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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3)
최은수 교수의 아르메니아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06월 07일 (월) 14:13:42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 코르 비랍에서 바라본 아라랏산. 아라랏산은 아르메니아에서 바라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르메니아와 관련된 역사의 현장들은 비단 현재의 아르메니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보다 넓은 견지에서 이해함이 자연스럽다. 광의의 아르메니아(Greater Armenia)는 코카서스 전체, 터키의 거의 대부분, 중동 국가들의 일부를 포함한다. 이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아르메니아의

정체성이 실제로 지배했던 영토와 아르메니아의 디아스포라를 통해 폭넓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터키의 경우는 아르메니아의 역사 유산을 자신들의 것인 양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어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아르메니아 역사의 전문가들은 터키의 이런 처사를 ‘아르메니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학살’(Genocide)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회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인간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무시하고 감추려고 해도 그 흐름을 절대로 막아설 수는 없음이다. 그래서 역사 앞에서 모든 인생들은 겸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순응해야만 한다.
 

여성들에 의한 극적인 탈출과 영혼의 피난처

   
▲ 아르메니아 아사시드 왕조 시기의 영토

아르메니아 교회 역사를 말할 때 조명자 그레고리를 빼고는 안될 정도로 그의 헌신과 희생은 실로 놀라웠다. 그레고리(Gregory the Illuminator, 본명 그레고리 루사보리치-Gregory Lusavorich)의 훌륭함은 아르메니아 최초의 여성지도자인 가야네와 흐립시메 등 30여 명의 여성 순교자들의 희생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일이었는가를 올바르게 인식했다는 데 있다. 그의 역사의식은 참으로 위대하고 숭고했다.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했던 그레고리의 겸손함이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로 하여금 든든한 초석 위에 굳건하게 서도록 했던 원인 중에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명자’는 복음의 빛을 결정적이며 거국적으로 비추게 하는 역할을 그레고리가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 뒤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레고리 루사보리치는 아낙(Anak)이라는 왕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루사보리치 가문은 아사시드 왕가와 정적의 관계에 있었고 향후 아르메니아 교회 역사에서 악역과 혁혁한 업적을 동시에 남기게 될 티리다테스 3세와 역사의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레고리의 아버지인 아낙이 티리다테스 3세의 부친인 코스로프(Khosrov) 왕을 암살하는 데 가담하였고 곧이어 아사시드 왕가로부터 대대적인 정치 보복을 당하여 가문 전체가 멸문지화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런 위기 속에서 어린 그레고리를 돌보던 소피아와 예브타그 등의 여성들은 사력을 다해 그를 갑바도기아(Cappadocia)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 코르 비랍에 세워진 기념교회. 한동안 코르비랍은 신학교와 총대주교의 거주지가 있었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본부 역할을 했다

당시 갑바도기아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피하여 모여든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은신처였다. 갑바도기아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특이한 지형이었기 때문에 피난처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이 지역이 언듯 보기로는 바위로 되어 있는 듯하였으나 간단한 도구로 바위를 쉽게 뚫어서 주거 및 공공장소를 수월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이는 굴을 파는 과정에서 깎인 표면이 공기와 만나면서 단단하게 굳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로 전능자의 그늘이요 영혼의 피난처로서는 최적의 장소였다. 갑바도기아는 향후 초대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수많은 인재들의 산실이었다. 초대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던 대 바실(Basil the Great), 그의 동생이자 닛사의 감독이었던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그리고 절친이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sianzus) 등이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초대교회가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특히 성령론의 측면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였다.
 

코르 비랍(Khor Virap, 깊은 굴)의 유래

   
▲ 조명자 그레고리가 12년 이상을 갇혀 지냈던 깊은 굴, 즉 코르비랍의 입구

그레고리 루사보시치도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엘리트로 성장하였다. 주변으로부터 자신의 가문과 아르메니아 아사시드 왕가와의 악연을 익히 알고 있었던 그레고리 루사보시치는 자신의 가문이 조국인 아르메니아 왕실에 졌던 정치적인 빚을 갚고 속죄하고자 당시 왕궁이 있던 바가르샤밧으로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거룩한 소명과 영감에 이끌리지 않고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매우 위험한 결정이었다. 암살당한 부친을 이어 왕이 된 티디다테스 3세가 젊고 유능한 그레고리 루사보시치를 중용하여 왕실의 행정 업무를 보도록 하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의 주변에는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서 모함하는 세력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레고리는 이런 부류의 표적이 되어 자신의 배경이 공개되었다. 왕은 그레고리가 부왕을 암살했던 가문의 자식임을 알고 대노하여 그레고리를 가혹하게 고문한 후 깊은 굴속, 즉 코르 비랍에 감금하였다.
 

무명의 여성이 전해준 떡 조각

   
▲ 코르 비랍 깊은 굴 내부에 새겨진 아르메니아 십자가 문양

그레고리 루사보시치는 깊은 굴에 던져진 후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왕은 주변국들과 연이은 전쟁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고 그 누구도 그레고리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그레고리가 갖힌 구덩이는 어둡고 침침하며 사방이 폐쇄되어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되었다. 코르 비랍이 위치한 마을에 신실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 과부는 기도 중에 영감을 받고 깊은 굴속에 버려진 그레고리에게 12년 이상 동안 떡 조각을 공급하였다. 이 무명의 과부가 전달한 떡 조가리가 그레고리에게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과 소망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레고리가 갑바도기아에서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지만, 온전히 헌신된 삶을 살기 위해 가족을 뒤로 하고 아르메니아로 왔기 때문에, 그가 이런 환경에 던져진 것이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았다. 이 기간 동안 그레고리는 영적인 깊은 묵상과 통찰을 할 수 있었고, 온전히 천상의 잔치에 참여하여 풍성한 하늘의 만찬을 누렸다. 그는 코르 비랍에서의 영적 경험을 통하여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만일 한 과부의 공급이 없이 그가 혼자였다면, 이런 긴 시련의 기간을 인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무명의 과부는 그레고리의 영적인 친구요 동역자였다. 그런 견지에서 이 무명의 과부도 무명의 여성 순교자들과 더불어 기억되고 교회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 즉 역사의 종말까지 후대에 전하여 귀감이 되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소개자로 예비된 한 여성

   
▲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본산인 에치미아진에 신축된 교회 내부

필자도 이번에 탐방하며 글을 쓰면서 한 국가와 민족이 기독교화되고 아르메니아가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역사의 큰 획을 긋는 데 있어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마 독자 제위도 아르메니아 교회사 자체가 생소한데 게다가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하여 적지않이 놀라고 탄복하리라 생각된다. 그 여성들은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 지도자이며 순교자인 가야네, 신앙의 절개를 지킨 흐립시메, 이름도 없이 피를 흘렸던 30여 명의 여성 순교자들, 어린 그레고리를 탈출시킨 두 명의 여성들, 떡조각을 전해준 무명의 과부, 그리고 그레고리를 왕에게 간절하고 끈질기게 소개한 코스로비듀크트(Khosrovidukht) 공주 등이다.

그녀는 친형제인 티디다테스 3세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멜 때 왕에게 그레고리를 소개한 왕의 누이였다. 처음에 왕은 그레고리에 대하여 부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는 그레고리가 12년 이상 깊은 굴속에 갇혀 있어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왕은 코르 비랍으로 부하들을 보내서 그레고리의 생사를 확인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그가 살아 있다면 왕궁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결국 그레고리는 살아서 왕의 앞에 섰고 그를 치료함으로 기독교 국가로서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 교회 역사에는 결코 우연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시의적절하게 등장하여 각기 맡은 사명을 감당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 왕실의 여인이 그레고리를 기억함으로써 위대한 역사의 디딤돌을 놓았던 것이다. 왕은 병이 완치된 후 그레고리로부터 세례를 받고 둘이 함께 힘을 모아 역사상 최초로 한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세드럴, 즉 에치미아진 대교회의 전경. 지금은 수리중이어서 폐쇄된 상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신자(독생자)의 강림

이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본산이 있는 에치미아진의 이름 뜻이다. 301년에 기독교 국가로 새롭게 출발했던 아르메니아는 그레고리에게 교회와 관련된 전권을 부여하였다. 그는 교회의 초대 총대주교로 서품을 받고 아르메니아를 명실상부한 기독교 국가로 변혁시키는 일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는 비전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신자’ (Only Begotten Son, 독생자)의 강림을 경험한 후 그 지역의 이름을 에치미아진으로 명명하였다. 이곳은 301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본산으로 유구한 역사를 이어 오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그레고리가 에치미아진에 국가교회의 본부를 둔 데는 아라랏산에 도착한 노아 가족이 이곳에 정착했었다는 오랜 전통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런 의미와 민족적 전통을 간직한 에치미아진에 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그레고리는 왕의 도움을 받아 301년에 세계 최초의 카세드럴(Cathedral), 즉 대교회를 건축하였다. 그레고리는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자리매김을 하는 데 있어서 ‘조명자’(The Illuminator) 역할을 사상 최초로 했고, 세계 최초의 카세드럴을 건축했고, 세계 최초로 국가 교회의 수장이 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례반에 신축된 조명자 그레고리 기념교회

그레고리가 아르메니아 전역을 신속하게 기독교화 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교육과 군사력에 있었다. 그는 이방신들을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들을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용도로 변혁하였고 이방신전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엄청난 재산들을 교회와 수도원을 건립하는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저항하는 이교세력들을 굴복시켰다.

세계 교회사적으로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그레고리지만 말년에는 아르메니아의 고지대로 가서 조그마한 거주지를 마련해 놓고 남은 여생을 오로지 영적 수련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그레고리가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이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영광을 성삼위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자신은 초야에 묻혀서 소박한 말년을 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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