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길 목사/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

누가복음 3:21∼22에 나오는 주님이 세례 받으시던 모습을 살펴보자.

많은 백성들이 세례를 받으려고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차례로 다 세례를 받았다. 우리 성경에는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라고 되어 있다. 세례를 받을 “때”라고 번역된 단어는 “Now it happened that when…”란 말인데, 그러니까 모든 백성이 세례를 다 받고 난 후에 일어난 일이란 것이다. 그 때 역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다 세례를 받는 동안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오늘 본문이 암시하는 바는 주님도 그 백성들과 함께 세례 받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 물 속에 들어가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이다. 소위 민중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백성과 자기를 별도로 떼어 놓고 차별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대 율법의 정결 코드(purity code)에 의하면 거기 세례를 받기 위해 와 있었던 서민들은 대부분 부정한(impurity)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자기 신분을 천민의 레벨로 내린다는 뜻이 된다.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엽 원어에는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것이 동시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으시면서 기도하신 것인지, 아니면 세례 받으신 후에 이어서 기도하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하튼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주님 위에 내려 오셨다. 비둘기 같이 내려 오셨다는 말은 성령이 비둘기 같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내려오시는 모습이 마치 비둘기가 내려앉는 모습처럼 내려 오셨다(descends like one in some type)는 표현이다.

여하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비둘기가 내려오는 것처럼 성령이 주님 위로 내려오셨다는 점이다. 왜 하필이면 그 시기에 성령이 내려오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세례를 받고 기도하셨기 때문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받지 않아도 될 세례를 자진하여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일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기뻐하신 이유는 백성들 중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행동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신’ 모든 행동을 다 포함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그 모든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백성 중에 기다림, 세례 받으시는 모습, 그리고 곧바로 기도하시던 모습은 무엇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모습이 하나님께 너무나 흡족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비둘기 같이 성령이 내려오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이다. 물론 신학적인 논쟁의 소지는 있지만, 그 때 주님은 자기의 소명을 확신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성령과 하나님의 음성이 그의 소명을 확실하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아름다운 삼위일체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이제부터 사역을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허락이요, 신호라고 생각한다. 우리로 말하면 소명을 받는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목회자가 소명을 받는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소명 받은 자들은 각자가 소명을 받았던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 주님이 그를 보시고, 사명을 주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명의 자리는 사역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일생 동안 지켜가야 하는 사역의 자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일생 동안 그 소명 받을 때의 자세를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고 일생을 사셨다. 아니 그보다 점점 더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셨다. 십자가까지 내려가신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아무런 해석이나 설명도 없이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주님의 세례 받으시던 모습을 사실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소명을 받으시던 모습을 설명도 없이 보여주는 복음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을 보면, 대체로 세 가지 방법이다. 첫째는 아무 말 없이 보여주신 방법, 둘째는 의도적으로 보여주신 방법, 셋째는 말로 가르쳐 주신 방법이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았거나 혹 후에 들으면서 무언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말없이 보여주는 이유는 자기들이 체험한 그 감동을 후에 교회를 섬기는 제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전하려고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주의 일꾼들은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일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주님은 일생 동안 그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까지 지신 것이다. 그런 자세로 사는 것 자체가 경건이고, 영적 힘이다.
 
빌 하이블스 목사의 고백에 의하면, 90년대에 자기 교회가 흔들린 때가 있었다고 한다. 분석해 본 결과, 그 이유는 자기 소명감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영적인 일기를 쓰기 시작함으로 자신의 소명을 늘 확신했다고 한다.

목회자가 처음 부름을 받았던 자리를 잃어버리고 산다면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리라.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가 좀 성장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던 그 자리를 곧 잊어버리고, 교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아니 자기 위치를 상향 조정하려고 몸부림친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명을 저버리는 결과가 아닐까? 만일 예수님도 그 처음 자세를 버렸다면 주님은 사이비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위치에서 자기를 보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던 그 자리에서 자기를 보라고 한다. 주의 종들은 그 자세를 숨질 때까지 유지해야 한다. 당신이 부름을 받던 그 자리는 과연 어디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