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길 목사/ 빛내리교회 담임

■ 마가복음 14:3~9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머무실 때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지나시고, 아니면 베다니에 내려가 쉬셨던 것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이 날도 주님은 쉬기 위하여 시몬의 집이 있는 베다니로 가셨다.

마가복음은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과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과 연결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 날이 유월절 이틀 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베다니의 사건은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이 된다. 그 날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다. 그 날 왜 하필이면 주님께서 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의 집에 머무셨을까? J. Gnilka은 마가복음 주석에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동안 머물렀던 숙소”라고 소개했다. 나병환자였던 시몬을 고쳐주신 것으로 인연이 되어 그곳에 머물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여하튼 시몬의 집에 있을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 지역에서 자라는 어떤 식물의 뿌리에서 채취한 물질로서 만든 향유이기 때문에 매우 비싸다고 한다. 노동자 1년 소득인 300데나리온이라니 얼마나 비싼 향유인가?

여인이 그 비싼 향유를 한꺼번에 쏟아버리는 것을 본 몇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불평을 나누었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그러고는 그들은 그 여자를 나무랐다. “책망했다”는 단어는 콧김을 내뿜는다는 의미가 포함된 단어이다. 그만큼 분노했다는 뜻이리라.

이 여자가 얼마나 무안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남자들만 모인 곳에 혼자 들어가서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 것도 부끄러운데, 핀잔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여인을 부드럽게 감싸주셨다. 그뿐 아니라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그리고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한 것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이보다 더 신나는 말씀을 하셨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여자가 한번 쏟아 부은 돈의 액수가 얼마나 큰 건데, 주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처럼 큰 돈을 소비하도록 권장하시는 것일까?

아마 뒤에서 화를 내며 여인을 꾸짖은 사람들은 제자들이었으리라. 이 사건 뒤에 이어서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가롯 유다가 이 사건에 대해 불평하는 주모자였을지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천국을 위하여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뭔가 큼직한 일들을 하는 것이 세상에 소금으로 빛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때로는 이처럼 엄청난 액수의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 그보다 더 귀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표가 나도록 하려고 한다. 나드 한 옥합 정도면 얼마나 표나게 쓸 수 있었겠느냐고 불평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봉사나 헌신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거룩한 낭비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여인이 한 일은 낭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것이 주님의 죽으심을 위로한 것이라니! 그것도 적절한 시기에 말이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나실 것을 누차 말씀하셨지만 누구 하나 그 말씀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외롭고 고독한 채로 그 어려운 순간들을 맞이해 가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전혀 엉뚱하게 이름 없는 여인이 주님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니, 그리고 주님의 죽음을 위하여 향유를 부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인은 무의식으로 이런 행위를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행위는 일종의 예언자적·상징적 성격을 갖는다. 즉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실 것이고, 마침내 무덤에 묻히실 것이므로, 죽은 사람에게 행하는 마지막 의식을 행한 것이란다.

여기서 문제는 이 여인의 행위를 보는 시각적 차이이다. 제자들은 자선의 시각으로 이 사건을 보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진정한 자선 행위란 어떤 것인가를 깨우쳐 주셨다. 랍비 유대교에서는 자선행위를 돈만 주는 자선과 좋은 일로 구별한다. 자선은 돈을 주는 것으로 돈만 있으면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일은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헌신을 요구하며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청된다. 그러니까 이 여인의 행위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좋은 일을 한 것”이다.
 
오늘의 교회 안에 유행하는 용어 중 하나는 ‘명분’이다. 명분 있는 곳에, 명분 있게 돈을 쓰자고 한다. 하나님께 드려진 물질이기 때문에 명분 있게 사용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명분 때문에 메말라가고, 명분 때문에 시들어져 가는 하나님의 사업이 많고, 명분 때문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많다. 선교도 눈에 보이는 곳에 돈을 뿌리기를 기뻐한다. 좋은 지역에 이미 다른 교회들이 밀집되어 있는데도 그 곳에 기필코 자기네 지교회들을 세우기에 정신이 없다. 그런 속에서 가난한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굶주리고 있다. 어느 곳엔 선교사들도 넘치고, 물질도 넘친다. 모슬렘이나 회교들이 사는 곳에 선교하는 일은 효과가 없다고 피한다. 선교사들이 보험이 없어서 아파 죽어가도 교회들은 침묵한다. 선교사 한 사람의 생명에 모든 선교가 달려 있는데 말이다.

하나님의 일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이런 때 쓰는 돈은 머리에 향유를 부어 소비해 버리는 것과 같다. 정말 아무 흔적도 없을 때가 더 많다. 돈이 몰리는 곳에 돈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꼭 필요한 곳엔 돈이 없다. 오늘 주님께서 꼭 하시고 싶어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좋은 일”을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좋은 일은 밖에 드러나지 않은 일들인 경우가 많다.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큰일로부터가 아니다. 교회의 자선행위가 화려해질수록 그늘진 곳이 많아져 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은 목회자들의 의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목회자들 의식 속에 거룩한 낭비들에 관한 관심이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