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홍 , 신천지
전체기사 | 상담제보 | 후원신청 | 배너달기
> 뉴스 > 이단&이슈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칼케돈 공의회까지(AD 325-451)
송요한 목사의 이단분별법(6)
2024년 01월 31일 (수) 12:01:18 송요한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송요한 목사(중화권 선교사, 이단연구가, 백석)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 제1차 세계공의회, 325년)

니케아 회의는 교회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독교 최초의 세계회의일 뿐만 아니라 그 회의의 결과로 최초의 신경인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니케아 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은 아리우스(Arius, 250?∼336?)의 기독론 이해가 과연 받아들일만한가에 대한 논쟁에서 비롯된다. 이 회의에서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규정되고 니케아 신조가 채택되었다.
 

1. 아리우스파(Arianism)의 주장

아리우스파는 하나님의 절대적 유일성과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분할될 수 없으시며 불변하심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창조된 모든 신적 존재들 중에서 가장 클지라도 하나의 창조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완전성을 부인하고 하나님도 아니요, 사람도 아닌 창조된 존재, 즉 일종의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그리스도를 주장하였다. 그의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로고스는 다른 피조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자존적이지 않다.

② 로고스는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③ 아들은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니기에 아버지를 완전히 알지도 못한다.

④ 아들은 변할 수 있으며 심지어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아리우스는 아리안주의(Arianism)라고 불리는 이단의 효시이다.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이단성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은 중세에 회교의 발생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지며, 오늘날은 여호와의 증인으로까지 이어진다.
 

2. 니케아 신조(Nicene Creed)

아리우스의 주장은 당대 교회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274-337) 황제의 주선으로 니케아에서 전세계 교회의 대표들이 모인 종교회의가 열리게 된다. 니케아 회의(AD325)에 참석했던 교회 대표는 모두 318명이었는데 그 중에 신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306명이었다고 전한다. 그들 대부분은 핍박의 시기를 통과하다가 고문이나 탄압에 의해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결정이 권위 있음은 내용의 옳음이 근본이지만 그들의 삶의 족적이 그 결정을 더욱 권위있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Alexander of Alexandria)와 그의 수행원이었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3?~373)는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명료하게 반박하며 정통파의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파하였다. 당시 공의회의 분위기는 아리우스파와 중도파가 다수였고 알렉산더나 아타나시우스와 같은 정통파는 소수였지만 그 주장이 너무나 설득력 있었기에 중도파의 지지를 많이 이끌어 내게 되었다. 그 결과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공의회는 니케아 신조를 작성하여 선포하게 된다.
 

-니케아 신조(신경) 전문-

전능하신 아버지시요 가시적이거나 불가시적인 만물의 창조주이신

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으며 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이는 아버지에게서 독생자로 나셨으니 아버지의 본질(substance, 즉 ousia)에서 나셨으며,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하나님이요 빛에서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니

나신 분이시고 창조되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동일 본질(homousios)이시며,

그로 말미암아(혹은 그를 통하여) 하늘과 땅 위에 존재하는 만물이 있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시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으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거나

그가 나시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거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다른 실체나 본질에서 유래되었다거나

창조되었다거나 변모되고 변질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하나인 사도적 교회가 정죄합니다. 아멘
 

2) 콘스탄티노플 공의회(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제2차 세계공의회,381년)

   

① 니케아 회의 결정에 대한 반발과 갈등

니케아 회의 이후 아리우스파는 굴복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황제와 같은 정치적인 세력을 등에 업고 정통파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아타나시우스는 5차례나 감독직을 박탈당하고 17년간 유배 생활을 하여야 했다. 이처럼 아리우스파가 정치적 힘으로 소수인 정통파를 탄압하였지만 당시 전체 교회의 분위기는 여전히 중도파가 주도하고 있었다.
 

② 콘스탄티노플 신조(신경)

정통파는 니케아 공의회 이후 줄곧 밀리던 와중에 361-381의 기간동안 정통파의 세 신학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329~389), 니사의 그레고리 (Gregory of Nissa,330~395)와 바실리우스(Basileius, 대 바질(Great Basil), 330-379) 가 공교회를 설득하게 된다. 이들을 갑바도기아 교부들(Cappadocian fathers)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아리우스파는 세력을 잃게 되고 대다수의 중도파들도 정통파의 교리를 널리 받아들이게 되어 니케아신조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381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니케아의 결정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 때 채택된 신조가 콘스탄티노플 신조이다. 이 신조는 니케아 신조의 내용을 더한층 명료하게 보충하고 다듬은 것이다. 결국 이 일은 니케아의 결정을 오랜 시간을 두고, 격렬한 논쟁과 충분한 토의를 거쳐 다시 한번 인정하고 받아들인 결과이므로 그 결정의 진정성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 Constantinople Creed )의 전문-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만드신 분을 믿나이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모든 시간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出生) 분이요,

빛으로부터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하나님이시요,

나시되 만들어지신 것은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본질(homousios)이시니라.

이를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으며, 그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 하시었고, 사람이 되시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었고,

고난받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시었다가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무궁하리라.

또한 성령을 믿사오니,

이는 주 되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니, 아버지로부터 발출(發出) (proceeds)하시며,

곧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함께 경배받으시며,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오신 분이시니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나이다.

우리는 죄의 사유를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하나이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을 바라고 있나이다. 아멘.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니케아 신조와 함께 묶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혹은 그냥 니케아 신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콘스탄티노플 신조가 니케아 신조를 더 확고히 하는 부연설명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신조는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하는 정통신학의 초석 그 자체이다.
 

3) 도나투스파(Donatists)

북아프리카에서 4세기 초 도나투스(Donatus, ?-355) 등에 의해 분파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교회와 국가를 동시에 거부한 운동으로서 약 100여년간 규모 있게 지속되다가 점차 쇠퇴한 후 7세기에 완전히 소멸되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교회는 언제나 소수의 남은 자들로 구성된다. 교회의 성결은 교회 구성원들의 성결에 의해 구성되므로 로마 정부의 교회 박해가 끝난 이후 배교했던 자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였다. 세례도 자기들 종파 이외의 교회에서 받은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원리에도 위배되는 매우 배타적인 모습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칫 교회의 고립을 야기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도나투스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과격한 광신주의적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도나투스 파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그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죄는 배교의 죄보다 더 크다고 하였고, 교회 내의 선인과 악인의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적으로 이뤄질 것이므로 사람이 섣불리 구분할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교회의 성결은 교인들의 성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성결에 근거한다고 하였다.
 

도나투스 파의 주장에는 자기네 소수집단 만이 선택받고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단의 특징과 그 폐쇄성이 잘 드러난다. 오늘날 모든 이단들은 이런 교회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아폴리나리우스주의(Apollinarianism)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310-390)는 그리스도의 인격(위격)의 통일성을 지나치게 주장하던 나머지 그리스도의 인성의 선재(先在)성을 주장하였다. 그는 요한복음 3:13과 고린도전서15:47을 근거로 선재하는 하늘의 사람, 둘째 아담이 성육신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또 주장하기를 그리스도는 신체를 가졌지만, 그 신체는 승화된 것으로서 거의 사람의 신체가 아니었다고 하였다.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요한 관심사는 그리스도의 인격(위격)의 단일성과 참된 신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예수님의 신인양성(神人兩性)과 그 인격(위격)의 통일성을 말함에 있어서 오류에 빠진 아폴리나리우스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심을 흐릴 뿐만 아니라 영지주의의 가현설적인 면도 띠고 있다.
 

5) 성경 정경의 수납(카르타고 지방회의, Council of Carthage, 397년)

구약은 예수님과 사도시대부터 39권이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신약성경에 대하여서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많은 영지주의자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사도나 권위자의 이름을 붙여 복음서와 서신서를 지어내곤 했는데, 그런 행위들은 초대교회에서 큰 골치거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교부들이 합당한 권위를 부여받을 만한 신약 정경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였는데, 대체적으로 현재의 신약 27권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397년 카르타고 지방회의(Council of Carthage)에서는 정식으로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채택하였다. <p. 정경의 인정 참조>
 

6) 아우구스티누스파와 펠라기우스파의 논쟁
 

1.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의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Augustinus, 354-430)는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음을 확신하였다. 즉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모든 인류도 그의 안에서 범죄하였고 결국 거룩한 성품이 손상되고 타락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선을 행할 자유를 상실하였다. 타락 이전에는 범죄할 자유도 범죄하지 않을 자유도 있었지만 범죄 후에는 그런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범죄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 어떤 악의 유혹도 극복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오늘날 정통교회는 이 은혜의 교리에 입각한 이신칭의(以信稱義) 사상을 믿음의 근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 펠라기우스파(Pelagianism)의 율법주의

펠라기우스(Pelagius, 348-409)는 도덕주의자로서 인간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거부하였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생각을 혐오했다. 만약 그와 같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하여 펠라기우스는 무조건적인 자유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였다. 곧 인간이 원한다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펠라기우스도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부차적으로 보거나 단지 없어도 괜찮은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행위로도 구원을 받는다고 여긴 점이다. 그런 생각은 곧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모순이 있다.
 

3. 카르타고 회의(Council of Carthage, 카르타고 지방회의, 412년)

펠라기우스의 제자 켈레스티우스(Caelestius)는 그 스승보다 더 과격한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매우 논리적인 사람으로서 펠라기우스의 이론에 자기 주장까지 더하여 가르치다가 412년 카르타고 지방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된다. 켈레스티우스의 이단성에 대한 당시 종교회의의 지적은 다음과 같다.
 

① 아담은 범죄하지 않았어도 죽었으리라는 주장

② 아담의 타락은 아담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쳤지 인류 전체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는 주장

③ 유아들은 타락 이전의 아담과 같이 무죄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는 주장

④ 온 인류는 아담의 타락으로 사망하지도 않거니와 그리스도의 부활의 공로로 부활하게 되지도 않는다는 주장

⑤ 유아세례를 받지 않은 유아들도 구원받는다는 주장

⑥ 복음뿐만 아니라 율법에 의해서도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

⑦ 그리스도 이전에도 죄 없는 삶을 산 사람이 있다는 주장.
 

카르타고 회의 이후 펠라기우스파는 점차 궁지에 몰리는데 다른 지방 회의에서도 연이어 불리한 판결을 받았고 결국 431년 에베소 세계공의회에서도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위에서 ⑤항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정통 개신교회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유아세례는 부모신앙의 표시이며 아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를 소망함이지 구원의 수단은 아니다. 사망한 유아에 대하여 말할 때 완전한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정통신학자들은 구원받게 될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소모적 논쟁거리에 대해서는 겸손히 하나님의 결정에 맡기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6) 네스토리우스파 (Nestorians)

아폴리나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통일성을 강조하다가 이단이 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이단이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참된 신성을 변호하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라, 신격(神性)의 소유자요, 하나님 지참자(持參者)였다. 그리스도가 경배를 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곧 네스토리우스는 인성과 신성을 나누어진 채로 이해한 것이다. 곧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 간의 연합을 부정한 것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431년 에베소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재확인되었다.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 그의 제자들은 동방으로 옮기면서 선교를 감행했는데 그 결과 일찍이 중국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곧 경교(景敎)이다. 경교는 당나라 때 들어가 약 200여년간 번영하였다. 그러다가 핍박과 불교 등 토속종교와 섞이면서 쇠퇴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미미하지만 오늘날도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소수가 남아있다.
 

7)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 제3차 세계 공의회, 431년)

에베소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이단성 시비 문제가 주된 논점이었고, 또 한편으로 아우구스티누스파와 펠라기우스파의 논쟁에 대한 판단 여부였다. 이 때 네스토리우스파와 펠라기우스파가 이단으로 규정된다. 펠라기우스파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 곧 이신칭의(以信稱義)로 말미암음을 확고히 한 것이다. 이 회의에서는 앞서의 두 공의회-니케아, 콘스탄티노플 회의-와는 달리 특별한 신조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8) 유티케스의 단성론( Monophysitism)

유티케스(Eutyches, 380-456)는 말하기를 한방울의 식초가 대양에 흡수되듯이 그리스도의 인성이 그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몸과 다르다고 하였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인성을 단순히 가현 같은 것으로 여긴 태도이다. 그래서 그는 448년 콘스탄티노플 지방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그 이듬해 449년에 열린 에베소 지방회의에서는 자기 세력의 무력 행사를 통해 복권되었다.
 

9) 칼케돈 공의회 (Council of Chalcedon, 제4차 세계공의회, 451년)

449년의 에베소 지방회의의 불미스러운 사건 등으로 인해 유티케스파에 대한 처리와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에 대한 논의를 위해 칼케돈 공의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유티케스는 다시 이단으로 규정되고 공의회는 칼케돈 신조를 작성하여 고백하게 된다. 칼케돈 신조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칼케돈신조(Chalcedonian Creed)의 전문-

그러므로 교부들을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한 분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완전하시고, 사람으로서도 완전하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몸을 가진 참 사람이십니다.

그분은 신성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와 동질이시고 인성으로 말하자면 우리와 동질이시며

모든 점에서 우리와 같으시나 죄는 없으십니다.

그분은 신성으로 말하면, 시간 이전에 성부에게서 나셨으며,

인성으로 말하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정녀이시며 하나님을 낳으신(theotokos)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우리는 성자이시요, 주님이시요, 독생자이신 유일하신 한 분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그분은 두 본성으로 인식되는데, 두 본성이 혼합되지도 않으며,

변화되지도 않으며, 분할되지도 않으며, 분리되지도 않음을 인정합니다.

도리어 양성은 각 본성의 특이성을 보유하면서 하나의 인격(위격)과 자질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두 인격(위격)으로 분열되거나 분리된 한 분을 고백하지 않고,

한 분이시며 동일한 독생자이신 성자,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이 우리에게 미리 알려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그와 같이 가르치셨으며,

교부들이 우리에게 전수한 신앙고백에서도 역시 그렇게 가르칩니다. 아멘
 

오늘날 칼케돈 신조에서 가장 논쟁거리가 되는 부분은 ‘하나님을 낳으신(theotokos) 마리아’라는 문구에 있다. 그런데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문구를 넣은 것은 네스토리우스 등이 예수님은 탄생시에는 신성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반박을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잉태될 때부터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분이심을 강조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후일 로마가톨릭교회는 이 문구를 확대 해석하여 마리아 숭배로까지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본래 신조의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10) 사도신조의 형성

사도신조의 기원은 세례 문답시에 수세자로 하여금 고백케 했던 신앙고백문으로부터 출발한다. 2-3세기 초대교회로부터 있어왔는데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4-5세기경이라 할 수 있으며 후일 많은 이단들에 대항하기 위해 서두에 ‘내가 믿사오며(Credo)’라는 말을 넣으면서 신조로서 여겨지게 되고 710-724경에는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신앙고백문으로 형성되었다. 이 사도신조는 서방교회에서 유래하였으며 동방교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방교회가 사도신조의 내용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전의 3대 신조에 사도신조의 내용들이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후일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도신조를 우리 믿음에 대한 합당한 고백이라 여겨 그대로 받아들였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도신조의 전문(Apostles' Creed)-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사도신조 중 오늘날 논란이 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①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하는 부분에 대한 해석: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논란이 안되도록 생략되었지만 8세기경에 확정된 원문과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의 사도신조에는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4-5세기까지의 사도신조에는 이 부분이 보이지 않으므로 빼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세계교회가 고백해 온 것을 임의로 빼는 것에 대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강하다.
 

이 부분의 해석에 있어 혹자들은 예수님이 지옥에 갈 사람들과 똑같이 지옥에 내려가셔서 고통을 겪으셨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또 한편 이 귀절과 벧전3:18-19, 4:6을 근거로 옥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고 비약하기도 한다. 그래서 로마가톨릭교회는 그 귀절을 연옥설의 근거로 삼는다.
 

‘음부에 내려가셨다가’에 대한 정통교회의 의견은 여러가지다. 칼빈은 상징적으로 이해하며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영적인 표현으로 이해한다. 곧 십자가는 육체의 고통이며, 음부 강하는 영적인 고통의 표현이다. 성공회는 이 부분을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로 번역한다. 루터파는 사탄의 세력에 대해 당신의 승리의 선언을 위해 음부에 내려가셨다고 이해한다. 미국 감리교회는 ‘음부 강하’ 부분을 생략했던 웨슬리의 영향으로 한참동안 그 부분을 삭제해 왔다가 최근 에큐메니칼 운동에 보조를 맞춘다는 이유로 다시 넣고 있다. 한국 사도신조에서 음부 강하가 생략된 이유는 1908년 합동 찬송가를 출간할 때 함께 했던 교단들이 미국감리교단에 의해 세워진 한국 감리교회의 견해를 수용한 때문이라고 한다.
 

정통교회는 음부 강하와 관련한 난해구인 벧전3:18-19을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에 대한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이해한다. 원어의 의미도 ‘선포’이지 ‘복음전파’가 아니다. 벧전 4:6도 복음을 믿다가 죽은 성도에 해당하는 말로 이해한다.
 

②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가 로마가톨릭교회가 아니냐는 해석: Catholic이란 말은 ‘보편적인’, ‘우주적인’이란 의미로서 ‘우주적 보편 교회’ 곧 사도적 정통교회를 지칭함이지 로마가톨릭만을 특별히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자기네 명칭에 Catholic을 가져다 붙인 결과일 뿐이다.
 

③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란 부분이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성인 숭배의 의미가 아닌가 하는 해석: 로마가톨릭의 성인 숭배 사상은 사도신경이 최종 형성된 724년경 이후에 정식으로 의결된 것이므로 사도신경에서의 부분은 단지 교회 내에 있어서의 성도 간의 교제를 의미한다고 이해함이 타당하다. 죽은 성인들에게 기도함에 대한 공식 인정은 787년 제7차 두번째 니케아회의부터였으며, 죽은 신앙의 위인들을 성인(Saint)으로 선언한 것은 995년 요한15세(Joannes XV, 985-996재위) 교황 때부터였다.
 

우리 정통개신교회는 위에서 살펴본 세계 4대 종교회의의 결정들(3대신조와 이신칭의 사상)에 사도신조를 더하여 받아들인다.
 

여기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교회가 세상 정부로부터 공인을 받은 313년 이후 451년까지 약 140여년간의 기간 동안에 가장 핵심적인 교리들이 정리되어 채택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중요한 교리들이 체계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내용들이 성경적이며 또한 널리 받아들여질 만큼 합당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 다행한 것은 교회가 중세를 거치며 세속화되고 분열, 타락하기 전에 주요교리에 대한 정리 작업들이 대부분 마무리되었으므로 그 순수성 또한 입증된다는 사실이다.
 

신조를 논함에 있어서 아타나시우스신조(The Athanasian Creed)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이 신조는 니케아 회의 당시의 교부 아타나시우스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7세기 경의 동명이인(同名異人)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5세기경의 다른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신조의 주된 내용은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인데 현재 루터파와 장로교단들에서 합당하다고 여겨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4대신조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송요한 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 많이 본 기사
“정명석의 범행에 대한 구체적 사
자유통일당, 22대 총선에도 '3
김노아, “오늘날 기독교의 구원관
JMS 신도들, 정명석 교주 재판
동국대학 캠퍼스, 신천지 포교로
신천지인의 스토킹 행위에 대한 법
JMS 교주 정명석, 여신도 추행
   <교회와신앙>소개걸어온길만드는 사람들광고안내후원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 : 교회와신앙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아01814  /  등록일자 2011년 10월 28일 / 발행일 2011년 10월 28일
이용약관 / 발행인 : 최삼경 /  편집인 : 최삼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봉식
(12125)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도제원로 32-2  /  Tel 02-747-1117 Fax 02-747-7590
E-mail : webmaster@amennews.com
Copyright 2005 교회와신앙.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