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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필요한 시대
장경애 사모 칼럼
2023년 10월 05일 (목) 13:02:02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지구촌에 등장하여 온 인류를 괴롭히던 코로나19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나 아직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런 실정 속에 지구촌의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대소의 차이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 천만다행으로 점점 약화 되고 그 증상도 미비하니 감사할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불안으로부터 시작된 두려움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에 의하면 생후 6개월이 되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태어날 때 울면서 태어나는 것은 오직 자기만을 위하여 제공된 편안한 엄마의 배 속에 있다가 이 넓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 불안해서 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은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지나고 보니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종류와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건강하고 경제적 능력이 있고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두려움은 삶에 의욕과 용기를 빼앗아 감으로 우리를 실패한 인생으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pexels.com/ko-kr

나는 유아기 시절에 번개와 천둥소리를 두려워했다. 비가 오면 천둥과 번개가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 비가 오는 것조차 싫었다. 아주 어릴 때 번갯불이 번쩍이면 그 번개가 마치 나를 내려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죄가 많은 사람이 ‘벼락 맞는다’라는 말을 많이 들은 터라 번갯불이 번쩍일 때면 나는 내가 잘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방 한쪽 구석에 앉아서 용서를 구했다. 당시의 죄는 대체로 엄마 말씀 잘 안 들은 죄, 동생들을 잘 데리고 놀지 않은 죄, 숙제 먼저 안 하고 놀기를 먼저 한 죄까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나의 마음은 매우 심각했다. 순진한 어린 시절에 생긴 두려움인지 모르겠으나 지금도 번갯불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은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있었던 두려움은 성장하면서 죄의식으로 남기 시작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의 부족이 두려움을 낳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할라치면 예수님이 함께 하는데 왜 그러느냐는 책망의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 책망의 말씀은 나 자신을 정죄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무섭고 두려운 것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님을 나 자신도 잘 알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엄습할 때는 그저 주님께 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주님만을 의지하고 함께해 주실 것을 간구했다. 그리고 나면 든든한 마음이 생기며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기도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두려움은 큰 문제다. 두려움에는 시시한 두려움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큰 두려움도 있다. 그 두려움은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 하게 한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극복되지 못하면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시험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이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것과 같다.

두려움에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절당함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등 갖가지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두려움, 잘못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용기와 의욕을 잃게 함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그렇다면 두려움이 왜 생길까? 병을 두려워하고 가난을 두려워하고 폭행을 두려워하지만, 그 배후에는 죽음이 깔려있기 때문에 결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려움의 끝은 죽음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생은 평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적으로 안고 살아간다”라고 지적했다. 또 어거스틴의 참회록에 보면 친구가 죽은 뒤에 이런 고백을 했다. “착잡한 생각이 나를 둘러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무겁게 나를 억누르고 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부정적이고 악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며 생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삶에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여 지키고 유지하려는 강한 마음이 생겨 도리어 유익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1등만 하던 아이가 1등을 뺏길까 하는 두려움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면 그 두려움은 도리어 유익이 되는 것과 같다. 나 같은 경우 번갯불이 두려웠던 것은 죄가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느꼈기에 조금이라도 엄마 말씀을 잘 들으려고 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처럼 살아가는데 유익한 두려움도 있다. 두려움은 우리로 조심하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죄가 되는 두려움은 없어야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데 가져야 하는 두려움은 반드시 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에서 오는 두려움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 하나님께 순종도 하게 되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 우리는 겸손해진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겸손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교만한 사람이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이 잠재의식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람의 생활을 보면 막무가내가 되어 망나니 칼 휘두르듯 하기도 한다. 두려움이 없기에 위험한 짓도 쉽게 할 수 있다. 요즘 발생하는 범죄를 보면 두려움이 없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들이 많다. 어찌보면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도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두려움이 있기에 그 두려움을 없애 줄 주님을 찾고 더 의지하게 되고 또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자기를 돌아보며 죄악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한다.

세상이 두렵다. 내 힘으로는, 내 능력과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안심할 수 있다. 50대 그룹 총수의 70%가 종교인이라고 한다. 이는 사업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갖는 것일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사41:10)”의 말씀을 의지하면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든든함으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힘과 능력을 주셨다. 그렇기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뇌면 두려운 마음이 점차 사라지게 되고 도리어 용기가 생기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마치 찬송가의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의 가사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면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있을 때 느끼는 안락함보다 더 든든해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성도의 필수다. 그 두려움은 경외심이니까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 다음에는 주님을 더 의지할 것을 전제한다. 머리털까지 세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세상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두려움 없는 행위는 신뢰와 순종이지만 하나님마저 없이 하는 행위는 교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성도의 필수품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있다면 세상의 헛된 두려움은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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