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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2)
최은수 교수의 아르메니아 교회 역사 현장 탐방
2021년 05월 31일 (월) 14:18:55 최은수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최은수 교수/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 교회사 Ph.D. Berkeley GTU 객원교수, IME Foundation 이사장

   
▲ 최은수 교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보통 코카서스 3국이라 부른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의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여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에서 직항 전세기가 오갈 정도였다. 이런 폭발적인 여행 수요가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하여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제 백신 접종자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었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된다. 코카서스 3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도록 공평하게 각기 세 가지 자연적 특혜를 주셨다고 믿는다. 아제르바이잔은 산유국이니 불을, 조지아는 세계적인 생수인 보르조미 물을, 아르메니아는 아름다운 석재(돌)을 주셨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 아르메니아의 수도인 예레반의 상징과도 같은 캐스케이드(Cascade)

초대교회의 교부인 터툴리안의 말이다. 아르메니아 기독교의 시작도 순교로 시작되었다. 열두 사도들 가운데 아르메니아로 복음을 들고 온 이들은 바돌로매(나다나엘)와 유다 다대오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아르메니아 교회도 이 두 사도가 복음 전파의 시작이었다고 공인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사도들의 직계라고 하는 자부심과 더불어 교회의 공식 명칭도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라고 부른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도들은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력 있는 복음을 전파하였고 순교의 피를 그 땅에 뿌림으로 장차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데 씨앗이 되었다.

특히 바돌로매는 피부가 벗겨지고 머리 가죽이 벗겨져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어 갔으며 그래도 죽지 않자 그의 목을 잘랐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유다 다대오도 끔찍한 방식으로 순교를 당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에 아르메니아가 아사시드(Arsacid) 왕조가 시작된 후 초창기였기 때문에 통치자들과 기득권을 가졌던 토착 신앙 추종자들은 새로운 신앙의 역동적인 영향에 대하여 경계하며 극렬하게 배척하였다. 이후 초대교회가 아주 오랫동안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이 두 사도의 활동 이외에는 차대의 기록이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내에서 기독교가 폭넓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볼 때, 교회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복음의 역사가 아르메니아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진행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음이다. 왜냐하면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복음의 길이 되었듯이 아르메니아가 폭넓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코카서스 지역이 이 길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교회로서의 초석

   
▲ 하나님께서 아르메니아에 석재(돌)를 주셨듯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게하르드(Geghaed) 수도원에 돌을 깍아 각종 문양을 새긴 돌들이 아름답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교회를 지칭하는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는 여성형이다. 실제로 교회의 시작부터 여성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땀과 눈물로 헌신하여 왔다. 시작단계부터 교회를 말할 때 ‘모교회’ 즉 ‘어머니 교회’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약학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전설이 된 브루스(F.F. Bruce) 교수는 기독교의 전파 과정을 ‘초원의 들불’이라고 표현하며 아무리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핍박의 위협이라고 할지라도 역사의 큰 흐름을 거스릴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르메니아도 사도들이 뿌린 순교의 씨앗이 발아하고 싹을 틔우며 열매를 맺게 되는 역사의 강력한 흐름을 막아설 수 없었다. 그 결정적인 시기에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35명 정도의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아르메니아가 301년에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공인되기 1년 전에 순교의 피를 뿌림으로 복음의 대변혁을 알리는 서곡이 되었다.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 지도자, 가야네(Gayane)

   
▲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에치미아진 본산의 정문

가야네는 로마에서 소규모의 헌신된 여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였다. 로마 황제인 디오클레티안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강화하자 로마를 탈출하였다. 그녀는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갔다가 거기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하였고 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였다. 가야네는 바가르샤팟(Vagharshapat), 즉 후에 에치미아진(Etchimiazhin)으로 알려지게 될 곳의 근처에 버려진 포도주 제조 시설을 피신처로 삼았다.

그녀가 이끌던 여성 중에 흐립시메(Hripsime)라는 왕족 출신의 귀족이 있었다. 사실 흐립시메가 절세가인이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안이 그녀를 설득하여 왕비로 삼고자 했는데 그녀는 기독교를 박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황제와 종교적인 신념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황제의 청혼을 거절하였고 가야네가 이끄는 공동체에 합류하여 아르메니아까지 오게 되었다.

   
▲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지도자인 가야네(Gayane)를 기념하는 예배당으로 630년에 건축되었고 유네ㅡ코 세계문화 유산이다. 에치미아진 대교회가 공사중이어서 총대주교인 카렌킨 2세(Karekin ∥)가 여기서 예배를 집전한다.

당시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흐립시메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더욱 분기충천하여 그녀의 행선지를 알아내었다. 황제는 아르메니아의 왕인 티리다테스 3세(Tiridates III)에게 압력을 가하여 흐립시메를 잡아서 로마로 압송할 것을 부탁하였다. 로마 황제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아르메니아 왕은 군대를 보내어 흐립시메를 왕궁으로 압송하였다. 그녀를 본 아르메니아 왕도 한눈에 반하여 황제의 부탁은 안중에도 없고 오히려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그녀의 면전에서 요구하였다.

   
▲ 에치미아진 본산에 세워진 두 개의 돌 십자가 기념석. 아르메니아 교회는 전통적으로 돌에 십자가 문양을 새겨넣은 카치카르(Khachkar)로 유명하다.

그녀가 이교신앙을 추종하는 왕과도 종교적인 신념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부하자 왕은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인 가야네를 왕궁으로 불러서 흐립시메를 설득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였다. 가야네도 왕의 청을 거부하자 그녀들을 왕궁에 구금하였다. 지도자로서 가야네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흐립시메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였고 더나아가 그녀가 약해지지 않도록 격려하였다. 왕이 그녀들을 풀어줄 기미가 안보이자, 가야네는 지도자로서 투지를 발휘하여 흐립시메와 함께 탈출에 성공하였고 다른 구성원들이 있는 임시 처소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문제는 그녀들이 탈출에 성공한 이후에 발생하였다. 이에 대하여 아르메니아 왕은 흐립시메에 대한 집착이 광기로 변하였고 자신의 군대를 보내어 가야네가 이끄는 공동체의 모든 여성들을 체포하였다. 가야네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인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확고한 자세를 견지하였고, 흐립시메도 왕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였고 굴하지 않았다. 결국 왕은 가야네와 흐립시메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지시하였고 급기야 왕의 부하들은 가야네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의 혀를 뽑고 눈을 찔러서 사물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네의 구성원들이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왕의 부하들은 그녀들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절단낸 다음 화형에 처하는 극악무도한 악행을 자행하였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은 조명자 그레고리(Gregory the Illuminator, 본명 그레고리 루사보리치-Gregory Lusavorich)였다. 하지만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 지도자이자 순교자인 가야네, 그리고 흐립시메 등 35명 정도의 여성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사도들의 순교적 희생의 연장 선상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숭고한 것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비록 광기를 부렸던 티리다테스 왕이 회심을 한 후 조명자 그레고리의 주도하에 그들을 위한 작은 기념 예배당을 마련하였을 지라도, 가야네와 흐립시메 등 무명의 여성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정식 예배당은 상당기간 지체되다가 약 4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건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더군다나 그녀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 되었고 머리 부분이 없고 사지가 절단난 유골들을 발굴함으로서 그녀들의 순교적 희생이 구전이나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었음을 확증하였다.

   
▲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 순교한 흐립시메(Hripsime) 기념 예배당. 618년에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슈산이다. 1970년대에 무명의 여성 순교자들의 유골들이 발굴되었다.

필자가 이번 탐방을 통해 교회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인 기억함(To Remember)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서 기본에 충실할 것이라고 다짐을 한 바 있다. 필자는 사도들이 뿌린 순교의 피, 아르메니아 최초의 기독교 여성 지도자 가야네, 그리고 디오클레시안 황제와 티리다테스 왕의 절대권력에 굴하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흐립시메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인생여정에 언제나 동행하신 성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아울러 가야네와 흐립시메를 빼고는 이름이나 개인 신상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는 30명이 넘는 무명의 여성 순교자들을 기억할 것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순교의 제물이 된 무명의 여성들은 무명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어 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하늘에서는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무명이 아닌 유명인이 되어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향유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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