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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 국가를 가다(2)
최은수 교수의 코카서스 조지아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07월 07일 (수) 13:04:12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코카서스가 백인 우월주의 근거?

 미국에서 인종적으로 백인을 지칭하는 말이 코카시안(Caucasian)이다. 이 용어의 기원은 17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의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조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Johann Friedrich Blumenbach)가 코카서스 지역에서 발견된 한 여성 유골을 분석하면서 백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진화된 인종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는 세계의 인종을 다섯 부류로 구분하면서 백인, 즉 코카시안을 가장 높은 정점에 두었다.

그가 분류한 바에 의하면, 코카시안은 백인뿐만 아니라 더 넓은 지역에까지 적용되었다. 그런 근거에서 미국에서는 한 아시안이 자신도 코카시안, 즉 백인의 분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유럽이나 기타 지역에서는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강한 이 용어를 쓰지 않거나 거의 소멸된 상태인데 차별없는 인권을 그렇게 강조하는 미국에서 여전히 이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 코카서스에서 유래한 코카시안은 인종적으로 백인을 가르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코카서스 산맥의 전형적인 산속 마을

딸이 출생하면 ‘니노’(Nino)

현재 코카서스 조지아의 인구 중 여성이 차지하는 성비가 남성을 능가하고 있다. 이런 성비의 불균형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조지아 국내의 일자리가 부족하여 남자들이 해외로 진출한 것이 주된 요인 중에 하나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필자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를 통해 아르메니아에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애니’(Ani)라는 이름을 붙여서 과거 찬란했던 아르메니아의 역사를 기억한다고 언급했다. 코카서스 조지아는 세계 최초의 여성 조명자로서 한 여성의 전도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딸이 태어나면 ‘니노’라고 이름을 붙여서 자랑스런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현재 조지아에서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데다가 딸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이름인 ‘니노’를 붙인 관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니노’라고 부르면 반응하는 숫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랄 것이다.

   
▲ 파라바니 호숫가에 자리잡은 니노의 수도원. 니노는 여기서 조지아 선교에 대한 비전을 보았다

순교자의 면류관 대신 조지아의 복음화를 위해
부름을 받은 소명자, 니노(Nino)

   
▲ 니노가 전해 주었다고 알려진 포도나무 십자가. 므츠헤타의 스코티츠코벨리 대교회 경내에 있다.

니노는 로마 제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부친 자빌론(Zabilon) 장군과 모친 수사나(Susana) 사이에서 태어난 여식이었다. 모친 수사나는 예루살렘의 감독과 친남매지간이었다. 갑바도기아의 니노라고 불리게 될 어린 소녀는 외삼촌이 감독으로 있던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 위해 ‘가야네’가 이끄는 공동체에 합류하였다.

가야네는 로마에서 공동체를 이끌다가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를 피해서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은신처를 정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30여 명의 공동체 소속 여성들과 함께 순교함으로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 있어 소중한 토대를 마련했던 여성 지도자요 순교자였다. 그들중에 디오클레시안 황제와 아르메니아의 왕인 티리다테스 3세의 정치권력을 동원한 강제적인 구애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흐립시메’도 포함되어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아르메니아 최초의 여성 지도자요 순교자인 ‘가야네’가 이끌던 바로 그 공동체에 ‘니노’(Nino)도 한 구성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흐립시메도 왕족 출신의 귀족이었고 니노도 로마 제국의 최상류층에 속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가야네의 공동체에 속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왕족이거나 최상류층 귀족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 말은 초대교회 역사상 가장 처절한 박해를 자행했던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턱 밑까지 기독교의 영향력이 확산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 므츠헤타의 스코티츠코벨리 대교회당 입구에 새겨진 철제 십자가 문양

역사를 돌이켜 보면, 디오클레시안의 대대적인 박해를 통해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체로 더욱 빠르게 전파되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사실, 많은 기독교인들이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틴 황제가 주도한 313년 밀란 칙령으로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났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칙령이라는 문서 자체만 볼 때 박해의 종식이 맞지만, 실제적으로 로마 제국 전체로 볼 때는 324년에 가서야 온전히 박해가 종식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을 중심으로 서쪽을 통치하던 콘스탄틴 황제의 지역에서는 밀란 칙령이 제대로 적용되었지만,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동쪽을 통치하던 니시니우스(Nicinius) 황제의 지역에서는 박해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임을 선포한 때도 313(밀란 칙령)년이나 324(니케아 종교회의)년이 아니고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선포한 ‘데살로니가 칙령’에 근거하여 380년임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 므츠헤타의 스코티츠코벨리 대교회 내부에 장식된 십자가

다시 니노로 돌아가서 보자면, 아르메니아가 301년에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기 1년 전에 가야네를 비롯한 공동체 소속 여성들이, 절세가인인 흐립시메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지 못한 티리다테스 3세의 광기어린 폭거에 희생되어 30여 명의 여성들이 순교의 피를 흘릴 때, 가야네의 공동체에서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는데, 그 인물이 바로 ‘니노’이다.

이 점에 대하여 조지아 교회의 역사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니노’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조지아의 구원을 통한 기독교 복음화에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당시 ‘니노’는 ‘조지아에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부족하다’라는 비전과 소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르메니아에서 ‘니노’와 동고동락을 했던 동역자들이 처절한 고문으로 혀가 뽑히고 눈이 멀고 사지가 찢겨지는 고통을 당하며 순교하던 상황 속에서 ‘니노’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니노’ 개인에게는 그들과 함께 고난과 순교에 동참하지 못한 비통함과 미안함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니노’는 그런 부담감을 사명으로 승화시키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조지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고문을 당하는 심정으로, 순교하는 각오로 헌신하였다.

   
▲ 므츠헤타에서 바라본 산 정상의 지바리 수도원

하나님의 역사에는 결코 우연이 없다

‘니노’는 기가 막힌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아 사명 하나로 버티면서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국경 지역에 위치한 ‘파라바니 호수’(Paravani Lake)에서 구체적인 비전을 보았다. 조지아 교회 역사는 ‘한 사람이 봉인된 책을 주면서 므츠헤타에 있는 이방인 왕에게 갖다 주라’는 비전을 ‘니노’가 받았다고 기록한다. 니노가 하필 이 무렵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비전을 가지고 조지아로 오게 된 역사적인 시간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울러 하필 이 무렵에 코카서스 지역의 정치지형이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 므츠바리 강의 모습. 니노와 성직자들이 이 강가에서 거국적인 세례를 베풀었다

당시 세계의 패권을 놓고 로마 제국과 신생 페르시아 제국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코카서스가 그 경계 지역에 있었던 관계로 국제정치의 변화에 따라 조지아의 상황도 요동을 치곤 했다. 298년에 니시빈(Nisibin)에서 로마 제국과 신생 페르시아 제국이 평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조지아는 서구세계, 즉 로마 제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끔 역사는 흘러갔다. 결과적으로 하필 그 무렵에 밀란 칙령이 313년에 선포되었고 곧 이어 세계 최초로 니케아 종교회의가 324년에 개최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니노’(Nino)의 전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었는데, 하필이면 회심자 중에 조지아 국왕 미리안(Mirian)의 왕비인 나나(Nana)가 있었다. 그녀는 중병에 걸렸다가 니노를 통해서 치유를 받았고, 왕비를 통하여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었던 미리안 왕도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제 모든 환경이 조지아가 한 여성의 전도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수 있는 필요충분 요건을 갖추게 되었다.

   
▲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성령의 산 중턱에 자리잡은 교회

조지아 교회 역사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해가 326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통치하던 니시니우스 황제를 제압하고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군림한 콘스탄틴 대제가 존(John) 감독, 성직자들, 그리고 석재 기술자들까지 보내주어 조지아 전역이 빠른 속도로 기독교화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니노와 성직자들은 므츠바리(Mtsvari, 러시아어 쿠라 Kura) 강가에서 거국적인 세례를 베풀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역사적인 기독교 유물들까지 조지아 교회에 보내주어 조지아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기독교의 증거들을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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