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영  철 목사 /  기독교커뮤니케이션연구소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둘러싼 논란

최근 인터넷 게시판을 둘러싼 논란들이 한창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2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인터넷 역기능 해소 대책의 일환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실명을 확인하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성을 이용한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이 일치하는 실명확인이 되지 않으면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없도록 하는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공공 기관부터 시작해 점차 민간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한다. 익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릴 때 나타나는 욕설, 비난, 조소, 조롱, 허위사실 유포 등을 실명제를 통해 막아보겠다는 것이 정보통신부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많은 시민단체에서는 인터넷에서의 익명은 의사소통의 프라이버시권으로서 고유한 인권의 하나이며, 따라서 게시판 실명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의 특성

인터넷이 등장함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형태도 크게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어떠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도 ① 비동시적이고 ② 쌍방향적인 방식으로 ③ 시공간을 초월하여 ④ 익명성이 유지되는 ⑤ 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쌍방향적,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사이버 공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대면적 상호작용에서 불가피하게 작용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요인들을 넘어서 수평적 관계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네티즌들은 재산, 소속, 신분, 지역, 나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발언주체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현실 세계에서의 목사, 장로, 권사, 평신도 등의 직분은 의미가 없다. 모두가 동등한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갖는다.

둘째, 사이버 공간에서는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이 일방적인 정보의 수혜자로 그치지 않고 정보의 전달자로 나설 수 있으며, 그 결과 의견교환이 활성화될 수 있다.

셋째, 사이버 공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 참여자의 발언이 가감이나 첨삭없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즉 개인의 자유로운 발언이 별다른 여과없이 여론의 한 부분으로 흡수될 수 있다.

넷째,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은 현실세계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을 할 수 있게 한다. 게시판 등을 통해 부담없는 토론과 비판적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터넷을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 게시판, 채팅 등을 통해 행해지고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게시판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게시판 문화

우리나라만큼 게시판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서구의 웹사이트들 중에는 그 흔한 게시판 하나 없는 곳도 의외로 많다는 사실과 비교해 본다면 한국의 게시판 문화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각종 웹사이트는 물론 개인 홈페이지도 게시판 하나쯤은 반드시 달려 있다. 서구의 네티즌들이 이메일을 주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많이 사용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게시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한층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유교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장유유서의 문화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대해 토를 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손아래 사람은 항상 손위 사람의 말에 따라야 했다. 설령 불만이 있더라도 순종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또한 국가나 특정집단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독점하고 일반인들은 다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을 뿐이었다. 유교적 권위주의는 권력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국가나 국가 최고 통치자에 대한 발언은 비록 그것이 개인적인 자리에서 이루어졌다해도 법률에 의해 처벌받기까지 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의해 젊은이들과 일반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욕구는 늘 억눌려왔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으로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욕구는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터넷은 지금 비록 과도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발전시키고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문제점

인터넷의 익명성은 자칫 무책임한 언어의 유희나 감정의 배설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있다. 익명성의 베일 뒤에서 내뱉어지는 극단적이거나 자극적인 언어의 남발은 이상적인 토론을 방해하기도 한다. 더욱이 아직 우리사회의 토론 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익명성이 미숙한 토론을 부축이기도 한다.

문제는 국가기관이 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게시판 실명제를 도입하려는 데 있다. 국가기관이 익명성을 싫어한다면 실명제 게시판을 운영하면 된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관련 기관 웹사이트는 실명제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을 법으로 만들어 민간 홈페이지까지 강제적으로 실명제를 실시하겠다는 발상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다.

익명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활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다. 이를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크리스천과 인터넷 게시판

교회의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살펴보면 몇가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다. 교회내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단방향적인 성격이 강하다.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의사가 전달되는 형식이다.

교회의 어른들로부터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직분자(목사, 장로, 권사 등)로부터 평신도에게, 남성으로부터 여성에게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 교회의 경우는 왜곡된 복음의 이해와 유교 문화가 결합되어 일반사회보다 더 권위적인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보여준다.

둘째, 교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참여적이지 못하다. 커뮤니케이션은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커뮤니케이션의 상호작용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이해하며 정보를 주고받고 공동체를 더욱 튼튼히 만들어간다. 교회의 경우 자칫 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젊은층과 여성, 평신도들을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소외시키기 쉽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인터넷을 필두로 한 정보사회의 급속한 도래로 쌍방향적이고 참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주류를 이루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의 인터넷 매체도 예외가 아니다. 억눌렸던 젊은 크리스천들의 커뮤니케이션 욕구는 자연스럽게 교회나 기독교 기관 등 크리스천 웹사이트의 게시판에도 나타난다. 사회의 변화를 체험한 그들은 기독교 안에서도 같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안과 과제

한국사회는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언론 등 사회의 전반적인 부분들이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지극히 수동적이다. 단순히 뉴미디어를 수단이나 도구로 이해할 뿐 뉴미디어가 가져오는 변화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대응이 미흡하다.

게시판을 통한 크리스천들의 커뮤니케이션 형태 역시 많은 긍정적인 요소와 함께 폐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교회는 이를 염려만 할 뿐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정보사회에서 크리스천들의 새로운 윤리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고 있지 못하다.

인터넷을 활용하는 기술교육에는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인터넷을 포함한 뉴미디어를 바르게 사용할 지에 대해서는 교육하고 있지 못하다. 결국 교회에서 성경을 정보사회의 눈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올바른 미디어 교육을 통해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