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김정수 씨(34)는 지난 7월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의사고시를 위해 의대전문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 씨가 전공을 버리고 의사고시를 선택한 것은 의사가 된 친구 때문이다. 자신보다 늦게 출발한 친구가 의사로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자신의 세배인데다 자신은 박사가 되어도 그만큼 벌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짓눌렀다.

더구나 이공계의 발전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마흔을 넘기면 새 지식, 새 기술로 무장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와 자리 보존하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의사는 그럴 위험도 없고 수입도 이공계보다 월등하다는 생각이 그를 의사고시로 내몰았다.

“노력은 의사인 친구보다 더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보상은 그보다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전공을 포기하고 사회적 대우가 좋은 쪽으로 택했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수 씨가 의사고시를 선택한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IMF 이후 경제 불황과 함께 중산층 폭이 줄어들고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부자에 대한 반감으로 이런 감정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강남증오 증후군과 언론의 무책임 보도

‘강남증오 증후군’이 이런 사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 주범으로 강남 아파트가 지목되면서 강남 어린이 납치, 8학군 초등학교에 보낸 협박편지, 강남 유부녀가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차량으로 납치되는 사건 등이 한동안 일어났다.

심영희 교수(한양대 사회학과)는 “강남 등 부촌에 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실제로 자신이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만큼 살 수 없음을 보고 느끼는 것으로서 공평한 사회적 분배가 이뤄지지 않다고 생각하는 데서 발생하는 감정이다. 이같이 사회적 불평등이 심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근 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근로자의 노동쟁의 분석’ 자료에 의하면 근로자들의 노동쟁의도 근로자들이 느끼는 높은 수준의 노사간의 거리감이나 대립의식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 자료는 중산층 가운데서 절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9.9%에 불과하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43.0%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왜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나는가? 우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기대가 상승하지만 결과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이유는 경쟁과정의 비정상화이다. 즉 정치권력과 재벌의 특혜로 기회의 불균등성을 느끼고 경쟁의 폐쇄성이 나타날 때 그리고 무위도식자가 증가할 때 상대적 박탈감이 생겨난다.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는 것은 빈부격차만은 아니다. 언론도 한몫은 하고 있다.
일선 기자들의 명품보도가 봇물을 이룬 데는 늘어난 ‘명품 광고’를 챙기기 위한 신문사의 전략도 한몫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명품 열풍을 반영하듯 지난 7월 한 달간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대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명품 열풍을 부추기는 언론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고급 소비문화를 비판하는 이중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비뚤어진 소비풍조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시민단체나 언론학자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일부 신문들이 ‘알뜰쇼핑 찬스’라며 소개하는 제품들에도 유명 브랜드의 할인 소식이거나, 어디에 가면 명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많다.

이렇게 명품신드롬을 조장한 매체가 바로 TV와 일간지 등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는 언론매체라는 사실에서 문제가 생긴다. 신문과 방송에서 호화 명품이 최고라는 식의 광고를 내보내는 한편 드라마와 각종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차림새는 가히 명품을 널리 알리기에 충분한 것들이다.

이러한 명품들이 막상 일반서민들에게는 마냥 하늘의 별과 같이 먼 것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이들을 무방비로 노출시킴으로써 상대적 박탈감과 자기비하를 느끼게 만들고, 명품의 좋은 면만 주관적으로 소개할 뿐 그것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과 과소비와 언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들은 감추고 있다.

가족해체까지 낳는다

상대적 박탈감은 중·하류층의 가족 해체 현상을 낳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뒤 서울 강남의 아파트를 전세놓고 연립주택으로 이사갔던 김모 씨(47)의 경우 보험설계사로 취업전선에 나섰던 부인이 옷가게를 내서 겨우 경제난을 극복했다. 하지만 밤늦게 귀가하는 부인과 잦은 말다툼 끝에 손찌검까지 하게 된 김 씨에게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김 씨 가정은 심각한 해체위기에 직면했다.

장혜경 박사(한국여성개발원)는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겨준 가장들이 자존심에 상처받거나 가족이 실제로 가장을 무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런 갈등이 심해지면 중산층도 심각한 가정해체 위기를 맞게 된다”고 말했다.

가정의 해체위기가 심화된 데는 계층간 빈부격차가 커진 데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승권 박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는 “공동체 내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절대적 빈곤에 시달릴 때보다 가족관계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탐심과 욕심에서 비롯된 감정

상대적 박탈감에 대해 교회라고 자유로울 수는 없다.
교인들 중에 작은 평수의 집에서 사는 교인들은 상대적으로 큰 평수의 교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또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소유한 교인들은 계속해서 큰 평수의 아파트를 가지기 위해 저축을 한다는 것이다.

일산에 사는 최은수 집사(가명)는 “교회가 크다보니 생활형편에 따라 교인들의 만남이 차별화 되고 있다”며 “생활형편이 어려운 교인들일수록 위축되어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도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만히 있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돈을 크게 벌면 도태되어 가는 느낌을 누구나 갖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적인 이런 현상을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신원하 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이 문제는 탐심과 욕심에 직결된다. 말로만 교회를 다녔지  신령한 보물에는 가치를 두지 않고, 세상에 대한 재물에 더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그런 감정이 싹트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는 사회적 구조를 없애야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가난하고 배고픈 자를 돕고 약자에게 베풀려고 하는가에 대한 자기 성찰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은 로또 같은 복권이나 혹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증식한다. 또한 이렇게 해서 번 돈으로 여유롭고 풍족한 삶을 산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오산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자족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족은 오히려 재물의 넉넉함보다 더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유경동 교수(감리교신학대학원)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편승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빠지지 않도록 교회가 계속해서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며 “상대적 박탈감보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 진리 안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