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신의 신성을 궁극적으로 증명하였다. 그의 부활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자기 증명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 안에서 먼저 이루어진 약속의 성취는 잠정적이며 동시에 새로운 약속이다."

몰트만과 함께 “희망의 신학”과 같은 톤으로 외쳤던 또 다른 독일 신학자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1928∼)였다. <역사로서의 계시>(1968)에서 그는 역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준다고 선언한다. 그것을 통해 정통신학과 자유주의신학 모두가 받아들일 신학을 시도했다.

◆  계시로서의 역사

1960년대는 신학적으로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신정통신학”을 넘어서 “신죽음의 신학”, “희망의 신학”, “해방신학”이 일어나고 있었다. 당시까지의 실존철학과 신정통신학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계시는 객관적 역사를 떠나 개인적 역사로 도피하고 있었다.

우선 성경의 내용이 신화가 되다보니 그것을 일반 역사적 방법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존적으로 그것을 보고 믿음이 올 때 그 믿는 사람에게만 역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창조의 이야기는 절대로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다. 종교적이거나 신학적인 역사일 뿐이다.

이 종교적 또는 신학적 역사를 신정통주의자들은 “초역사” 또는 “원역사”라고 억지로 이름을 붙였다. 그런 주관적 역사가 보여주는 성경 내용이나 예수의 모습을 “케류그마 신학”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니 계시의 내용은 전체가 객관적 역사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항해 판넨베르그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성을 회복하려 하였다. 동시에 역사에 대한 기독교진리의 보편타당성도 보여주려 하였다. 역사의 사건들과 하나님의 계시가 서로 상관이 없다면 계시는 역사에서 위치를 잃게 된다. 현실과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자기를 증명한다는 것이 바로 역사이다. “성경의 증언대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신의 나타남처럼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역사의 행위를 통하여 일어났다.”

구약의 출애굽부터 예언서까지 그리고 신약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의 행위에서 자신을 증명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식은 그의 역사적 행위를 통해 가능했다. 하나님은 이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을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  그리스도의 역사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의 처음에 보이지 않고 종말에 궁극적으로 나타난다. “성경의 하나님은 모든 사건의 전체를 통해서만 자신의 신성을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주가 되심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궁극적인 일이 예수 속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은 예수의 운명 속에서 그의 부활과 함께 궁극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계시된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인간의 삶의 전체와 본질이 예수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궁극적 계시이며 모든 역사의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로 밝혀주는 근원이다. 또한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서보다 예수를 통해 계시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출발하여 그 약속의 성취를 지향한다. 그것은 유대역사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역사의 종말까지로 이어진다. 묵시사상가들은 역사를 구원의 과정으로 보았고 그것을 보편적인 세계역사로 확대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보편적인 만유의 구주라는 것이다.

그래서 판넨베르그는 예수를 약속의 종말론적 성취로 본다. 예수의 삶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신의 신성을 궁극적으로 증명하였다. 그의 부활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자기 증명을 보여준다. 또한 예수 안에서 먼저 이루어진 약속의 성취는 잠정적이며 동시에 새로운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특히 부활은 우리도 거기 참여한다는 약속이 포함된다. 하나님은 예수의 운명 속에서 자신을 궁극적으로 계시하시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는 아직도 개방되어 있고 가능성으로 충만한 것”이다.

이 역사는 반복이거나 어떤 목적으로 나가는 게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일어나는 과정이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향한 개방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단순히 이 세계의 근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자로서 늘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고 계신다.

◆  역사와 신앙

역사로서 나타나는 계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신앙이란 전제가 필요한가? 그에게는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식은 이성의 일이다.” 이 전체의 확실성은 “신앙의 결단”으로가 아니라 “이성의 판단”을 통해서 얻는다.

그가 볼 때 예수의 부활은 분명히 “역사적 사실”이며 초대 공동체의 교리는 이 역사적 사건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이성과 대립되지 않는다. 신정통처럼 이성으로 안되니까 실존적 신앙으로 대치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신앙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있어야 한다.

신앙이 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시 사건 그 자체가 신앙을 만든다. 원칙상 이것은 역사적 비판적 연구로 검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복음서를 그렇게 검증하면 예수의 부활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활은 그에게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판넨베르그는 부활이 보편적인 역사임을 찾아냈는가? 그것 역시 자유주의적 방법이다. 유대묵시문학과 당시의 문헌들이 부활이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여전히 예수의 부활은 확실하게 증명되지 않는다.

이렇게 판넨베르그는 당시의 자유주의의 신학방법을 전통적인 기독교와 연결시켜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전통적 기독교는 묵시문학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수 부활의 증거를 본다. 그러니 같은 말을 해도 그 출발점은 같지 않다. 성경인가? 역사인가?

바르트를 비롯한 신정통주의를 극복하고자 나온 그의 신학도 성경에 근거하지 않음은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바르트가 전통적인 신학을 초역사로 받아들여 신앙을 세운 것처럼 판넨베르그는 자신이 만든 보편사를 통해서 신앙을 얻고 있다. 바르트의 것과 무엇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