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시작된 설화신학의 배경은 신정통신학이다. 성경의 정확성이나 역사성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그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어 보자는 시도이다. 신앙은 우리 각자의 개인적 이야기와 종교 공동체의 이야기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합친 것으로 본다.

◆  교리 아닌 이야기

본래 성경은 계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계시는 모든 진리의 보고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19세기 후반부터 깨어지기 시작한다. 성서비평학에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자들뿐 아니라 그들에게 배운 평신도들도 성경을 현시대 상황에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한때 여러 기독교 공동체에서 발휘했던 그런 권위를 성경은 더 이상 발휘할 수 없다.” 전에는 성경이 말하는 내가 참된 나였다. 성경이 용서받았다면 용서받은 것이요 구원받았다면 구원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으로는 내가 누군지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성경은 1세기 또는 그 이전 미개한 시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수십 세기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방법이 요구되었다. 그냥 성경을 버리고 “신은 없다”고 선언하자니 그 혼란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이야기로 보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이야기는 과학이나 계시 같은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 공동체의 전통을 살려준다. 단군 설화는 한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다. 그것이 신화이건 실제 이야기이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민족의 정체성을 주지 않는가.

이야기를 강조하다 보니 그것이 교리보다 높은 자리에 놓이게 된다. 전에는 교리가 계시를 해석하는 기준이요 뼈대였다. 수학 공식 같았다. 이단은 문제가 그 교리에 있다. 성경을 이단 교리로 해석하면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정통교리 없이는 바른 신앙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교리는 이야기를 잘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옆길로 빠지지 않고 그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만들어주면 된다.
앞뒤가 좀 어긋나도 괜찮았다. 성경은 사사건건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고서도 여전히 진실될 수 있는 것이다.

◆  신정통적 역사관

설화신학의 방법론은 신정통주의의 계시 이해에서 왔다. 특히 리처드 니버의 <계시의 의미>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처음 두 권이다. 니버도 바르트도 계시가 역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왔음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들이 보는 성경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가 문제이다.

니버는 역사를 두 면으로 보았다. 외적으로 연구된 역사와 내적으로 삶 속에 살아 경험된 역사이다. 외적 역사는 객관적 사건들이다. 내적 역사는 개인과 공동체에서 일어난 가치와 전통으로 만들어졌다. 외적 역사가 내면에 의미를 주고 어떤 결단을 갖게 할 때 계시로 변한다.

바르트도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 실제 일어난 역사와 믿음으로 경험한 역사이다. 예수의 죽음은 실제로 일어났다. 하지만 부활은 믿음으로 경험한 역사이다. 성경에서는 모두 실제 역사였다. 이것을 어찌 할 것인가? 그는 모두를 큰 틀의 역사 즉 초역사 속에 넣고 보았다.

19세기말에는 자유주의가 최고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성경은 절대로 역사적인 내용이 아니었고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의 이성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여기 대항해서 성경의 진리를 살려보려고 노력한 것이 신정통주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었다. 성경은 역사성 자체가 부정되고 있었다. 당연히 성경의 무오성이나 과학에 관한 진술은 모두 허구였다. 여기서 역사와 신앙을 주관적으로 받자는 것이 신정통이다. 신앙은 주관적이고 역사기술도 어느 정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성경은 하나의 신앙고백으로 전락하고 만다.

역사는 과학도 객관도 아니다. 그것은 “외형상 비인격적인 의미만 지니는 사건뿐 아니라 거기 포함된 개인들의 삶 역시 함께 보는” 넓은 범위의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이것이 역사가 아니던가. 그리하여 드디어 설화적 접근이 시작된다.

◆  이야기와 신앙

삶을 위한 관점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스스로 터득하는가? 아니, 주위 사회나 공동체가 주는 비유와 상징을 따라서 된다. 그것은 이야기로 온다. 특별히 교훈은 더욱 그러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도록 만든다.

공동체는 전통과 문화를 설화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성경과 신앙공동체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를 맺고 있다. 정통신앙에서는 반대로 보지만, 설화신학에 의하면 성경은 신앙 공동체에서 만들어졌다. 또한 성경은 그 신앙공동체의 전통과 문화를 계속 이어지도록 만들어준다.

이 공동체는 공통적인 과거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과거의 특별한 사건이 현재를 해석해준다고 공감하는 사람들, 그리고 공유된 희망으로 미래를 보는 사람들, 그래서 공통의 설화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개인적 생각을 포기하고 성경이야기에 자신을 일치시킬 때 회심이 일어난다. 먼저 이해의 과정이 나온다. 더해서 시인과 인정과 고백이 일어날 때 이야기에서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은 기독교설화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고 미래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의지하고 또 개인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서 바르트가 창안한 하나님 말씀의 삼중적 성격이란 개념이 잘 적용된다. 성육화된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 그것이다. 모두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위한 설화의 도구로서 나타난다. 예수도 성경도 설교자도 모두가 설화를 통해서 진리를 전달한다.

여기서도 신정통의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객관적이지도 않고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도 않은 계시가 아닌 설화를 듣고 생기는 신앙은 어떤 종류의 것인가? 그것이 초자연적인 구원을 제공할 수 있는가? 단군 할아버지를 믿고 바르게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