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 아이티 가요.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잘 아는 출판사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정화영 작가를 만난 것은 CBS방송국에서다. <크리스천매거진> 게스트로 출연할 때 그는 그 프로그램의 진행 작가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이티를 간다고 했다. 가난한 이들을 사역하는 선교사를 만나고 또 이 나라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돕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이티 이야기 책 내서 돕고 싶어

▲ 민들레처럼 살아가는 아이티의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 책을 냈다는 정화영 작가

아이티를 다녀왔다는 정 작가의 소식을 듣고 다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아이티 이야기를 들었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명랑한 목소리로 아이티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티는 정말 가난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고 먹을 것이 없는 나라. 지지리도 가난한 것이 한국 전쟁 후의 모습같이 처참함이 눈에 선했다.

“이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빨리 책을 내야겠어요.”

다급해진 그가 일단 블로그에 아이티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아지면 책을 낼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두어 둔데 출판사에 그의 출판기획을 보낸 적이 있지만 정 작가가 아이티에 출국하기 전의 일이었다. 일단 원고가 정리되면 다시 출판사에 말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물건이 나오지 않았는데 흥정하여 출판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출판사로서는 위험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아이티에 강진이 일어났다. 전 세계가 주목한 아이티 지진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이티 지진을 보면서 정화영 작가가 생각이 났다. 그는 어떻게 지내나.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가 아이티를 지진에 굉장히 힘들어할 것 같았다.

“목사님, 저 며칠 잠을 못 잤어요. 어떻게 해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그냥 눈물만 나와요.”

아이티에서 선교하는 백삼숙 목사하고 통화하면서 울고,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어 애만 탔다는 그에게 “이제 책 내라고 하시나 봐요”라고 했다. 정 작가의 말을 듣고 곧 바로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아이티 나의 민들레가 되어 줘>(강같은평화)다.

방송작가 18년, 하지만 그는 날마다 새내기라고 했다.

“솔직히 내가 쓴 많은 글들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내가 쓴 방송 대본, 책, 낙서장에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모두 기억하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하고 하나님만 가능한 것입니다.”

책을 출간하자마자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와 만난 정 작가는 “이 책이 제 인생을 바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이티가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고도 했다.

“아이티를 가서 첫 날 하루를 보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명제는 더 이상 내 삶이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는 평화, 가르쳐 준 사랑, 약속하신 구원,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어디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 제 삶의 주제였습니다.”

아이티의 빈곤은 세계적으로 최악이다. 그는 하루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영양부족의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마신 뒤에 탈이 나면 그것은 곧 ‘열’로 이어지고 손쓸 사이 없이 사망한다고 했다. 아주 기초적인 약품이 없어 질병이 걸리면 대부분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양실조에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더러운 식수를 먹기 때문에 각종 질병이 괴롭힌다. 그는 물과 의약품이 태부족이라고 했다. 최근 지진으로 많은 도움이 있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전문인력과 봉사인력이 없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불미스러운 일(지진)로 인해 아이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계속적인 도움이 필요해요. 아이티에 한국 선교사가 많지 않습니다. 백삼숙 목사님은 여자 분이면서도 남자가 해야 할 힘든 일을 해 내는 것을 보면서 젊은 분들이 와서 일을 도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아이티에서 선교하는 백삼숙 목사와 엄마처럼 지냈던 양재연 전도사(왼쪽부터)

가난과 슬픔이 일상인 나라
아이티에는 빈민가와 살인, 약탈로 유명한 도시 시테솔레이가 있다. 혼자서는 도시를 거닐지 말라고 할 만큼 위험천만한 도시다. 슬럼가가 된 이곳을 정 작가도 방문했다. 그는 그곳 거리에서 삶을 지탱하기 힘겨워 보이는 여인들과 헐벗은 아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그는 차마 미안해서 계속 바라볼 수 없었다고 한다.

▲ 목욕할 곳이 없어 몸을 벽에 가리고 목욕하는 아이티 여인

“풍요 속에서도 감사가 끊겨 버린 내 삶이 미안했고 아이티에 오기 전에 뉴욕에서 쇼핑을 했던 것도 미안했습니다. 문화를 즐기는 일에 집착하거나 뭔가를 계속 배우고 싶다고 말했던 것도 미안해 졌고, 작은 것으로 싸우고 미워했으며 혹은 상처받았다고 울었던 기억도 미안했습니다.”

그는 폭력과 가난이 있는 시테솔레이에서 진흙구이 쿠키를 보았다. 진흙을 반죽해 햇볕에 말려 만든 진흙쿠키(진흙빵)가 꽤 오래 전부터 임산부들이 먹는 ‘영양제’로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 땅 속 10미터 이상 깊은 속에서 캐낸 흙에 물과 소금, 마가린을 첨가해 반죽을 만들어 자연 상태에서 햇빛에 말린 것이다. 모양이 쿠키지만 그냥 흙이다. 흙 속에 기생충과 해로운 물질이 섞여 있는 당연한 것, 오염된 물과 말리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생충은 사람들의 몸을 해롭게 하는 빵으로 둔갑한다.

“그래도 먹을 수밖에 없대요. 배가 너무 고픈데 그것을 먹으면 배고픈 것을 잊을 수 있거든요, 나도 사서 조금 먹어 보았는데 흙을 먹는 것 같고 소금과 마가린이 들어가 짜고 느끼했습니다. 그런 곳에 있는 어린 아이들의 건강 상태는 보지 않아도 비디옵니다. 백삼숙 목사님이 그 도시를 방문해서 아이들을 안아주고 약품을 나누어주고, 기도해주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 기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저히 절망밖에 없다는 생각이 희망을 바뀔 수 있는 것은 복음과 섬김, 사랑을 가지고 방문하는 천사들의 손길 때문입니다.”

절망 속 희망의 기적
정 작가가 찾아간 만난 백삼숙 목사의 주된 사역은 사랑의 집의 고아원 사역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선교를 준비했던 백 목사는 2002년 7월 11일 이곳에 왔다. 가난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왔지만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은 그야말로 처참 그 자체였다고 한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 골목에서 벌거벗고 있는 아이들

전기도 화장실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곳에서 거리 고아를 데려다가 시작한 사역이었다. 정 작가는 서울에서 백 목사를 만나 그의 사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졌다고 한다. 이국 땅에서의 사역을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아이티에 가서 본 현실은 그의 사고의 틀을 몽땅 바꾸어버렸다고 한다.

“아이티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약품도 부족하고 성경도 거의 없습니다. 아이티에 교회가 있지만 영적인 힘이 너무 약합니다. ‘누가 아이티를 도와줄까’라는 생각을 할 만큼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땅을 새로운 도시로 세워지게 하고 돕는 자를 보내며, 아이티에 복음의 불길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정 작가는 가난, 고통, 슬픔이 가득한 나라임에도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곱고 착하다고 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색체는 화려하고 강렬하다. 그림 그릴 곳만 있으면 슬픔을 감추듯 아이티 사람들은 매우 화려하고 강렬한 색칠을 남긴다. 벽이든, 차량이든 작은 신발이든 흔적을 남긴다. 아이티의 장례 역시 화려하다. 화려한 검정색 파티복을 입은 고인이 가족들,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의 옷 차람 역시 정장에 흰색 드레스, 리무진 장례 차를 볼 수 있다.

영원에 대한 갈망, 죽으면 끝이 아닌 평안과 안식이 있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티 사람들은 비록 가난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구질구질하지 않다고 했다.

“아이티를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굉장한 것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심을 가지고 후원했으면 합니다. 아주 짧은 기간에 머물렀던 아이티지만 날마다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눈빛이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