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목사/ 시인. 수필가. 전 광나루문인회 회장. 전 한국목양문학 회장. 빛내리교회 담임목사

▲ 박상기 목사

예배당 종탑 십자가 LED 램프가 꺼진 곳이 생겨서 교체 공사를 했다. 공사하시는 분은 교회 집사님이며, 오래 전부터 우리 교회 종탑을 관리하신 분이다. 영업 수단이겠지만 그분은 정기적으로 꾸준히 안부와 덕담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고, 그때마다 그분에게 필자의 답신은 오직 “안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였다. 오전 9시경 도착하여 작업 시작 전에 기도해 드리자 곧바로 안전 장비도 없이 한 뼘 정도 되는 가느다란 사다리를 타고 대략 14층 높이의 꼭대기까지 성큼성큼 올라갔다.
 

개척 초창기 크리스마스 오색 전등을 십자가 끝에 고정하여 늘어뜨리기 위해 종탑을 기어오르다 중간쯤에서 아랫도리가 후들거려 도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었기에 그분의 담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높이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높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기에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여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나는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지켜보았다.
 

무사히 종탑 공사를 마치고 땀에 흥건히 젖어 지친 모습으로 내려왔다. 냉수를 건네 드리며 “왜 안전 장비를 하지 않고 그 위험한 일을 하냐!”고 했더니 안전 고리를 걸고 일을 하면 더딜 뿐 아니라 오히려 다리가 줄에 감겨 더 위험할 수가 있단다. 일면 이해도 됐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느니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라고 식상한 주의를 드렸다.
 

그분과 잠시 나눴던 얘기가 여운이 남았다. “목사님, 제가 종탑에 그렇게 담대하게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종탑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종탑과 꼭대기까지 연결된 가느다란 사다리가 어떻게 구조되어 있는지와 구조물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80킬로가 넘는 거구로 그 높은 꼭대기까지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목사님, 제가 사다리를 올라가서 십자가를 먼저 흔들어보고 만약 십자가가 흔들리면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2미터가 넘는 십자가를 고정하고 있는 부분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부식되거나 헐거워져서 흔들리면 절대로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종탑에 올라가면 가장 먼저 십자가를 먼저 흔들어본단다.
 

안전이 검증되면 한 손으로는 십자가를 부둥켜안고, 한 쪽 다리를 십자가에 걸고 끝날 때까지 오로지 십자가만을 의지하여 작업을 한다고 했다. “목사님,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일 못해요!” “저는 오직 십자가만을 의지합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연거푸 토해내는 말이 구구절절 진리처럼 마음속에 꽂혔다.
 

집사님이라고는 하는데 그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주님을 향한 믿음인지 안전에 대한 믿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분의 표정과 겸손한 태도를 통해서 십자가에 대한 믿음으로 그 일을 하시는지, 그 일을 하다가 십자가를 더욱 믿게 되었는지 믿는다는 말에 진정성이 배어있었다. 작업을 마치고 다른 현장으로 성급히 떠나는 그분을 보내고 가슴 속에는 그분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십자가가 흔들리면 절대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직 십자가만을 붙잡고 의지합니다!” “십자가를 놓치면 죽습니다!” “십자가를 믿지 못하면 일 못합니다”, 곱씹어 볼수록 한편의 설교 같은 감동을 주었다.
 

요즘, 세상에서 교회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땅에 떨어져 있다. 세상이 교회를 교회로 여겨주질 않는다. 세상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바라보는 교회의 문제는 교리적인 것은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세상은 기독교의 교리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오로지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즉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목사들이 이렇게 많은데 대체 교회는 세상과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는 불만인 것이다.

십자가 네온 불빛을 공해로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교회에 대한 무지나 몰이해 때문이라고 덮어 버릴 수도 있지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도 그럴 것이, 목회자인 필자가 보더라도 욕먹어 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돈, 교회와 권력, 교회와 이념, 사회적 갈등에 대한 교회의 책임, 어둡고 소외된 곳에 대한 무관심, 교회 세습, 목사들의 각종 부도덕한 추문들... 모든 것이 사실이기에 궁색하게 변명하기도 쉽지는 않다. 드러난 것이 그 정도지 암암리에 벌어지는 온갖 부정과 추태는 얼마나 더 있겠는가?
 

신성함은 교회의 생명이며, 교인들의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다. 그런데 세상만도 못한 도덕, 윤리적 규범으로 교회가 세상에 읽힌다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의 역할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같은 전망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 교단 2024년 교세 통계로 증명되고 있다.
 

통계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교단 산하 교인 수가 9만 4,700명이 감소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30년 교인 수가 160만 명 이하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된단다. 타 교단과 타 종교의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 정서나 저출생에 초고령화라는 사회학적 통계를 생각하면 아마도 모두 줄었지 싶다.
 

지속적인 교인 감소로 올해 처음으로 교회 수도 감소했을 뿐 아니라 전체 교회 9,473 가운데 200명 이하 교회가 83.5%고 100명 이하 교회가 72.3%, 50명 이하 교회가 58.05%라는 보고를 보면 참으로 두렵고 놀라운 통계다. 생각해 보시라. 교인이 94,700명 줄었다면 1만 명 교회가 9개가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되고, 1천 명 교회 94개가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되며, 1백 명 교회 9백4십 개가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교회 안의 영적 침체다.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고, 점점 더 내리막일 수 있다 것이 예측 가능하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자꾸만 사회적 분위기 탓만 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자승자박, 자충수를 둔 결과에 무게를 두고 냉철하게 분석해 봐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와 복음은 가장 열악하고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부흥 성장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본질,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기복신앙, 물량주의, 신비주의, 신사도 운동, 아이 합 같은 성경적 정체성이 모호한 운동들로 인한 복음의 왜곡 현상이 주된 원인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기독교 이단과 사이비, 게다가 역사를 왜곡하고 민심을 갈라치기 하는 기독교적 이념 운동, 교회세습, 목회자의 추문 등이 교회와 교인 감소에 기폭제를 만들었다고 본다.
 

AI나 온라인 세상의 도전은 어쩔 셈인가? 교인들은 이미 AI나 유튜브를 통해서 신앙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심지어 결혼 주례까지 맡기는 세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굳이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예배에 대한 부담을 떨쳐버린 교인들이 상당하다. 앞서 교회가 잃어버렸다고 했던 사람 중에는 온라인 교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교인 없는 예배당은 의미가 없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인들을 잃어버린다면 극단적으로 교회를 예견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세상에서 교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 과장이나 지나친 비관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목회자들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목사의 이중직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상당한 목사들이 직업 내지는 직장을 갖고 있으며, 소위 카페교회라는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은 이미 자리매김을 끝낸 상태다. 나아가서 ‘목회자 취업 박람회’가 열리고 성황을 이뤘다는 보도를 보면서 교회의 위기가 당연히 목회자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종탑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 높은 종탑을 성큼성큼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종탑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 교회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는 또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세상의 변화와 도전 앞에 응전해야 할 교회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더욱 큰 위기는 교인들이 빠져나가고, 교회가 감소하는 현상이 아니라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하려는 자세가 피상적이고 이론적이라는데 있다.
 

“저는 십자가를 흔들어보고 흔들리면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일 못해요!” 오늘 교회의 위기가 교회와 신앙생활에 있어 생명이며 목적인 십자가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닐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십자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예배, 목

회, 신앙생활 전반에 십자가가 흔들리고 있다면 생명 없는 세속 종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다시금` 십자가를 견고하게 세워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갈6:14, 고전2:2)

높은 종탑 꼭대기에서 십자가에 온몸을 맡긴 채 작업하는 집사님의 고백, “저는 오직 십자가만을 의지합니다!” “십자가가 흔들리면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놓치면 죽습니다!”, 교회는 다시 십자가를 선포하고, 목사와 교인들은 온전히 십자가를 의지하고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질 때, 교회는 높은 종탑 같은 세상을 향하여 진리의 사닥다리로 성큼성큼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며, 신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한 낮 땡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한 발로 십자가를 휘감고, 한 팔로 십자가를 부둥켜안은 체 비지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는 그분의 모습에서 교회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