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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관계의 사제지간
장경애 사모 컬럼
2023년 08월 03일 (목) 15:16:21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제자를 양육하는 교사의 큰 보람은 제자가 훗날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찾아왔을 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는 비록 짧은 기간 동안 교사 생활을 했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깊이 공감한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스승과 제자, 또는 학교 동문을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겨 같이 공부하던 소식이 끊긴 친구도 찾고, 보고팠던 선생님도 찾는 것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에 나도 그 사이트를 통해 잊고 지내던 친구를 찾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사이트에서 나를 찾는 한 여인이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의 중학교 때의 선생님을 찾는 데 그 찾으려는 선생님의 이름이 바로 내 이름 석 자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짧은 기간의 교사 생활이라 나를 찾는 제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더 놀랐던 것 같다. 그런데 찾는 사람의 이름을 보니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원래 자타가 공인할 만큼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는 나였기에 참으로 의아했다. 혹시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닌가 하여 학교 이름, 과목 등을 자세히 보았다. 분명 나를 찾는 것이었다. 잠시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고 그 제자와 연결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중, 비로소 그 제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 제자는 내가 수업을 담당하는 반의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 한 반의 담임을 맡고, 수업은 중학교 2학년과 1학년의 몇 개 반에서 맡아 했다. 그 제자는 당시 3학년이었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반 학생을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결근한 선생님을 대신하여 내가 자기 반에 들어가서 자습을 시킨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학업과는 직접 관계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그 말 중에 자신에게 너무도 소중한 내용이 있어 가슴 깊이 새겨들었다고 했다. 훗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또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때 내가 해 준말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고 살면서 이런 귀한 말을 해 주신 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며 사실까를 생각하다가 마침 선생님을 찾는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나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해 주었는지 들어보고는 교사들은 한마디 말과 일거수일투족이 참으로 중요함을 새삼스레 깨닫기도 했다.

   
 

내가 그 제자의 담임선생도 아니었는데 그렇게도 나의 말 한마디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너무도 고마웠다. 나는 이렇게 멋진 제자가 있음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희한하고 감격스러운 제자답지 않은 또 한 명의 제자가 등장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의 한 남자중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근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다른 중학교에 정교사로 가게 되어 그야말로 임시 교사를 내려놓고 내가 근무해야 할 학교로 떠났다. 위의 제자는 그나마 내가 정교사로 근무할 때 학생이지만 지금 말하려 하는 이 사람(제자라는 말을 쓰는 것이 격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사람이라고 쓴다)은 그야말로 짧은 기간 동안 있었던 학교의 학생이었다는 점이 의아하고, 제자라고 하기에 불편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위의 제자처럼 나를 생각하고 찾은 것이 아니다. 이 만남은 참으로 확률적으로 따지면 결코 있을 수 없는 거의 불가능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가리켜 제자라는 말을 절대로 쓸 수 없게 생각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정말 저런 분을 내가 나의 제자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쁠까를 생각하니 은근 기쁘고 행복했다.

이 사람은 영국의 한 손꼽히는 대학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고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며 목사다. 내가 이 교수를 알게 된 것은 남편 목사를 통해서이다. 미국의 한 단체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남편 목사가 강사로 초청되어 간 적이 있다. 남편을 초청한 그 단체의 임원 중에 한 사람이 이 교수였다. 이 세미나에 남편 혼자 도미하여 강의를 잘 마치고 귀국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은 그 교수와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 어느 사람보다 소통이 잘 되어 친밀감을 느꼈다고 하였다. 그 후, 이 교수와 남편은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왔다. 그 교수가 한국에 잠시 나왔을 때 남편과 함께 만나기도 했으나 나는 그냥 남편 후배 교수 목사로만 알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과 이 교수는 더욱 가까워져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교수는 남편의 목회 사역 외에, 하는 이단 척결 사역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주시하며 남편의 노고와 힘듦을 너무도 공감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한국교회가 남편 목사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힘을 주어 여러 번 강조하여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 후, 미국의 한 교회가 남편을 부흥회 강사로 초청했는데 나도 동행했다. 부흥 집회를 마치고 나서 교수의 강권적인 요청으로 며칠 동안을 그 교수와 함께 미국의 유명한 공원에 머무르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이 교수는 우리 부부에게 물심양면으로 얼마나 성심성의껏 대하는지 민망을 넘어 불편하기조차 했다. 조금도 가식이 있는 모습은 없고 마치 자신이 말한 한국교회가 내 남편 목사에게 지고 있는 빚을 자기 혼자서 다 갚으려는 듯한 자세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임시 교사로 잠시 머물렀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자신이 그 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고 마치, 당시 내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기라도 하는 듯 말을 했다. 처음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며 대화하다 보니 정말인 듯했다.

그때부터 이 교수는 나를 자신을 길러 준 스승이나 되는 듯 민망할 정도로 깍듯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공식 석상에서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하는데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번도 내가 하는 수업을 들은 적도 없으면서 단지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있었던 것, 그것도 짧은 기간 동안 한 울타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스승과 제자라고 하니 그렇게 하기엔 어쩐지 어색하고 억지 춘향 격인 것만 같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마음을 울려 줄 이 교수와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내 남편 목사는 2021년 말에 목회 37년 여정의 종지부를 찍었다. 은퇴하기까지에는 시간이 있었으나 이 교수는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21년 5월에 남편 최 목사의 목회 여정을 책으로 출판해 주었다. 바로 ‘은퇴 문집 40’이라는 책이다. 남편 최 목사는 그런 책은 자신이 주님 앞에 불려 갈 때나 내야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으나 그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용이라도 보태겠다고 하자 이미 모금이 끝났다는 단호한 말로 마무리하고는 우리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책을 출판하고 말았다.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보통 은퇴 기념 문집은 주로 목사들의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상례이건만 이 책은 목사 아내인 나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많이 민망했으나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평생 뒷전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움츠러든 고개가 저절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교수님은 남편 목사에게는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고마운 후배 목사지만 나에게는 삼척동자도 웃을 제자다. 나 같은 사람을 스승이라 하니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손사래를 짓지만, 교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선생님이라 칭해 준다. 이런 일이 계속되니 어느덧 내가 정말 스승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존감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게 나를 스승으로 만들어 준 교수님은 우리 부부에게 참으로 소중한 목사님이시다. 어떤 말로도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최근에 알게 기막힌 사실이 또 있다. 이 교수의 사모님이 내 고등학교 11년 후배였다. 이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또 한 가지는 사모님의 이름이 성씨만 다르고 이름이 나와 똑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우연치고는 너무도 끼여 맞춘 것만 같다.

이제 격에 맞지 않는 제자의 이름을 밝히려 한다. 최은수 교수 목사님이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후학들에게 기독 교회사를 강의하고, 연구하며 집필하고 있다. 요즘은 한국 초대 교회사에서 관망할 수 없는 의료선교사에 관해 집중적인 탐구와 함께 기독교 초창기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나의 바람은 제자(?) 최 교수가 지금처럼 건강하여 펼치고자 계획한 모든 것들을 잘 이루어내었으면 한다. 한국교회에 유익을 주고, 주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한 몫을 잘 담당하리라 믿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고 갚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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