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물으셨다

네 꿈이 무엇이지

녜, 시인이 되는 것이에요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일은

저 말고도 천군이나 천사가 할 수 있잖아요

이제 그만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예수님의 눈망울에 고인 별빛을 보고

총총 뒷걸음치며 기도처를 빠져 나왔다
 

찬양은 감사를 뛰어넘어 인간이 구원의 비전을 통해 더 넓은 곳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시편>에서 찬양은 감사보다 좀 더 넓은 마당을 갖고 있다.

<시편>의 편재

성경에 수록된 다른 책은 장ㆍ절로 구분하지만, <시편>은 편ㆍ절로 구분한다. 한자어에서 ‘편(篇)’은 시문을 세는 단위로, <시편>은 ‘150편의 시를 수록한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한자 ‘편’에는 다른 의미가 더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시편>은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형태다. 처음에는 이런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었지만, 누군가 시를 모아 정리하면서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시를 이어붙여서 편집한 것도 있다. 우리는 <시편>을 읽으면서 이런 부분이 갖는 의도를 충분히 살펴야 한다.
 

<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테힐림(찬양집)’이다. 언어유희 같지만, 기도문이란 뜻의 ‘테필림’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봤을 때 ‘바람 부는 인생길을 기도하면서 갔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을 모은’ 게 <시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찬양은 기도 응답을 받았거나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알게 됐을 때 하게 되는, 감사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적인 반응이다. 그래서 감사와 찬양을 분리하기 힘들지만, 이 둘을 구별할 수는 있다.
 

찬양은 감사를 뛰어넘어 인간이 구원의 비전을 통해 더 넓은 곳으로 나간 것이다. 그래서 <시편>에서 찬양은 감사보다 좀 더 넓은 마당을 갖고 있다. 비슷한 예로 신약성경에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뒷부분인 <19:1ㆍ3ㆍ4ㆍ6>에 ‘할렐루야’를 썼고, 맨 마지막인 <22:21>에 ‘아멘’을 썼다. 이를 <시편>의 시각으로 보면, 요한이 심판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회복으로 나타날 영광을 노래한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시편에서 말한 신앙

<시편>에서 말한 인간에 관한 생각은 동양과 다르다. 동양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가는 게 인간이라고 하지만, <시편>은 인간이 하늘나라에서 시작해서 해 아래 세상인 흙으로 왔다가,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하늘나라를 찾아가는 나그네로 사는 게 이 땅에서의 삶이기에, 크리스천은 하늘나라를 향하는 순례자로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해 아래 세상을 걸어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시편>은 크리스천에게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찬양하면서, 이 땅의 삶을 채워가라고 한다.
 

<시편>에 나온 시인들의 기도는 언제나 찬양으로 끝을 맺는다. 시인들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이라면 아무리 현재가 고달프고 힘들어도 궁극적으로 승리가 예정된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걸 보고, 파고가 높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 위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배가 도착할 항구를 생각하며, 탄식과 절규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을 노래했다.
 

그리고 <시편> 편집자는 이걸 반영해 이 책에 수록한 다섯 권의 책 끝부분마다 찬양과 송영을 배치했다. 그래서 제1권의 끝부분인 <41:13>, 제2권의 끝부분인 <72:18∼19>, 제3권의 끝부분인 <89:52>에는 ‘아멘, 아멘’이 나오고, 제4권의 끝부분인 <106:48>에는 ‘아멘, 할렐루야’, 제5권의 끝부분인 <150장>에는 ‘할렐루야’가 나온다.
 

<시편>은 하늘나라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담은 예언서와 달리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인간의 목소리가 많이 담겨 있다. 예언서에도 선지자를 포함한 인간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지만, 이걸 담은 비중을 예언서와 비교하면 <시편>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지상에서 인간이 주님께 올린 찬양과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는 본회퍼가 <시편>을 무시한 게 아니라, 이 책의 본질이 뭔지 크리스천에게 물은 것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기도가 시편
 

<시편>을 보면,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불행, 간구와 감사, 찬송과 찬양을 하늘나라의 하나님께 드렸다. 그 후 이걸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련(精鍊)해서 글로 기록했고, 이를 구약성경에 수록해서 ‘권위를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개인과 공동체가 토설(吐說)했던 기록인 <시편>을 성령님이 정경으로 인준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예가 <요한계시록>에도 나온다.
 

<요한계시록>에는 땅에 사는 성도의 기도가 하늘나라에 전달된 후, 이에 대한 반향(反響)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구원 섭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는 <시편>을 읽으면서 본회퍼가 던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걸 찾아내야 주일예배 때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메시지가 돼 세상에 퍼지고 우리 후손에게 이어질 것이다.
 

히브리 지혜시의 특징

<1편>은 <119편>과 짝을 이루는 지혜시로 <1∼3절, 4∼5절, 6절>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시편>의 표제로 나온 시여서 많은 사람이 알고,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하다. <시편>에 수록된 시가 150편이지만, <1편>이 이 책의 제목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는 건 대부분 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시 안으로 깊게 들어가면 시가 주는 전체적인 교훈이 우리의 일상과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용이 짧아서 좋다고 암송하면서도, 시가 주는 교훈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자고 권면하면 난감해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런 반응은 <1편>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성경에 수록된 모든 말씀이 입에서는 달콤하지만, 그걸 실천해야 하는 배에서는 쓰다(계 10:9).
 

성경에 수록된 책은 대개 첫 문장이 그 책의 주제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은 <창세기 1:1>에 나온 히브리어 태초(레쉬트)를 헬라어로 번역한 시작(아르케)이 책의 제목이다. 그러나 이런 어감을 우리말로 번역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로 <마가복음 1:1>을 번역했다.
 

그렇지만 헬라어의 어감으로 보면 책의 제목이 ‘태초’나 ‘시작’이다. 이 같은 고대의 책에 관한 이해로 보면 <1편>은 ‘복이 있구나, 그 사람’, ‘행복하여라, 그 사람(아쉐레이 하이쉬)’이 시의 제목이다. 그리고 제목이 가진 의미를 고려하면 <1편>은 복의 실체가 율법(토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선언이다.
 

강복, 축복, 행복
 

히브리어로 보면 시의 시작을 ‘아쉐레이’로 한 게 특이한데, 우리말에서도 강복, 축복, 행복은 다르다. 강복(降福)은 무언가를 받거나 소유한다는 뜻이고 축복(祝福)은 이걸 빌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행복(幸福)은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에서도 강복, 축복에 해당하는 ‘바라크’가 따로 있다. 그런데 시인은 ‘바라크’가 아니라 ‘아쉐레이’를 첫 문장에 감탄사로 썼다. ‘아쉐레이’는 구약성경에 45번 나오는데, 이중 <시편>에만 26번 나온다. 구약성경의 용례 중 절반이 넘는 횟수를 <시편>에서 사용했다. 이런 면에서 <시편>이 말한 복이 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시편> 외에도 구약성경에서는 ‘아쉐레이’를 지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장을 기술할 때 사용했다. 그런데 지혜문학으로 대변되는 <잠언>에서 지혜는 성령님의 선물이면서, 혼란스럽고 방황하기 쉬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올바른 삶의 방향과 길을 찾는 인간의 능력이다.
 

따라서 <1편>에서 말한 행복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행복은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서 올바른 길인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가는 신앙의 노정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시인이 시의 시작을 이 단어로 했고, <시편>의 편집자가 이 책의 표제를 <1편>으로 한 것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시를 읽는 이유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시를 읽는 이유는 산문이 주지 못하는, 짧은 글귀 속에 마음을 펑 뚫리게 하는 시원함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에 나온 산문이 주는 맛도 있다. 교리적인 설명이나 복음이 가진 특징을 말할 때는 시보다 산문이 더 좋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시가 더 낫다. 하나님이 구구절절한 인간의 설명을 들으셔야만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간의 뜨거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성경기자들은 시를 사용했다. 시와 산문이 서로 다른 면이 있기에 성경기자들은 이 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구원을 향해 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레위기ㆍ신명기>가 아닌 <1편>이 율법을 찬양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마가복음 1:1>의 선언이 갖는 의미와 비슷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는 복음이 말한 세계로 들어갈 수 없듯이, 하나님이 주신 교훈을 모르고서는 <시편>이 말한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시편>에 나타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이게 표방하는 가치체계에 헌신해야 한다.
 

물론 <시편>이 전체적으로 율법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1편>에서 율법이 가장 복된 소식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시편>이 그린 세계가 모세오경과 같은 궤적을 그린다고 선언한다. <시편> 전체의 구성에서 <1편>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둔 채 이 책의 특징을 말하고, <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예언적 상황을 토대로 이 책을 읽으라고 한다.
 

* ‘시편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일련번호 구성은 다음과 같다. [1-1]는 <시편 1편> 첫 번째, [2-1]은 <시편 2편> 첫 번째 이야기다. 따라서 다음 회에 출고할 [1-2]는 <시편 1편> 두 번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