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 직전 교계에서 추진한 ‘붉은 악마 응원단 명칭변경 운동’의 손익계산을 놓고 말들이 많다.

붉은 악마라는 이름과 관련된 논쟁은 4년전인 프랑스 월드컵 당시부터 간간히 있어 왔다. 올들어 언론이 선정적 보도로 붉은 악마를 크게 부각시키고 SK와 같은 대기업이 ‘붉은 악마 신드롬‘에 기름을 끼얹으면서 교계의 반발은 극에 달했다.

▲ 붉은 앙마 응원단 명칭변경 운동 무엇을 남겼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02월드컵선교단은 ‘붉은 악마 응원단 명칭변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가두시위와 집회를 통해 개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월드컵 개막을 한 달 여 앞둔 4월22에는 명칭변경을 위한 교단장 및 원로초청 긴급회의를 열고 붉은 악마라는 명칭을 바꿔줄 것을 대통령과 응원단 관계자, 언론에 강력 촉구했다. 긴급회의에서는 ‘붉은 호랑이’라는 이름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며 ‘붉은 악마 명칭 사용 중지를 위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로 했다.

추진위에서 개명을 촉구하는 근거는 ‘악마’가 성경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용어이며 포악성과 사악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국가대표 축구팀의 응원단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계지도자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모 인터넷 선교회에서 월드컵 직전 한 달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붉은 악마란 이름 때문에 응원에 동참하는 것이 꺼려진다”고 답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개명을 촉구하는 기독교계의 요구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붉은 악마는 애칭일 뿐 단지 문화 현상에 불과한 일을 놓고 기독교계가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교계 일각에서도 “종교계가 이런 것에 관심을 쏟음으로써 비종교인들에게 집단이기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계 안팎의 일부 곱지않은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월드컵 기간 동안 붉은 악마 응원단 명칭변경추진위원회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상태였다. 붉은 악마 명칭 사용 중지를 위한 가처분신청도 비용과 소요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추진위는 가처분신청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급한대로 ‘붉은 악마 응원단 운동장 진입 금지신청’을 법원에 제기해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붉은 악마 명칭 사용중지를 위한 가처분신청은 실효성 여부를 둘러싸고 애초부터 논란이 돼왔다. 추진위에서 적극적으로 가처분신청을 시도했는지, 가처분 당사자인 붉은 악마 응원단이나 대한축구협회, 월드컵조직위원회에 이 문제를 갖고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했는지 조차도 의문이 많다. 붉은 악마 응원단 명칭변경추진위원회가 일회성 행사를 통해 비현실적인 과시성 선언만 남발한 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추진위 사무총장 김용근 목사는 기독교계가 월드컵을 방해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어 행사 기간동안 단체행동을 자제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종교계가 문제제기를 한 이후 언론이 ‘악마’란 말을 자제했으며 그동안 개명촉구 서명운동을 조용히 추진해 한달 새 4만 여 장의 서명지를 접수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기총 총무 박영률 목사는 “언론과 정부가 부추기고 교계가 단합하지 못하는 바람에 붉은 악마 개명운동이 큰결실을 맺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개명운동 관련 단체의 다소 긍정적인 자체평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의를 제기하는 측은 “국민 정서상 실현 불가능한 운동을 전개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사회에 심어줬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들었다. 실제로 많은 네티즌들이 “특정 축구 매니아 집단의 이름을 갖고 도대체 왜들 난리냐?”며 기독교인들의 ‘종교적 편파성’을 문제 삼았다.

교계 중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일을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꼴’이 되고 말아 기독교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도 시간상의 전략부재를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개명추진위에서는 몇 년 전부터 붉은 악마 명칭 변경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행사를 추진해 온 것이 사실이다. 결국 시간상의 전략부재로 인해 기독교가 국가적 행사에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응원단 이름 갖고 뒤늦게 시비를 거는 ‘딴죽 집단’으로 비춰지게 된 것이다.

특정 단체가 일회성 이벤트 행사를 추진하는데 급급해 사전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추진하다가 뒷심부족으로 주저앉고 말았다는 비난도 있다. 개명추진위에는 한기총 등 몇몇 단체가 함께 참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2002월드컵선교단(대표총재 신현균 목사·대표단장 이광훈 목사)이 주도하고 있다. 선교단은 한정된 인력을 가지고 많은 이벤트성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추진하다보니 거시적 안목에서 일관되고 지속적인 선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안팎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개명추진위원회는 붉은 악마 명칭변경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명추진위 김용근 총무는 “구체적인 무브먼트 계획은 없지만 붉은 악마를 옹호하는 회사 제품 구매운동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비기독교인들에게 교회는 보수적인 ‘폐쇄집단’이란 인상을 갖게하고 일부 기독젊은이들이 신앙의 정체성 문제로 ‘쓸데없는 갈등’을 겪게 만들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붉은 악마 응원단 명칭변경운동. 커다란 댓가를 치르고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이벤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