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균 기자

대한민국의 뿌리깊은 고질병인 이른바 동서 갈등. 우리 국민은 영남과 호남의 지역갈등 속에서 올바른 대통령이 아닌 지역 대통령을 선출하는 잘못을 반복해 왔다. 기독교인들 역시 지역 연고주의 혹은 종교적 연에 따라 대통령을 선택해 왔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002년 대선에서도 과거의 잘못된 행태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선 관련 기독교계의 현재 모습과 그에 따른 대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10여 년간 공명선거 운동을 벌여 온 공의정치포럼 집행위원장 백종국 교수(경상대)는 2002년 대선에서 “공평과 정직과 인애의 덕목을 실천할 수 있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지연·혈연·학연으로 대통령을 고르는 구태를 단연코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최근 기독교계의 대선과 관련된 행태는 과거에 비해 절대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지난 11월 18일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영남지역 목사 장로 수련회는 기독교계가 아직도 뿌리깊은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을 한달 앞두고 열린 이 행사는 개막 전부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인사말을 하는 등 수련회 본래의 취지가 퇴색된 채 정치색 물씬 풍기는 행사로 전락했다. 특히 개회 예배 설교자인 이종일 목사(서울 흰돌교회)는 영남사람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유다지파에 비유하며 교단의 선두주자는 당연히 영남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이 목사는 또 청중들에게 “나는 유다지파다. 영남이 선도해야 한다. 믿습니까?”라고 물어 “아멘”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 목사의 설교와 김 장로의 메시지는 모두 이회창 후보가 이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선에 충분한 영향을 미칠 만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데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가 지난 11월 12일과 13일 양일에 걸쳐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규모 행사와 주최측이 동일한 인물이란 점에서 대선을 앞둔 가운데 영남지역 대규모 기독교 집회의 정치적 순수성에 대한 의혹은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호텔 인터불고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1회 영남지역 국가기도회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김기수 목사, 대구기독교총연합회장 임태득 목사 영남 교계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지만, 이 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박근혜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담당하고, 김한규 전 총무처장이 인사말 속에서 몇 번이나 박 의원을 거론하는 등 행사의 순수성이 상당히 훼손된바 있다.

이런 일련의 행사에서처럼 매번 선거철마다 기독교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 ‘구국 기도회’ 등을 개최하지만 특정 정치인을 내세우거나 초청하는 형식을 빌어 순수하지 못한 행태를 반복해 왔다.

특히 지역 연고주의와 더불어 과거 이승만 김영삼 등 장로 대통령을 향해서도 종교적 연에 따라 노골적인 편들기에 나서 일반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목회자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991년 12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 후보 조찬 기도회에서 김창인 목사(충현교회 원로)가 “신앙인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기도한 것은 이런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기독교의 이러한 선거 참여 행태와 관련해 공의정치포럼 윤환철 사무국장은 “종교적 연관성에 따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지연이나 학연에 의한 지지와 하나도 다름없는 ‘왜곡된 선거 참여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기독교계의 모습은 대선뿐만 아니라 표면적인 정교분리 외침 속에서 잘못된 정치권력에 대한 야합으로 이어졌다. 백종국 교수는 “일부 성직자들은 민주화 운동에는 냉정하면서도 군사 독재에는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왔으며 이로 인해 기독교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부정적 시선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부 기독교계의 지역갈등 영합 행위와 달리 최근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특정 후보의 정책과 인격을 들어 공개 지지를 표명하거나, 개혁국민정당 창당에 적극 개입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적극적인 정치참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연과 혈연 종교연을 모두 탈피해 후보 개인의 정치적 역량과 인품을 중시하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와 관련, 손봉호 교수(서울대)는 “공익을 위한 정치참여와 사익을 위한 정치참여는 구별되어야 하며, 공익을 위한 정치참여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언급, 이런 움직임에 대한 지지를 시사했다.

또 기독교 단체 중심으로 캠퍼스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운동을 비롯 대선실천기독청년학생연대 등이 기독교인들의 바람직한 대선 참여 기준을 제시하고 강연회와 토론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도 긍정적인 현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올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계는 이처럼 일반 집단에 비해 별로 나을 것 없는 지연 혹은 종교적 연에 따른 정치 및 선거 참여 행태와 공의와 정직, 인격과 정책을 토대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진일보한 모습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