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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르트-샬로테, 육체 사랑도 했을까?➁
20세기 '신정통주의' 최고 신학자 칼 바르트 비평
2018년 06월 18일 (월) 17:48:06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초미 관심사는 두 사람의 성생활 여부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조금은 학문적인 작업이 될 테지만, 본 시리즈와 연계하여 바르트나 그의 비서 폰 키르쉬바움의 인간관과 성애관(性愛觀)에 대하여 필자 나름의 분석과 연구를 진지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곧 시리즈에 반영하려고 한다. "둘이 어떤 관계였느냐?"는 호기심 이상으로 바르트 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제자들과 함께 한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 샬로테는 바르트의 그림자와도 같았다. 

본 시리즈 전회(1~8)를 이미 읽은 독자는 바르트와 키르쉬바움 사이의 깊은 관계라는 게 도대체 어떤 성격이었을지 딱히 확언하진 못할망정, 대강 감은 잡을 만큼 잡았을 터이다. 놀랍지 않게도, 신학자나 사역자들 및 교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발견되는 궁극적인 최대 관심사는 역시나 둘 사이의 '육적 관계' 또는 '육체관계'의 여부다. 이것은 자연스런 귀결이기도 하다.
 

물론, 일부 바르트 제자나 후학들은 "육적 관계라니 무슨 발칙한 소리냐? 어째서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가, 제 정신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과연 그런 관심을 전적으로 배제한 채로 바르트-키르쉬바움 이슈를 다룰 수 있을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의 관계가 설령 그런 요소를 거의 또는 전혀 초월한(?) 사랑이었다고 주장해도, 실상 서로 결혼하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기혼남과 미혼녀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는데 간음이 전혀 아니었다면, 그것을 과연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윗과 밧세바가 서로 간통을 한 불편한 진실을 갖고 나단 선지자가 언급했다고 해서, 누가 나단에게 "발칙하다", "무엄하다"고 했겠는가? 그런 평가를 한들 옳다는 컨센서스를 얻어내겠는가?

바르트와 키르쉬바움의 사이는 그들의 고상하고 드높은 신학적 이상과도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처럼 순결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논자나 식자는 현재까지 아무도 없어 보인다. 물론 보수주의 측이든 진보 측이든, 본 시리즈나 또 둘의 관계에 대해 아무 일언반구도 없지만 말이다.1
 

   
바르트의 연인 키르쉬바움과 아내 넬리. 둘은 반평생 그의 곁에서 더불어 함께 했다. 

이 문제를 밝힘에 있어 애당초 가장 기대가 갔던 관련 참조물은 아무래도 여태까지의 모든 자료를 총망라할 만한 위치에 있었던 크리스티아네 티츠 교수의 소논문, ‘Karl Barth and Charlotte von Kirschbaum’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책을 최후의 보고(寶庫)처럼 기대하는 사람은 자칫 실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령, 티츠의 이 에세이는 심지어 (솔로몬의) '아가(雅歌)'2나 '성'(sex), '센슈얼' 등의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관련 서신들을 양껏 해설해 놨으니 모든 것은 독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게 그녀의 논조다. 그래서 곧 준비되는 대로, 본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이 그녀의 글을 직접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길 바라고, 그럼으로써 더 진상에 접근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레나테 쾨블러의 책, <In the Shadow of Karl Barth>도 마찬가지다. 그 책엔 '섹스'란 말이 단 한 번 쓰였고, 그조차도 그냥 '이성'이란 의미다. 물론 나머지 관련 도서들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다. 그만큼 이 위대한 신학자의 삶에 대하여 함부로 험구를 삼가겠다는 좋은 뜻으로도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정도로 둘의 '육체관계'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가 없는 엄연한 현실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바르트 및 키르쉬바움과 연계하여, 남녀의 사랑 이슈 특히 부부나 아가서 속 상황 같은 (사실상의) 연인들 사이의 문제를 가장 많이 논급한 사람은 아무래도 수잰 셀린저3일 것이다. 문제는, 이전 회에서도 언급했듯 셀린저가 페미니스트라는 특정인의 시각으로 바르트-키르쉬바움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본 시리즈는, 셀린저의 모나게 불거진 페미니즘적 특징을 최대한 피하여 가며 주로 그녀를 인용하여 바르트-키르쉬바움의 이성관 내지 남녀관에 대해 계속 다루어 보려고 한다. 그것이 현재로서는 두 사람의 '육체관계' 이해나 추정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이라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바르트와 키르쉬바움의 '육체 관계'에 관해 언급하거나 논할 이유든, 당위성이든, 자격 여부 따위를 갖고 가타부타 논란할 여지는 있다. 그런 것을 논할 자유가 있다면, 반대로 되도록 논하지 못하게끔 적극 견제할 자유도 있지 않겠는가. 필자는 바르티안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
 

한 가지 적어도 현재까지 분명한 점은 여태 전술해 왔듯, 이 둘의 그런 '관계'에 대해 딱 잡아 단언할 아무런 확증이랄 만한 게 없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냥 두루뭉술한 추정에 그치게 될 공산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티츠는 바르트-키르쉬바움-넬리의 기묘한 삼각관계를 '성운'(constellation)으로 비유하기도 했다4.

 

   
1936년 헝가리 방문 당시의 바르트와 폰 키르쉬바움. 

 

여기저기 서평에도 소개돼 있지만, 셀린저의 책은 이들 두 남녀에 관한 최초의 심층연구의 소산이다. 셀린저는 당시까지 입수가 가능했던 다양한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다차원적으로 생각을 전개했다.
 

신학자 헬무트 골비처(Helmut Gollwitzer, 1908~1993)5 교수에 따르면, 키르쉬바움의 목회자였던 게오르크 메르츠는 훗날 자신이 바르트와 키르쉬바움을 서로 소개시켜 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6. 왜 후회했을까? 바르트가 키르쉬바움에게 그토록 이성적으로 서로 강렬하게 끌려 결국 그런 관계로 이어질 줄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신학이다, 사상이다, 강의다, 저작이다 하며, 학적 파트너로서 키르쉬바움의 존재의 필연성을 강조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자신에게 적합한 진정한 '돕는 배필'로 여겨, 서로 신뢰하고 의존했다. 필수적 배필 사이에 성은 절대 불가결이라는 의식은 바르트의 인간론에서도 나타나 있다는 점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뉴질랜드 장로교회의 교단장을 지낸 저술가, 롭 율(Rob Yule)은 <겁나는 은혜−기독교 역사 속의 성, 로맨스와 결혼>7이라는 책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명사 12 커플의 삶과 성을 다루면서, 바르트-키르쉬바움 커플 역시 따로 한 장으로 엮어냈다.
 

물론 성적 측면에서라면, 그 누구보다 바르트-키르쉬바움 둘의 관계는 가장 막연하다고 할 만큼, 추정 또는 억측으로 그칠 것이 뻔하지만 말이다.


각주

1. 필자가 직접 인터넷상으로 계속 확인해 보고 있는 결과다. 

2. 독일어 Hohelied 또는 Lied der Lieder.

3. 그녀의 책, Charlotte von Kirschbaum and Karl Barth에서.

4. 성운은 기라성 같은 명사들을 별자리처럼 드높은 존재라는 은유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도 달무리나 별 구름처럼 부옇고 몽롱한 관계를 암시한다.

5. 루터교 신학자. 뮌헨과 에를랑엔, 예나, 본 등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바젤의 바르트 문하에서 루터-칼뱅 성만찬 연구로 박사학위 과정을 마쳤다. 고백교회 주요 멤버로 나치의 교회 지배에 저항했고, 고백교회 마르틴 니묄러가 체포되자 뒤를 이어 베를린-달렘 교회 목회자로 사역함. 2차 대전 중 동부전선에서 독일군 위생병으로 뛰다 소련군에게 잡혀 1945-1949년 시베리아에서 전쟁포로로 지냄. 그의 포로수기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평생 사회주의 정치사상을 견지하면서 핵전쟁과 베트남전을 반대하고, 자본주의를 강력 비판했다. 본 대학교와 베를린 자유 대학교의 신학 교수였다가 1975년 은퇴함. 바르트와 친근해 바젤대 신학과를 이어갈 후계자 제1호로 지목됐으나, "소련에 대한 모호한 태도" 탓에 학교 당국에게 거부됨. 교회 관계기관의 비서까지 된 아름다운 가수/배우 에바 빌트와 서로 깊이 사랑해 약혼까지 했으나, 불행히도 빌트가 절반 유대계라는 이유로 결혼 금지를 당한다. 약혼녀 빌트는 노동수용소를 전전하다 소련군의 독일 침공 후인 1945년 4월 하순, 두려움 속에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동반자살을 기도(企圖)한 끝에 아버지만 살아남는다.

6. 쾨블러, 같은 책 39.

7. A Terrifying Grace: Sexuality, Romance and Marriage in Christi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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