이 패를 갈라 분탕질을 칠 뿐 아니라 한동안 보지 못했던 선거철 향락 관광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있다.
마치 여름이 오면 두터운 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 입듯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계절을 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므로 계절에 관계없이 옷 한 벌로 버티겠다고 주장한다면-간혹 그런 사람을 볼 수 있으나-그는 극히 편협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계절에 알맞은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생각해야 한다.
 
선거철을 맞이할 때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선거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한 이해이다. 사람의 삶에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잘 살려고 하는 일인데 그것 때문에 못살게 되는 수가 있다. 홍역을 낫게 하려고 가재를 먹였더니 디스토마가 걸려 죽었다는 식이다.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적 체제를 만들겠다고 선거를 하다가 패가망신하고 피차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 대통령 선거는 우리들을 위해 봉사할 공직자를 뽑는 행위이다. 향우회장을 뽑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쓸 사람을 뽑는 일도 아니다. 온천욕과 관광을 잘 시켜주고 고무신을 나눠줄 사람을 뽑는 일도 아니다. 누가 우리 지역을 위해 올바르게 봉사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선거가 뭐 하자는 행사인지 모르고 있는게 틀림없다. 지방자치단체 선거 직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4천여 건의 위법선거운동을 적발해 이중 200여 건을 고발하고 90여 건을 수사의뢰했다고 한다. 위법 건수만으로 치자면 지난 제2회 지자체 선거의 같은 기간보다 무려 9배나 증가한 수치이다. 유형별로 보면 금품이나 음식물, 교통편의 제공 등이 1천여 건이나 되는데 이를 고발 건수만으로 따져보면 69%에 해당한다. 국민 소득이 1만 달러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선거를 먹는 잔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 특히 그 숫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실하고 공정하고 깨끗한 사람 대신에 밥 잘 사주고 관광 잘 시켜주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놓으면 그는 당연히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도둑질을 많이 하게 되어있다. 사고방식이 처음부터 글러 먹었고, 또 선거 때문에 빚내서 쓴 돈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민선 2기 단체장 중 최소한 17%가 뇌물수수 등으로 사법부의 유죄판결을 받았고 조사 중인 사람까지 포함하면 무려 20%를 넘고 있다. 유권자에게 뇌물 먹여 당선된 사람이 유권자로부터 뇌물 먹고 구속되는 셈이다. 뇌물 먹는 단체장은 뇌물 먹은 유권자가 만든다. 그래서 ‘무고한 시민’이란 없다.
 
그리스도인이 선거의 계절을 나려면 여기에 적합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것들을 따르기 보다 그리스도의 뜻만을 따르고자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뜻은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사는 사람은 약간의 고난이 따르더라도 지상에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실천해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간혹 그리스도의 뜻이 아닌 것을 잘못 강조하는 경우를 본다. 예컨대 세상의 돈이나 명예, 조직, 건물 등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나서는 일이다. 그러한 것들은 다 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앞에서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 선거와 관련된 일로 금품을 받거나 식사 대접을 받거나 관광을 다녀오면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난다. 크게 책망을 받게 된다.
 
어느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냐 하는 문제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일단 금품 향응으로 환심을 사려는 후보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후보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 남은 후보들 중에서 경력으로 보아 가장 신뢰감이 가고 정책이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투표하면 된다. 인애와 공평과 정직에 가장 가까운 후보가 가장 좋다. 물론 100% 만족할 만한 후보가 없을 수 있다.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기권하고 놀러 가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가장 나쁜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행동한 사람에게 대해서도 역시 주님은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인물 중심에서 정책 중심으로 선거의 방향을 바꾸는 게 좋다. 그래야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행되지 아니한 정책들-주민발안과 주민소환-을 실시하겠다고 나서는 후보라면 믿을 만하다. 이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를 밀어주는게 좋다. 그만큼 정책과 인격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교회에 와서 얼굴을 내밀거나 갑자기 많은 헌금을 하는 사람은 극히 위험하다.
얼마 되지 않아 복음의 문을 닫는 사건을 저지를 사람이다. 물론 오랫동안 교회에서 헌신하면서 고매한 인격을 보여온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이 좋다. 자신의 표를 줄 뿐 아니라 자원 봉사를 해서라도 당선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정치의 계절에 그리스도인들이 공연히 감기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어떤 게 바이러스인지를 잘 분별하여 정치 분야에서도 주님의 나라가 나타나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