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균 기자 (seunglee@newsnjoy.co.kr)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진보적 의식 속에 사회개혁을 위한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공교회 연합기관이다. 하지만 최근 KNCC를 향한 이 같은 평가는 과거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다. KNCC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총무에게 거는 기대도 많이 사그러 들고 있다. 특히 미군 여중생 압사사건과 CBS 사태에 대한 KNCC와 총무의 태도는 부정적 평가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편집자 주>

▲ 미군 장갑차 압사사건 항의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12월 3일 덕수궁 앞에서 개최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항의 집회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우선 KNCC는 이날 집회를 8개 회원교단 명의로 개최했지만 사실상 반미시위에서 항상 얼굴을 내 보이는 진보적 인사들과 청년단체 위주의 집회로 그쳤다.

KNCC 가맹 교단 차원에서 이번 집회를 위한 밀도 깊은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SOFA 개정을 요구하는 반미감정이 범 국민적 정서로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KNCC 집회는 일부 진보 운동권이 주도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러났다.

또 KNCC 현직 총무 백도웅 목사는 집회 막바지 가두시위 때만 잠시 나타났다. 약 2시간 30분간 개최된 시위 중 백 총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은 후반부 30분 정도. 더구나 백 총무는 미 대사관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KNCC 4인 대표단에도 끼지 않았다. KNCC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총무가 이번 집회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KNCC 시위 개최 시기에도 아쉬움은 있다. 이미 국민적 반미감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서울 광화문에선 일반, 시민, 종교계 등의 시위가 연일 개최되고 있어, 기독교계의 시위는 특별한 주목을 끌지 못했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미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온 KNCC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미리 꿰뚫고 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했지만 결과는 시대적 대세를 좇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일반 방송이나 신문들은 KNCC 시위를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금식과 불교계 신자들의 참배 행위에 주목했다. KNCC 덕수궁 시위는 가맹 교단 명칭이 들어간 몇 개의 플래카드를 제외하면 일반 학생 시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기독교 단체가 주도한 행사다운 고유한 종교성도 보이지 않고 시기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집회에 굳이 언론이 유별난 관심을 표명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한편 KNCC는 기독교방송(CBS) 사태와 관련,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공교회 연합기관답게 나름대로 입장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뚜렷한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재야단체인 범기독교CBS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KNCC를 향해 CBS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또 KNCC 총회 현장에서 교단 대표들이 CBS 사태에 대해 총무에게 질의까지 했지만 그저 CBS 이사회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되풀이됐다. CBS사태에 대한 KNCC 총무의 입장은 과거 김동완 총무와 비슷하게 현직 백도웅 총무 역시 소극적이다. 김동완 전총무는 “KNCC 총무는 이사 중 한 명일 뿐이다”며 “CBS 이사회 내에서 사태를 풀어나갈 것이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재야 기독교세력은 CBS 사태로 인한 기독교 위상 하락 및 방송의 질 저하, 노조와 이사회의 극심한 대립양상 및 CBS 이사회가 범하고 있는 서면투표 및 개표조작 사건 등은 이미 정상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재야는 KNCC가 원론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한국교회와 CBS를 위해 사태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CBS대책위 모 인사는 “KNCC 총무는 CBS 이사회의 일원임과 동시에 CBS를 탄생시킨 공교회 연합기관의 실질적인 대표인 만큼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CBS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재야의 여론과 관련, KNCC측 한 관계자는 “교단 협의체인 KNCC가 역시 교단연합체인 CBS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다”고 말하고 또 “교계 정치구도 속에서 선출된 총무에게 교계의 정서를 이반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 역시 무리다”고 밝혔다.

이 같은 KNCC 내부 목소리는 KNCC가 비록 기독교적 양심과 민족의 아픔을 함께 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했지만 결국 교권 정치 구도의 한 축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얘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떤 세력이든지 권력은 대개 보수적이고 수구적이고 덜 개혁적인 색채를 띤다는 점에서 KNCC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최근의 반미시위 및 CBS 사태에 대한 KNCC와 백도웅 총무의 처신 역시 교계 정치구도가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