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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추수감사절에
박시경 칼럼
2023년 11월 22일 (수) 08:31:16 박시경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박시경 교수/그레이스 신학교

   
박시경 교수

2023년 금년에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 찾아왔다. 온통 크고 작은 전쟁과 지역분쟁, 재난과 온갖 질병과 정치적 잡음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감사의 조건은 넘치고 있다는 메세지를 우리에게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불행이나 고통이나 절망 중에서도 감사의 끈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교훈은 기독교 추수감사절, 특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사의 조건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감사는 인간의 조건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높고 숭고한 섭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때문에 감사합니다”가 아닌 “....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가 우리의 감사의 모습이어야 한다.
 

1. 17세기 (1600년대)의 영국

가톨릭 교회 세력이 유럽을 1000년 동안 통치한 중세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다. 그리스도의 직계 제자, 베드로를 제1대 로마 교황으로, 그 다음 모든 교황들을 베드로의 대를 이은 교황으로 설정한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직계 제자라는 막강한 영적 권위 남용을 극대화했다. 저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외국 용병들을 (주로 스위스 출신) 고용하여 유럽 각국의 전쟁에 개입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 가톨릭 각 교구별로 추기경, 주교 임명권에는 거액의 뇌물이 교황청으로 흘러들어갔고, 유럽 각국의 왕들은 교황의 재가 없이는 결혼도, 제위식도 거행할 수 없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로마 교황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국교 (Church of England)는 자체 종교개혁의 일환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신앙적인 동기가 아닌 정치적 동기 (헨리 8세의 비윤리적인 결혼을 승인하지 않는 교황청에 반발하여 1530년 로마 가톨릭을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Anglican Church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로 비단 로마 가톨릭 노선을 탈퇴하긴 했으나 신학적 입장이나 예배의식에서 탈퇴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대부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여기서 Anglican Church, 성공회, Church of England, 영국국교는 같은 교회의 다른 명칭들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1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가톨릭 교회처럼 정치화 된 영국국교 내부에서 순수한 성경적인 신앙을 갈망하는 운동이 태동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이때만큼 최악의 혼돈은 일찍이 영국 역사상 없었다. 연속되는 내전 속에서 왕당파 (왕권을 지지하는 세력)와 의회파 (시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갈등은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이 와중에 세력을 장악한 의회파는 영국왕 찰스 1세를 반역죄로 처형하기에 이르렀고, 왕위 계승자인 그의 아들 제임스와 왕실 관계자들은 이미 프랑스로 망명가 있었다.
 

그리고 의회파들이 권력을 쟁취하긴 했지만, 그 안에서도 파벌 간의 갈등, 무엇보다 의회파의 독재적인 지도자 올리버 크롬웰의 권력남용 또한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영국은 왕실이 세력을 잃어 폐지되었고 정치적 경험이 전무한 시민의 대표인 의회가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 청교도들을 비롯한 일반 영국시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었다, 물론 후일에 왕당파가 세력을 재집권하여 영국 왕실은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청교도들은 의회파의 일원들이었다.
 

이때 영국의 청교도들은 극도의 금욕생활을 강조하며, 매우 검소한 옷차림과 음주와 오락을 죄악시 하는 것은 물론, 매주 금요일에는 육식을 비롯해서, 유제품(Dairy Products)마저도 금지할 만큼 철저한 금욕생활을 모토로 하고 있었다. 청교도 지도자들 Richard Baxter, Thomas Jackson, Samuel Clarke 같은 이들은 독실한 칼빈주의 신학의 신봉자들이었다. 저들은 칼빈주의에 기반한 기독교 구원론에 대해 영국내 성공회 신학자들과 공개토론을 통해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청교도들은 그들의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저들의 입지가 강화될수록 국교인 성공회 (Anglican Church)로부터의 여러 가지 사회적 제약과 탄압은 가중되고 있었고, 의회파 안에서 그 소수파였던 청교도들은 갈등 속에 휘말려 있었다.
 

2. 왜 청교도들은 영국을 떠나야 했나?

   

영국의 청교도 집단 내에서도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같은 집단 내에서도 다소 과격한 분리주의자들 (Separatists)인 분리파로 인식되어 그들의 영국 내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의회파가 주도하는 정부로 부터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고, 신체적 박해와 사회적 고립이 불가피했다. 영국 국교인 성공회나 의회파가 개혁되리라는 희망은 점점 사라진 데다 자신들의 지도자인 Henry Borrow와 John Greenwood가 체포, 처형되면서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었다.
 

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영국왕 제임스 1세가 해외 이주 금지법을 제정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일단의 청교도들은 영국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화란(네델란드)의 라이덴(Leiden)에 1년간 머물다가 신대륙 미국으로 떠날 결정을 내렸다.
 

이런 이유로 초기 New York의 이름은 저들이 떠나온 화란의 수도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뉴암스테르담(New Amsterdam)으로 정했고, 그 당시 뉴욕의 총독은 네델란드 출신의 Stuyvesant이었는데 현재에도 뉴욕에는 Stuyvensant High School이 100년 넘은 명문 고등학교로 건재하고 있다(화란어 발음이 어려운 뉴요커들은 이 학교 이름 Stuyvesant를 줄여 그냥 Stuy라고 부르고 있다).
 

3. 청교도 가족 102명

저들은 화란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 남아있던 다른 청교도 가족들을 싣고 작은 목선 May Flower호(돛을 단 범선)는 1620년 7월 22일 길이 30미터 (100 ft), 폭 8미터 (25 ft)가 거친 풍랑으로 악명높은 대서양 3천마일 (4800킬로미터)을 항해해야 하는데, 그 배는 망망대해 대서양 한복판에서는 그야말로 나뭇잎 하나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작은 목선에서 선실과 창고, 식당, 기타 장비를 보관하는 장소를 제하면 실제 선실은 50명도 수용하기 어려웠다. 선실 침대라고 해야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나무상자의 길이는 1미터 이하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들은 목숨을 건 위험한 항해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여기에다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갑판은 지붕으로 배를 덮었는데, 이로인해 통풍이 어렵고 선실에서 음식을 만들 때 발생한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기관지 관련 질병이 만연했다.
 

험한 음식, 그나마 그것도 양이 부족해서 아껴 먹어야 할 정도였으니 4개월간 거친 항해를 하는 동안 청교도들은 지칠대로 지쳤고, 폐렴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었다. 사실 청교도들은 그 당시 영국 사회에서 지적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고, 칼빈주의로 교육받고 있어서 논리적이며 현실 세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론에 대해서는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변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4개월간 대서양의 거친 풍랑과 싸우면서 간신히 신대륙에 도착한 것은 1620년 11월 11일 이었다. 저들의 원래 계획은 버지니아주에 정착하는 것이었지만 극심한 풍랑으로 인해 메사추세츠주 Cape Cod에 비상 정박해 정착지로 정했다.
 

그렇게 극한 항해를 4개월 계속하는 동안, 영국을 떠날때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102명 이었던 청교도들은 신대륙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52명만 신대륙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머지 50명은 항해 도중 대서양 바다 위에서 죽어갔고, 차디찬 바닷물 위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
 

4. 신대륙에서 첫 겨울을 지난 청교도들

   
@pixabay.com/ko/photos/추수감사절-떨어지다-호박-1674774/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첫 겨울은 잔인할만큼 혹독하게 추웠다. 그리고 도착하면서 영양실조에 걸린 영국의 청교도들이 첫 겨울을 맞이한 저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척박한 토양, 황무지 같은 경작되지 않는 토지…저들에게 호의적인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Plymouth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난생처음으로 보게 된 미국 인디언들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놀란 것은 Nauset 부족의 인디언들도 마찬가지였다. 창백한 피부에 파란 눈, 노란 머리의 키가 장대한 백인들을 보기에는 처음이었다. 처음 몇달 동안 저들을 침략자로 인식한 인디언들은 영국 출신의 청교도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지만, 비록 말은 안통하고 문화도 달랐지만 청교도들이 자신들에 대해 적대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저들에게 다소 호의를 베풀었다.

영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옥수수 재배법, 역시 영국에서는 본 적이 없는 칠면조 키우는 법 등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 바로 미국이 인디언들이었다. 이렇게 언 땅을 개간한 청교도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밀을 심고, 옥수수와 기타 간단한 작물들을 심어 정착하게 되었다. 통나무로 집을 짓고, 통나무로 작은 교회를 세워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종교의 핍박을 피해 아무것도 없는 신대륙까지 온 청교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삶에서 최우선적인 일이었다. 어린이들을 비롯한 노약자 가족들을 잃은 청교도들은 그해 첫 겨울을 지나면서 여러 번 장례식을 치루어야 할 정도로 플리머스 (Plymouth)에서의 겨울나기는 힘겨웠다. 고통스러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되자 저들은 인디언들로 부터 배워 옥수수, 콩, 밀 등을 심고 미국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채소의 모종을 인디언들로부터 배운 대로 대배해 목숨을 연명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숲에서 나무를 베어 통나무 집을 짓고, 통나무 교회를 짓고 저들 방식대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렸을때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가을 얼마 되지 않는 빈약한 수확을 거둔 청교도들은 이웃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초기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호박(pumkin), 옥수수 이런 식물들이 아직도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 정찬 테이블에 오르는 것은 저들의 조상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위한 성경교육은 철저하게 가장의 책임이라는 것도 영국에서의 저들의 전통을 그대로 지켜온 것이다.

빈주의에 입각한 "직업의 소명론"은 청교도들의 고된 삶을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여기게 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직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명에 입각한 것이라는 직업의 소명의식은 후일에 미국 자본주의의 기틀이 되었다. 그리고 1789년 10월 3일 죠지 워싱턴 대통령은 그해 11월 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미국의 공식적인 국경일로 선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 미국 건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청교도들

우리가 배운 대로, 미국은 청교도들을 비롯한 유럽 이민들에 의해 나라의 기초가 세워졌다. 그중에서도 최초의 종교난민이었던 청교도들의 영향력은 초기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에 의해 미합중국의 헌법 기초가 작성되었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국민들의 평등”을 건국의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 저들 자신이 영국에서 종교적 이유로 차별받고 불이익을 겪은 후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위해 대서양을 건너왔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유럽의 다른 소수의 차별받은 종교집단들을 위한 종교난민의 길을 열어준 셈이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퀘이커 교도, 독일과 스위스의 아미쉬, 메노나이트, 후테라이트, 모라비안…. 저들은 모두 미국으로 건너와 300여년 동안 저들의 신앙을 고수하면서 현재까지 미국에서 집단을 이루며 살고 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에 대해서는 엄격했고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철저했다. 사회의 질서, 정치적 공정함,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했고, 무엇보다 성경의 교육의 출발점은 가정이라는 인식이 매우 확고했다. 칼빈주의에 입각한 이런 기독교 정신은 미국 건국에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교도 목회자 출신의 John Havard가 현재의 하바드 대학교를 설립한것이 1636년 이었으므로, 1620년에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이 황무지 신대륙에서 16년 만에 목회자 양성을 위한 대학을 설립했는데, 그것이 387년의 역사를 가진 오늘날의 세계 최고의 명문 하바드 대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3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명문대학들은 초기에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대학으로 출발한 것이 대부분의 대학들이었다.
 

맺는말

오늘날 우리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반 현상들을 목도하면서 400년 전에 이 땅에 첫발을 디딘 청교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국을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이교도 국가 라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 정도로 현재 미국은 초기 건국의 기독교 정신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폭력과 마약, 극도로 타락한 퇴폐적인 문화, 깨어진 가정들과 방황하는 청소년들, 물질의 풍요 속에서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수많은 사람, 표류하는 미국 정치,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교회들…. First Pilgrims(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 이후 400년이 지난 오늘 날의 미국의 모습이다.
 

병든 미국에서 우리는 2023년의 추수감사절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도 우리는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먼지나 티끌같이 하찮은 죄인들인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원성에 연결되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6)”라는 불변의 약속을 받은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상황을 초월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인간적인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최악의 조건에서 드리는 감사, 그 믿음, 하나님에 대한 그 신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금년 추수감사절에 다시 한번 더 묵상하자.
 

************

참고: 청교도에 관한 사실은 비단 종교적, 정치적 영역에서만 머물지 않고 예술적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이탈리아의 낭만파 작곡가인 빈센조 벨리니 (Vincenzo Bellini)는 청교도 (I Puritani)라는 제목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페라를 작곡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갈등에서 의회파에 속한 청교도인 순결한 여주인공 엘비라 (Elvira)는 왕당파에 속한 사랑하는 연인, 호남형 기사 아르투로 (Arturo)가 전쟁에서 전사한 소식을 들은 후, 충격을 받아 거의 실성한 상태에서 부른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 Qui la voce sua soave”는 아직도 전세계의 많은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youtube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들이 부른 그 노래를 아직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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