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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모델, 세례 요한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10)
2023년 07월 14일 (금) 14:00:06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마 3:1-10

선교사로서 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지향점은 분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을
들어내는 것이다.

마태는 1-2장에서 복음서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다만 누가가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대해 적은 부분을 그의 복음서에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1)  마태가 예수님의 성장 과정에 관하여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프란스(R. France)는 ‘의도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메시야의 공적 사역, 죽음, 부활이라는 그가 다루고 싶은 주제에 서둘러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2) 따라서 마태는 이 땅에 구원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이 실천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선교라는 큰 주제를 3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께서 실천하신 하나님 나라의 선교라는 주제를 다루기 전에 그 준비 단계로서 먼저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3)
 

세례 요한의 등장

마태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 때’는 뭔가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 때’라는 시간에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에
새롭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태는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였다”라는 기록과 함께 3장을 시작하고 있다(1).4) 이 구절에는 ‘그 때’(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ἐκείναις)라는 시간적인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 ‘그 때’라는 표현에 대해 힐(D. Hill)은 “단지 연결하는 기능 이상의 의미가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특히 이 표현이 “구약에서는 단지 시간적인 흐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떤 중요한 시간에 대해 주의를 끄는 데 사용되고 있으며(창 38:1, 출 2:11, 단 10:2) ‘그 중요한 날에’ 혹은 ‘그 중요한 시간에’라는 표현과 같은 뜻이다”라고 하였다.5) 이러한 관점에서 ‘그 때’라는 표현에 대해 단지 특정되지 않은 어떤 시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

‘그 때’(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ἐκείναις)라는 표현에는 ‘그’(ἐκεῖνος)라는 지시대명사가 사용되고 있다.7) 이처럼 지시대명사가 ‘때’ 혹은 ‘날’을 뜻하는 단어 ‘헤메라’(ἡμέρα)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 어떤 중요한 시간이 다가온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리스(L. Morris)는 ‘그 때’라는 시간에 대해 마태가 “아마도 ‘그 결정적인 때’ 혹은 ‘그 중요한 때’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8) 해그너(D. Hagner)는 ‘그 때’라는 시간적인 표현에 대해 구약에서 언급되고 있는 ‘종말론적 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9) 이와는 반대로 건드리(R. Gundry)는 ‘그 때’라는 시간에 대해 “종말론적 시간을 내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그 때’라는 시간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거주하던 시간을 언급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10)

그러나 ‘그 때’라는 시간적인 표현에 대해 단지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거주하는 때’를 뜻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그 때’라는 표현을 언급하므로 마태는 뭔가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때’ 세례 요한이라는 특정한 사람이 나타나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1). 차이점은 있지만 네 복음서의 기자들이 모두 세례 요한의 나타남과 그의 사역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11) 이것은 메시야의 하나님 나라 선교와 관련하여 세례 요한의 예비적인 역할이 매우 중요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관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특히 마태에 대해 힐(D. Hill)은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하여 세례 요한에게 적절한 위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가장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2) 실제로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종종 세례 요한의 구속사적 위치와 그의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다.13)
 

세례 요한을 향한 대중적 관심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마침내 정적을 깨고
세례 요한이라는 선지자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유대 백성들에게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태는 세례 요한이 사역하던 지역이 ‘유대 광야’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다(1). ‘유대 광야’의 위치에 대해 카슨(D. Carson)은 “사해 북쪽 요단강 하류의 계곡과 사해 서편으로 이어진 지역을 포함하고 있지만 확실치 않다”라고 했다.14) 마가나 누가의 병행 구절에서는 ‘유대 광야’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마태가 여기서 특별히 ‘유대 광야’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에 대해 건드리(R. Gundry)는 “세례 요한이 다윗의 영토에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5)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가 세례 요한이 사역하던 지역을 ‘유대 광야’로 특정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세례 요한이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던 대상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유대 땅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게 되는 메시야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대 땅에 혜성처럼 나타났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의 많은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다. 그 결과 그에게 몰려온 사람들은 단지 요단강 인근 지역의 사람들뿐 아니라,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과 온 유대 지역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5).16) 따라서 그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과 그를 향한 관심이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L. Morris)는 “그러한 예언자의 모습은 드물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그를 보기를 원하고 그의 메시지를 듣기 원했기에 그는 비록 광야에 머물러 있었으나 그의 메시지를 들으려는 청중이 적지 않았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17)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예언자에 대한 대중성은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으며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람들이 요단강 하류에 위치하였던 유대 광야까지 몰려온 것이다.

세례 요한에 대한 이러한 대중적인 반응과 그를 향한 관심은 아마도 당시 유대 백성들이 오랜 기간 선지자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운스(R. Mounce)는 1절에 나타나는 ‘그 때’라는 시간적인 언급에 대해 “그 시기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기간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18) 그러나 400년의 고요한 정적을 깨고 마침내 세례 요한이라는 마지막 선지자가 유대 광야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유대 백성들에게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례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대중적인 관심에 대해 프란스(R. France)는 “그의 추종자들이 별도로 그 존재를 유지할 만큼 유대주의 내부에서 중요한 그룹을 형성하였다”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19)
 

‘회개하라’

세례 요한이 촉구했던
회개의 개념은
단지 감정적인 뉘우침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
그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행동과 의지의 변화’를
의미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므로 그의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2).20) 이러한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첫째는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강조한 것이고, 둘째는 “천국이 가까이 오고 있다”라는 것이다.21) 이러한 관점에서 세례 요한의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과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장에는 세례 요한의 사역과 관련하여‘ 회개’라는 단어가 8절과 11절에 두 번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다. 사실 그 당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대중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과 관련한 현실적인 메시지를 기대하였던 유대 백성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으로 다가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했던 것은 당시 그의 메시지를 들었던 유대인들이 대부분 형식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종교 생활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절에서 사용된 ‘회개하다’라는 동사는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이다. 이 단어는 ‘메타’(μετα)와 ‘노에오’(νοέω)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메타’는 ‘~후에’(after)라는 뜻의 전치사이고 ‘노에오’(νοέω)는 ‘생각하다’라는 뜻의 동사이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라는 동사는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 후에 ‘깊이 생각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슨(D. Carson)은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라는 동사의 의미에 대해 고전 헬라어에서는 “마음의 지적인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22)

그러나 세례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회개’의 개념은 단지 이러한 ‘지적인 변화’로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해하는 ‘회개’는 ‘지적인 변화’가 실제로 ‘행위의 변화’ 혹은 ‘삶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개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개념은 구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 ‘돌아오다’라는 뜻이 있는 ‘슈브’(ובשׁ)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였다.23) 이 단어는 단지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차원의 ‘회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행동과 의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리스(L. Morris)는 ‘회개’의 의미에 대해 “단지 미안한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뜻하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구약에서 ‘회개’를 의미하고 있는 ‘슈브’(ובשׁ)라는 단어도 그런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힐(D. Hill)은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자들이 하나님께로 근본적으로 회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24)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예수 안에서
다가오게 될 것을 뜻한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은
즉각적인 회개의 결단을
사람들에게 촉구하였다.

‘회개’를 촉구하는 것과 함께 세례 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선포했던 메시지의 특징이 있다면 ‘회개’와 ‘천국’이라는 두 가지 주제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회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2). 이러한 관점에서 프란스(R. France)는 요한이 촉구하는 ‘회개’에 대해 “도래하는 천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필연적이다”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기서 ‘천국’의 개념은 “심판과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의로운 주권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25)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했던 이유가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마태가 강조하는 것과 관련하여 건드리(R. Gundry)는 “그의 신학에 나타나는 큰 주제의 시작이다”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하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라는 표현에서 ‘나라’(ἡ βασιλεία)의 개념은 ‘통치의 영역’을 뜻하며, ‘하늘’(οὐρανός)은 ‘통치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26)

2절에 나타나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에서 ‘가까이 오다’라는 동사는 ‘엥기조’(ἐγγίζω)인데 문자적으로는 ‘접근하다’라는 뜻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이 동사의 시제가 ‘완료형’으로(ἤγγικεν)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엥기조’(ἐγγίζω)라는 동사가 완료형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어떤 특정한 대상이 ‘아주 가까이 다가온 상태’(extreme closeness)를 뜻하거나 ‘곧 일어나게 될 어떤 사건의 임박성’(imminence)을 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7) 이러한 관점에서 프란스(R. France)는 ‘엥기조’(ἐγγίζω)라는 동사가 완료형 시제로 사용된 것에 대해 “이미 시작이 되었으며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사건의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28) 이러한 관점에서 해그너(D. Hagner)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것은 “천국이 이미 가까이 이르렀고,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라는 뜻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29)

따라서 마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통해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임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30) 건드리(R. Gundry)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 대해 “하나님의 통치, 우주적인 통치의 도래가 임박했다”라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이것은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통치가 아니라 악의 세력을 정복하시고 인류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가져오시는 궁극적인 구원이라는 특별한 활동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31)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것을 선포한 것과 관련하여 힐(D. Hill)은 “하나님의 주권의 결정적인 확립과 현현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이제 사람들은 회개와 회심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32) 이처럼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 안에서 곧 다가오게 될 것이며, 그러기에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회개의 결단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메시야를 통해 임하는 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세례 요한이 선포한 것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며
절망 속에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통해 임하게 되는
또 다른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마태는 2절에서 ‘천국’(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이라는 표현을 처음 언급하고 있으며 사실 신약에서는 오직 마태복음에서만 ‘천국’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해그너(D. Hagner)는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 대신에 ‘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완곡 표현법이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33) 이러한 관점에서 마운스(R. Mounce)는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보다 ‘천국’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셈어적인 망설임’(Semitic reluctance)으로부터 유래하였다”라고 하였다.34) 따라서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보다 ‘천국’이라는 표현을 언급하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의 관습을 번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실제로는 ‘천국’(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을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35) 또한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표현이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 사이에는 중대한 의미의 차이는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카슨(D. Carson)은 마태가 ‘천국’이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통치를 하늘에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성경이 보여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통치가 온 땅과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병행 구절이 공관복음서에는 충분하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하였다.36)

마태가 ‘천국’이라는 표현을 그의 복음서에 언급했던 목적은 아마도 이 세상 왕이나 권력자가 다스리는 나라와 달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것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정치적으로 억압당하며 절망 속에 살아가던 유대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통해 임하는 또 다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제시하고, 그들이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회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이 땅의 나라에서 악한 지배자들에 의해 여전히 억압과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경험하며 그 나라의 백성으로 담담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주(註)

1) 눅 2:41-50, 51-52. 
2) R. T. France, op. cit., 90.
3) 3:1-17, cf. 막 1:1-11, 눅 3:1-22, 요 1:19-51, 3:22-4:3. 
4) cf. 막 1:9. 
5) David Hill, op. cit., 89. cf. 24:19, 38, 막 1:9, 8:1, 13:17, 24.
6) 누가는 병행 구절에서 ‘그 때’라는 시간과 관련하여 로마의 황제 ‘디베료’(Tiberius) 15년,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두리고닛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라“고 당시의 인물들 중심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눅 3:1-2).
7)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그’(ἐκεῖνος)라는 지시대명사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3:1, 7:22, 25, 27, 8:13, 28, 9:22, 26, 31, 10:14, 15, 19, 11:25, 12:1, 45, 13:1, 11, 44, 14:1, 35, 15:22, 28, 17:18, 27).
8) Leon Morris, op. cit., 51. 
9) Donald A. Hagner, op. cit., 47, cf. 스바냐 1:15, 암 9:11, 슥 12:3-4, 사 10:20. 렘 37:7.
10) Robert H. Gundry, op. cit., 41. 
11) cf. 막 1:1-11, 눅 3:1-22, 요 1:9-34. 그러나 마가와 달리 마태는 이사야 40:3을 인용하면서 말라기 3:1을 그 앞에 먼저 인용하지 않고 있다(cf. 막 1:2). 말라기 3:1에 대한 언급은 마태복음에서 나중에 나타나고 있다(11:10). 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누가는 세례 요한의 출생과 배경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눅 1:5-25, 39-45, 57-80)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 많은 초점을 두기 위해 그런 기록을 생략하고 있다는 것이다. 
12) David Hill, op. cit., 88. 
13) 3:13ff. 11:7-19, 14:1-2, 17:9-13. 
14) D. A. Carson, op. cit., 99. ‘유대 광야’에 대해 힐(D. Hill)은 “사해 서쪽 방면에서 약간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일반적으로 이 지역은 ‘쿰란’(Qumran) 지역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David Hill, op. cit., 89).
15) Robert H. Gundry, op. cit., 42. 
16)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 ‘엘리야’ 선지자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구약에 예언된 ‘그 선지자’ 즉 메시야가 이 땅에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요 1:19-25).
17) Leo Morris, op. cit., 55.
18) Robert H. Mounce, op. cit., 22.
19) R. T. France, op. cit., 89. 세례 요한의 대중성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프란스(R. France)는 요세푸스(Josephus)가 그의 사역에 대해 예수님의 사역보다도 더 상세하게 기록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 cf. 4:17, 10:7 
21) cf. D. A. Carson, op. cit., 99.
22) D. A. Carson, op cit., 99.
23) 요엘 2:12-13.
24) David Hill, op cit., 90.
25) R. T. France, op. cit., 90.
26) Robert H. Gundry, op. cit., 43. 
27) cf. 26:45, 46, 눅 21:8, 20.
28) R. T. France, op. cit., 90.
29) Donald A. Hagner, op. cit., 47.
30)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 병행 구절에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에서 ‘천국’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31) Robert H. Gundry, op. cit., 44. 
32) David Hill, op. cit., 90.
33) Donald A. Hagner, op. cit., 48. 
34) Robert Mounce, op cit., 22. 
35) 마태복음에는 ‘천국’이라는 표현이 32회 나타난다. 또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도 12:28, 19:24, 21:31, 43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마태복음에서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서에서도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를 같은 용어로 간주하고 교차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36) D. A. Carson, op. cit.,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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