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용 소장 / 교회문화연구소

지금도 시골에는 스피커 방송이란 게 있다. 마을 한 복판에 있고 대개 이 방송은 이장 집에서 온 마을 사람들에게 연락을 할 때 사용한다. 세련되지 못한 목소리이지만 거기엔 주민들이 살아가는 데 꼭 알아둬야 할 정보나 동네의 소식들이 담겨 있어 주민들의 귀를 쫑긋 세워준다.

요즘 산골 교회의 사정은 말이 아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그림자도 찾기가 어렵다. 시골동네는 비어 있는 듯 조용하고 이제는 노인들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곡리 이문마을에 위치한 안의구세군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지역은 비닐하우스를 통한 농작물 재배를 많이 한다. 옛날에는 겨울이 되면 농한기라 하여 봄이 되기까지 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젠 겨울이 더 바쁜 것이 시골 동네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비닐하우스의 농작물을 가꿔야 하고, 그것들을 출하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일은 농작물을 유통기관에 내보내야 하는 날이어서 더 바쁜 날이다.

안의구세군교회(표희만 사관 055-962-0687/016-714-6908 /heuimanpyo@hanmail. net)는 창립한지 50년이 된 오래된 교회다. 구세군교회는 다른 기독교와는 달리 중앙에서 사관을 발령 배치한다. 표희만 사관은 2001년 2월에 이곳 담임사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파송의 의미를 찾으며 농촌목회의 꿈을 펼쳐나가고 있다.

교회는 이문마을에 있고, 얼마 떨어진 곳에 새터마을과 신당마을이 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은 대략 15명 정도로 아주 작은 규모다. 교인 수도 작지만, 그나마 비닐하우스 일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음을 알게 된 표희만 사관은 ‘스피커 방송예배’를 생각해냈다. 비닐하우스들에 스피커를 달아주고 예배 실황을 방송해줌으로써 일터에서 잠시라도 예배를 드리게 해주고, 이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도도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뒤지며 구세군교회 신우회를 중심으로 지원을 요청하였다. 신우회들의 참여로 2001년 9월 주민 80명이 사는 교회 옆 이문마을에 선을 연결하고 스피커를 설치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도움을 얻어 2002년 5월에는 주민 50명이 사는 새터마을에, 2002년 6월에는 주민 130명이 사는 신당마을에 스피커를 연결하였다.

주일 아침, 방송을 통해 차임벨이 울려 퍼지면 농사일로 바쁜 주민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스피커 방송을 들으며 기도도 하고, 설교 말씀도 경청한다.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다들 설교말씀을 경청한다. 늘 몇 가지 복음성가를 집중적으로 들려주기 때문에 이 동네 사람들은 찬송가 몇 곡은 따라 부른다. 사관의 설교말씀에 대해서도 서로 얘기를 하고, 사관을 만날 경우 말씀 내용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곤 한다.

도시교회에서는 새벽예배를 알리는 챠임벨 방송을 공해라 하여 금지를 시키고 있지만, 이 교회의 스피커를 통한 예배 실황 방송에 대해서는 260명의 주민 중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교회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다. 표희만 사관은 부임 후 지역사회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출하를 앞둔 양파가 많은 비로 인해 팔리지 않는 것을 보고 9군데에 흩어져 있는 양파를 모두 수거하여 도시 아파트 부녀회를 통한 직거래장터를 열어 팔아주었다. 또 노인들에게 안경을 마련해주었고 영정사진을 만들어주었다. 노인들에게 온천 여행도 시켜드리는 등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겨왔다.

이제 안의구세군교회 주일예배에는 예배당 안에 15명이 참석하지만, 예배당 밖에는 260명이 참석한다. 아직도 우상과 다른 종교를 믿는 주민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안의구세군교회는 비록 겉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큰 교회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예배 실황방송을 들으며, 이마의 땀을 닦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촌로의 모습에서 한국판 밀레의 <만종>을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