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규 목사 / <호스피스 아름다운 봉사자>저자. 사랑의교회 호스피스 담당목사, 총신 신대원 강사

제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아쉽게도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호스피스(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봉사활동) 사역을 하며 만났던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18세 소녀, 10년의 투병으로 몸이 자라지 않아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왜소한 몸을 지닌, 현대 의학도 규명하지 못한 불치병 환자 소라의 이야기입니다.
소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뒤틀리는 뱃속에서의 통증과 살갗에 돋는, 쐐기가 쏘는 듯한 아픔 때문에 자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온 얼굴에 땀을 흘리는 환자였습니다.

소라 엄마는 어느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엄마가 아침에 미어지는 아픔을 뒤로 하고 점심을 챙겨 주고 나가면 소라는 혼자서 겨우 일어나 점심을 한 숟갈 뜨는 것이 자신을 돌보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꼭 끼고 찬송하는 폼이 너무 은혜스러워 “너, 전도사님 같다!”라는 격려를 해 주고 또 더 많은 찬사를 해 주고 싶은 아이였죠.

소라의 몸에서 성한 곳이라고는 대문짝만한 이빨밖에 없었습니다. 소라는 이빨밖에 기증할 것이 없다고 걱정을 하던 아이였습니다.
소라를 돌본 지 석 달이 되던 어느 날 새벽 3시50분. 병원에서 소라가 위독하다는 급보가 왔습니다. 바로 달려갔건만 소라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평안해 보였습니다.

끙끙 앓기만 하던 소라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간병인에게 “죄짐 맡은 우리 구주를 불러달라”면서 몸을 뒤척이더니 밤색의 가죽 지갑을 하나 꺼내 놓았답니다. “목사님에게 전해 주세요, 나 같은 사람에게 쓰시라고요. 헌금이에요!” 하더랍니다.

저에게 건네준 지갑을 열어본 순간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지갑 안에는 천원 권 13만6천원과 5천원권 2매, 만원권 1매, 십만원 수표 한 장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모았는지 중국 화폐 5각 한 장, 미국 1달러 한 장, 필리핀 5피소 한 장이 다리미로 다린 듯 구겨진 데 한 곳 없이 고이고이 지갑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간병해 주시던 집사님은 그 내용물을 보시고 “그래서 통증이 올 때 몸을 뒤척이다 깜짝 놀라 몸을 반듯이 눕히고 무엇인가를 손으로 쓸었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지었습니다.
“내가 먼저 떠나면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

환하게 웃을 때면 유난히 희고 넓은 이빨이 눈에 띄던 소라의 마지막 말이었답니다.
소라가 하늘나라로 간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씩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세상이 각박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소라가 떠오릅니다. 시신기증을 하고 싶어도 몸이 너무 망가져서 할 수 없었던,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소라지만 그 마음만큼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미 하늘나라를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소라를 생각하면 사람들의 욕심과 나약함과 이기심들이 부끄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