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그리고 갈릴리 해변과 유대지방에서 사용한 언어는 무엇일까? 비록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기록되었으나 예수님이 사용하신 언어는 아람어였다는 것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점을 강하게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구스타프 달만(Gustaf Dalman)이었다. 독일의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성경언어학자였던 달만은 1898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예수의 어록>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고, 이 점은 벨하우젠(J. Wellhausen), 조언(P. Jo on), 블랙(M. Black) 등에 의해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요하킴 예레마이스(Joachim Jeremias)가 그의<신약신학>(New Testament Theology)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모국어는 아람어였는데 좀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유대 아람어와는 약간 다른 “갈릴리 지방에서 사용되던 서부 아람어”(a Galilean version of Western Aramaic)였다(참고, 마 26:73, 행 2:7).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셨다는 점은 희랍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의 어록 속에 아람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곧, ‘달리다굼’(막 5:4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막 15:34), ‘아바’(아버지, 막 14:36, 갈 4:6, 롬 8:15), ‘바’(아들, 마 16:17), ‘바알’(바알, 마 10:25, 12:27), ‘게헨나’(지옥, 마 5:22, 29, 10:28, 23:15, 33, 막 9:43, 45, 47), ‘게바’(베드로, 요 1:42), ‘맘몬’(제물, 마 6:24, 눅 16:9, 11), ‘파스카’(유월절, 마 26:2, 막 14:14, 눅 22:8, 15), ‘랍비’(선생, 마 23:7, 8),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막 3:17), ‘라갗(미련한 놈, 마 5:22), ‘사바타’(안식일, 마 12:5, 11, 막 3:4), ‘사타’(말, 마 13:33), ‘사탄’(사탄, 막 3:23, 26, 8:33, 눅 10:18, 13:16, 22:31) 등이 그것이다. 1세기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타인의 토착 언어였고, 따라서 예수님의 모국어는 아람어였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서의 일정한 표현들은 본래 아람어였던 것이 그리이스어로 번역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히브리어를 할 수 있었을까? 한 때는 히브리어는 1세기 당시 이미 사어(死語)였고, 랍비 사회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나 히브리어로 기록된 사해사본의 발굴과 바르 코크바(Bar Cochba)의 발견으로 적어도 히브리어는 특정 사회에서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음이 증명되었다.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를 해독할 수 있었음은 누가복음 4장 16~20절에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친숙했음이 분명하다.

만손(T. W. Manson)에 의하면 예수님의 발언 속에는 87개 구절의 구약성경이 언급되고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14번이나 ‘랍비’라고 불렸는데, 그가 히브리어 성경을 논할 수 없었다면 그런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희랍어를 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히브리어를 해독했다는 점은 그리 놀랄 일이 못되지만 희랍어를 알았는가 하는 점은 흥미로운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람어나 히브리어 외에 팔레스틴에서 사용된 또 하나의 언어는 희랍어였다. 팔레스틴 북부지역에는 헬라 도시들이 많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희랍적인 사고나 관습이 시행되고 있었다.

흔히 데가볼리라고 불리는 지역들만이 아니라 팔레스틴 접경지대 도시들에도 이 점은 동일했다. 쿰란문서가 발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헬라적인 사고나 관습이 유대사회에 스며들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던 쿰란 공동체에도 희랍은 물론이고 오리엔트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희랍적 영향력이 팔레스틴의 유대사회에도 편만했다. 그래서 주전 1세기 경에는 지중해를 ‘희랍해’(希臘海)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2세기에 구약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은 희랍어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케 한다.

갈릴리에서도 많은 이들이 희랍어를 사용했음이 분명하고, 이 지역에서도 이중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는 희랍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가 희랍어를 알고 있었고 희랍어로 서신을 기록한 점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이 희랍어를 몰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흔히 하층계급의 사람들이 아람어를 사용한 반면, 약간 높은 계층의 사람들이 희랍어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대부분 아람어를 사용했으나 때로 희랍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 아람어나 히브리어로 이야기 할 수 없었던 경우로 추정되는 사건은 두로, 시돈, 데가볼리 방문(막 7:31ff.), 가버나움에서 백부장과의 대화(마 8:5~13), 그리고 가나안인이나(마 15:22) 희랍 여인(막 7:26)으로 보이는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대화(막 7:24~30)의 경우이다. 또 본디오 빌라도와의 대화(막 15:2ff.)도 희랍어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본문에 보면 통역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희랍어를 알고 계셨던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