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처음 나오는 애가

정이신 목사

<3편>은 <시편>에 처음으로 나온 애가(哀歌)다. <1∼2편>을 <시편>을 소개하는 서론으로 간주하면 이 책이 시작되는 건 <3편>이다. <1편>에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하라고 했고, <2편>에서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3편>에서 처음으로 ‘셀라’가 등장하고(2ㆍ4ㆍ8절) 시의 저자가 누군지 나오는데, 내용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했던 탄식이다.

우리말 번역 성경에는 시에 대한 소개인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지은 시’란 설명을 시의 절 구분에 포함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게 시에 포함돼 총 9절로 돼 있다. 우리말 번역 성경의 의도와 달리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시에 대한 설명도 시로 본다.
 

이런 차이는 <시편>의 편집 때문에 발생했다. 처음부터 <시편>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한 권으로 묶여 있지 않았고, 각 시의 서두에는 그 시를 누가 어느 때 썼는지 설명이 같이 있었다. <시편>을 편집했던 사람들은 시에 대한 설명을 내용에 포함 시켰는데 이는 고대 문서가 지닌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시의 제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맨 위에 시에 대한 설명이라고 표제로 이걸 기록한 후 본격적인 시의 내용으로 절을 구분했다. 현대에는 시를 표기할 때 시의 제목을 분리하기에 이런 용례를 반영했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게 우리말 번역 성경의 편집이다. 표제로 돼 있는 걸 하나의 절로 편집해 <3편>을 <9절>로 편집했다면, 이걸 읽는 사람들이 <시편>을 읽으면서 질문했을 것이다. <1∼2편>과 달리 표제가 들어간 이유가 뭔지를 곰곰이 생각할 것이고, 시를 기록한 배경이 되는 사건을 성경에서 찾아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것처럼 히브리어 성경에서 <1절>로 편집한 걸 표제로 바꿔서 시의 내용과 별개인 것처럼 해 놓으니 그런 면이 없다. 시를 썼던 고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시를 읽을 때는 시의 제목이 말하는 메시지가 뭔지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의 제목이 사라진 채 읽는 <시편>은 그런 면이 약하다.
 

<3편>의 서두는 ‘대적이 많다’라는 다윗의 한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3편>을 <시편>의 서두에 편집해 놓은 의도를 알아봐야 한다. <1∼2편>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과 달리 인간이 부딪히는 삶의 모습은 고통이 주류를 차지한다. 그래서 <1∼2편>에서 말한 찬란한 영광을 뒷전에 둔 채 인간은 먼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게 된다.
 

<1∼2편>이 예언적으로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가 준 은혜를 받았지만, 현실은 그 은혜의 기쁨보다 그 은혜를 빼앗으려는 대적이 나를 둘러싼 고통이 더 많다. 그리고 이게 인간이 사는 삶의 현실이기에 여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위대한 창조질서의 서광을 맛본 후,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부터 우리를 엄습해 오는 온갖 대적들과 싸워야 한다.
 

이때 <3편>의 고통을 먼저 본 후 <1∼2편>을 기억하는 사람과 <1∼2편>에 나온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먼저 본 후 <3편>의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행동이 다르다. 크리스천은 <시편>의 편집 순서처럼 <1∼2편>을 먼저 본 후 <3편>의 고통을 봐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부른다

시는 ‘야훼’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1절). <1ㆍ3ㆍ7절>에서 “주님”으로 번역한 ‘야훼’란 성호를 사용했는데, <7절>은 “하나님(엘로힘)”이란 성호를 한 번 더 사용했다. 새번역성경은 ‘야훼’를 “주님”으로 엘로힘을 “하나님”으로 번역했다. 이는 ‘야훼’란 말이 가진 히브리인의 사유 방식을 고려한 것이다. 그 뒤 대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다윗의 탄원(1∼2절), 그 와중에도 야훼가 자신의 방패라는 확신(3∼6절)이 등장한다. 이런 확신을 토대로 다윗은 야훼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뒤 구원이 야훼께 있다는 확신으로 시가 끝난다(8절). 그런데 <시편 1∼2편>이 서로 이어진 것처럼 <3∼4편>도 서로 연결돼 있다. <3편>은 ‘아침에 하는 기도’로 다윗은 위험한 밤을 안전하게 보낸 후에 기도했고(5절), <4편>에서 그는 아직도 위험이 사라지지 않은 밤에 자신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4:8).
 

시적 화자로 등장한 다윗은 두 시에서 모두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었다(6절, 4:2). 그러나 높은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곤경에 처해 있었다(1절, 4:1). 그래서 <1∼2절>에 “많다”란 표현을 3번이나 썼다.
 

<삼하 15∼19장>을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켜 온 이스라엘에서 반란군을 모았고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이때 다윗의 나이는 신앙이 어린 소년기가 아니었고, 고대 이스라엘도 막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정상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졌는데, 다윗의 친구 후새가 그를 위기일발의 처지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모든 사건에 개입하셔서 그와 이스라엘을 구하셨다고 했다. 다윗은 인간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보고 그걸 찬양했다.
 

<삼하 15:13; 17:11>을 보면 압살롬의 군대가 다윗의 군대보다 훨씬 많았다. 또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 시므이는 사울 집안사람을 다윗이 죽였기에 그런 벌을 받았다고 그를 조롱했다(삼하 16:7∼8). 사울은 다윗이 죽인 게 아니라, 그가 잘못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죽었다. 그러나 시므이는 그걸 다윗이 저지른 악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망가는 다윗을 보고 조롱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결백함을 아신다는 확신으로 <3ㆍ6절>과 같이 말했다.
 

<1절>에서 “대적(차르)”으로 표현된 존재가 <7절>에서는 “원수(오예브)”와 “악인(라샤)”으로 나온다. 이는 다른 성격으로 묘사된 동일인이기에 본질이 같다. 저들은 다윗을 공격했던 사람들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배신과 탄원의 노래

당시 다윗은 고대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런데 그를 공격하는 사람이 내부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다윗이 보살피고 다스렸던 사람들이 압살롬을 지지하면서 그에게 등을 돌리고 그를 대적했다. 어제까지 도움받았던 사람들이 오늘 그에게 더 이익이 되는 일이 나타나면, 도움받았던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칼을 겨누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게 현실이다.
 

다윗은 저런 세태를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의 노래로 그가 겪은 아픔을 승화했는데, 그가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다윗은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대상으로 봤다. 그래서 도움받았던 사람들이 그를 배신했을 때도, 철저하게 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탄원의 노래로 바꿔서 기도했다.
 

다윗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자들

다윗을 치기 위해 대적이 일어났다(1절). 앉아서 싸우면 서로 주먹질을 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대개 앉아서 싸우는 사람은 말로만 싸운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다윗을 치기 위해 일어섰다. 이는 대적자들이 다윗의 생명을 노렸다는 말이다.
 

대적자들이 다윗의 생명을 노리지 않았다면 앉아서 다윗을 욕하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대적자들은 큰 것 한 방으로 그를 해치려고 결집했다. 그런데 대적자들이 자꾸 늘어났다. 사방에서 다윗에게 대적하겠다고 압살롬과 협력하기 위해 압살롬을 찾아갔다.
 

그러자 다윗은 맥이 풀렸다. 이렇게 많은 대적자를 다윗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이런 면에서 <1절>에는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도망갈 때, 그가 봤던 인간 군상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3편>의 배경이 된 압살롬의 반란 사건은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세바와 간음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했으나 나단이 이걸 지적했고, 나단의 지적을 받아들여 다윗은 회개했다. 그러나 다윗이 죄를 저지른 후유증으로 고대 이스라엘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은 그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기에, 그 일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울처럼 다윗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사울에서 다윗으로 왕이 바뀐 건 전혀 다른 사람이 왕위에 오른 것이지만, 압살롬이 다윗을 대신하는 건 집안싸움이기에 누가 왕이 되든지 유다 지파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되는 것이다. 다윗의 대적자가 아닐지라도 그가 겪는 상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윗은 그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개입해 달라고 호소했다(2절). 이때 다윗은 그를 대적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었다. 고대 중동에서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신(神)들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는 국가끼리 서로 상대 국가의 신들이 그 국가를 버렸다고 조롱했다(참조. 왕하 18:28∼35, 사 36:13∼20).
 

만약 하나님이 다윗을 돕지 않으신다면 대적이 내뱉었던 말이 옳은 게 되고, 주님이 그에게 주신 언약은 거짓이 된다. 그러므로 이는 대적자들이 한 말이 틀린 말이라고 하나님께 이걸 입증해 달라고 다윗이 요청한 것이다.
 

여기서 “도움”은 군사적인 성격을 띤 표현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다면 그가 대적을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