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길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

본문엔 갑자기 옛날 시골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머슴 이야기가 나온다. 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본문을 해석하기 위하여 오늘 말씀은 앞 구절과 이어지는 문장인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은 행동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란 사실을 강조하신 후에 주신 말씀이다. 이것과 머슴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연결이 되는 것인지? 여하튼 이 본문은 앞 구절과 연결지어서 생각해야 그 뜻이 분명해지는 구절이다.

주님은 나사렛에서 자라면서 종들을 많이 부리고 사는 부자 집의 생활을 익히 아셨던 것 같다. 이때 종들은 주인들과 한 집에 살면서 생활했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같이 먹고 사는 머슴들이 있었듯이 말이다. 종들은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지만 수고했다는 칭찬 한 마디 듣지 못한다.

잘못했다는 꾸중만 면해도 그 날은 행운의 날이다. 또 하루 종일 뙤약볕에 일하고 허기져 돌아오지만 주인은 그런 종들을 위하여 밥을 지어놓지도 않는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종들에게 또 밥을 지으라고 시킨다.

음식을 다 준비해서 밥상에 올린 후에도 종들부터 먹으라고 하는 주인은 없다.
종들은 뒤에서 설거지를 한다든가 잔심부름을 하고 주인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들의 식사가 끝나면 그 후에 식사를 한다. 주님께서 이 이야기를 왜 갑자기 여기서 끄집어내신 것일까?

여기에 나오는 종들은 제자들이다. 종들이 일자리를 얻어 일하는 것도 주인의 은혜요, 밭이나 일하는 모든 기구도 주인의 소유이다.

또 곡식을 잘 기르는 것도 주인의 지혜이다.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할 뿐이지, 종들이 자기들 스스로 판단해서 곡식을 심고 가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풍년이 들어도 그 영광은 주인이 잘해서 된 것이지 종들이 무엇을 했다고 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인과 종의 관계는 주님과 제자들(목사)과의 관계와 일치한다. 목사의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설교를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지 자기의 웅변술이 아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건물을 짓고, 선교를 하고, 봉사하는 것도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지 어느 인간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다.

주의 종들은 도구로 부지런히 일했을 뿐이다. 내용은 모두가 주님이 계획하시고, 결정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종들은 모든 일을 훌륭하게 이룬 후에도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새번역).”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시작이요 출발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조그마한 근거이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으로 무엇을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근거를 제공한 것뿐이다.

그 다음부터는 주님께서 다 하신 일이다. 그러니까 목회란 내가 가진 작은 믿음을 어여삐 보시고, 그 위에 내려 주신 은혜로 이루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믿음이 크다고 자랑해서도 안 되고, 내 믿음이 좋아서 그랬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나에게서 무엇이 이뤄졌다면 그건 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은혜일 뿐이다.

나는 뽕나무가 옮겨질 것을 믿고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심겨져라 명령할 뿐이다(눅 17:6). 그래도 주님이 안 옮겨 주실 수도 있고 옮겨주실 수도 있다. 내 믿음이 옮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뽕나무를 옮기신 분이 주님이시듯이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신 것이다. 아니 내가 소유한 믿음 자체도 그분께서 주신 것이다. 결국 믿음 생활에서나 목회에서 내가 이룬 것이란 한 가지도 없다. 주님 앞에서 끝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령대로 했을 뿐입니다”고 고백해야 한다.

한국에 큰 교회 목사들을 만나보면 마치 제왕이나 옛날 궁중의 대신들을 만난 느낌이 든다.
그들 앞에서는 나이나 선후배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니 교인들이 안중에 있을까? 가끔 한국에서 집회 강사를 초청해 보면 교인들의 불평이 많다.

제왕처럼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 신문에 한 기고자는 오늘의 개신교 상황을 평하면서 “손가락 하나로 전 교인을 움직이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적 생활이 그렇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느 나라 목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한국적 목사상들이다.

그런 자세 속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 자기가 이뤘다고 생각하니 남 주기가 아까워 세습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성공 같은 실패를 할 수 있는 상황이 한국교회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드온이 미디안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백성들은 그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삿 8:22).”

이때 기드온이 한 말은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아마도 기드온은 철저하게 여호와께서 승리하신 것이요, 자기는 심부름꾼 노릇만 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멋진 신앙 고백인가? 그러나 그 고백은 멋지게 실현되지 못했다.
그는 백성들로부터 전리품 금 천칠백 세겔이나 모아 에봇을 만들었다.

에봇은 제사 의식에 사용되는 옷이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으로부터 신탁을 얻기 위하여 사용되곤 했다(삼상 23:9, 30:7).

이런 에봇이 왜 기드온에게 필요했을까?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했으나 뭔가 아쉬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과 그처럼 가까운 사람이란 사실을 남겨놓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삿 8:28)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기드온의 현실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