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는 엄청나게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제작했다. 큰 돈을 들여 극장도 새로 짓고, 관객을 위해 식당, 호텔도 만들고 주차장, 도로도 정비했다. 흥행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공짜표도 마구 나눠줬다. 영화사의 기대대로 영화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아니 웬걸, 나중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손해를 본 게 아닌가. 기분은 잔뜩 냈는데 실속은 없었던 것이다.


6월 한 달 내내 월드컵 열기가 전국을 휘감았다. 특히 대~한민국이 예선 리그부터 승승장구, 4강까지 진출함으로써 전 국민의 에너지가 ‘붉은 함성’으로 폭발했다. 오죽했으면 우리가 4강에 든 날을 단군 이래 최대 경사일이라고까지 했겠는가.

사람들은 국민 통합과 국민 사기 앙양, 국가 이미지 제고만으로 월드컵 유치의 본전을 뽑고도 남음이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맞는 얘기다.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우리 국민은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아왔던가. 국제 기구로부터 돈을 빌려 겨우 연명하는 나라라고 손가락질도 받았다. 이런 판에 월드컵을 역대 어느 대회 못지 않게 훌륭히 치러냈고, 우리 축구팀은 4강까지 올라갔으니 한껏 어깨를 펼 만하다.


월드컵이 가져올 경제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월드컵 1승의 경제적 효과는 총14조4천6백40억 원에 달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우리가 4강에 오르기까지 4번을 이겼으니까 우리 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 경제 효과를 거둔 셈이다. 한국 기업과 제품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그에 따른 외국 자본 유치는 부가 수입이다.


그러나 막이 내리고 관객이 떠난 후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로 ‘기분’이 아니라 ‘현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추정한 경제적 효과는 어디까지나 기대치일 뿐이지 현찰이 아니다. 기약도 없이 언제 돈벼락이 떨어질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물론 경제 효과라는 게 유무형의 모든 부가가치를 따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화하기까지는 ‘포스트 월드컵’의 치밀한 대책과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월드컵을 위해 1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큰 논란에도 불구, 축구 전용 구장을 10개나 지었으며 도로, 숙박 시설, 공원 등 인프라를 갖추는 데 막대한 돈을 들였다. 우리가 많은 돈을 쓴 것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와 가능성 때문이다. 괜히 겉 멋을 부리기 위해 그랬다면 그것은 만용일 뿐이다.


한국이 4강까지 진출했으면 됐지 뭘 따지느냐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끝까지 주판알을 퉁기는 게 경제다. 따라서 앞으로 정부나 기업, 가계 등 각 경제 주체는 월드컵 특수를 ‘현찰’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88 서울 올림픽처럼 소리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는 ‘깡통 잔캄로 전락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특수’라는 것은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대내외적인 여건 변화로 얻어지는 ‘특별한 수요’다. 잘 다듬어서 제 때 거두지 않으면 금새 사라지는 게 특수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우리 국민의 자신감과 높아진 국가 이미지를 바탕으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있다. 산업자원부 등 관련 부처가 수출 및 투자 유치 마케팅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은 이를 토대로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경제 특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이겼을 때만 “와” 하는 함성을 질렀지 돌아서면 나라 경제는 내팽개친 채 싸우기 바쁘다. 이래서는 눈 앞에 어른거렸던 돈은 모두 날아가고 남은 것은 실패를 서로 떠넘기는 욕지거리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업들이 나름대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통신, 패션 등 각종 업체들은 앞다퉈 월드컵 개최국이란 간판을 내걸고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전과 달리 한국을 달리보고 우리 기업인들에게 호감을 갖고 접근하는 외국바이어들을 잡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고 한다. 결국 업그레이드된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해 수익과 직결시키느냐는 각 기업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월드컵 경기를 각 지방에서 분산 개최한 것은 자치단체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선출직인 자치단제장들은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고장에 경기를 유치하고, 큰 돈을 들여 각종 시설을 갖췄다. 우리처럼 지방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무리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결국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경기장이 속속 건립됐다.


축제가 끝난 지금 이들 기간 시설들을 어떻게 활용해서 본전을 뽑을 것인지 자치단체들은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월드컵 경기장은 유지하는 데만 매년 수백억 원이 드는 거대한 흉물로 전락하게 된다. 월드컵 중 형성된 인프라도 썩혀선 안 된다. 각종 시민 자원 봉사단체나 통역 조직 등을 상설화, 외국인 투자나 상품 홍보에 활용한다면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이중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금세기 내에 월드컵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한반도에서 다시 열리기는 어렵다. 이런 행사를 흥분과 기쁨만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경제 월드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을 모두가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